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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아 Mar 14. 2023

"스튜어디스 아가씨!!!"

<더 글로리> 스튜어디스 혜정이를 보며

어제 출근길에 있었던 일이다. 여느 때처럼 유니폼을 입고  위에 유니폼을 가릴 겉옷을 걸치고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섰다. 집 앞에 있는 헌 옷 수거함에 옷 하나를 넣고 돌아서 나올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스튜어디스 아가씨!!!"라는 큰소리가 들렸다. 짧은 순간이지만 나를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고 뭔가 내가 떨어트리거나 했나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떤 아주머니가 웃으며 "대한항공이야?" 했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고 대답하는 것도 웃긴 것 같아서 그냥 더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사람들은 스튜어디스에게 어떤 걸 기대하는 걸까?

아니 기대라는 것이 있을까?


며칠 전에 공개된 <더 글로리>가 연일 화제다. 나도 두 달을 어찌 기다리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갔다. 공개된 다음날이 쉬는 날이라 쉴 틈 없이 한 번에 다 보았다. 인터넷에서는 빠르게 <더 글로리>의 성공적인 반응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고 혜정이에 대한 기사도 여럿 눈에 띄었다. 극 중에서 혜정이는 어떤 인물인가? 몸매 좋고 얼굴도 이쁘지만 천박하고 생활은 문란하며 결혼으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그런 여자다. 그 여자의 직업이 승무원이고 그게 내 직업인지라 극 중 혜정이를 보면서 불편한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다. 각종 직군이 있는 항공사 커뮤니티에 극 중 혜정이의 캐릭터가 불편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런 글이 올라올 때면 좋은 소리가 안 나온다.

"또 시작이네. 너네는 뭐가 잘나서 그러는 거냐!"

"그렇게 따지면 드라마에 안 좋게 나오는 모든 직업이 기분 나빠야 하나?"

"당신들은 별것도 아니면서 왜 당신들만 특별난 것 같이 굴지?"...

특별나다. 특별나다...

나는 내가 특별나다고 생각한 적이 있나...


내가 승무원으로 살아온 지 25년이 넘어가고 있다. 성인이 된 후로 승무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살아보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말하는 것은 내가 겪은 내 감정경험일 뿐임을 먼저 말하고 싶다.


나는 어릴 때 김혜수가 주인공이던 <짝>이라는 드라마를 즐겨보았다. 일요일 오전에 하던 장수드라마였는데 내가 입사한 후에도 촬영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게 내가 가진 승무원에 대한 첫 이미지다. 그리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드라마를 통해서 승무원을 친숙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쉬울 때가 아니었고 비행기를 타는 사람도 주변에 흔치 않았다. 그래서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특별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나만 봐도 아버지가 해외로 오가셨지만 공항으로 배웅 간 적도 없었고 길에서 승무원을 보는 일은 더더욱 없었던 지라 아마 나도 직접 승무원을 만났다면 신기해했을 것 같다.


언니가 공항으로 아버지를 마중 나갔다 승무원을 보고 처음 이 직업을 내게 권했을 때 내가 그랬다.

"난 별로 예쁘지도 않은데 어떻게 내가 돼?"

나의 첫 기준이 영어가 아니었던 걸 보면 예뻐야 한다는 것이 승무원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었나 보다. 언니의 응원 덕분에 별로 예쁘지 않은 나도 어찌어찌 시험에 합격해 입사를 했다. 입사 후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4명씩 짝을 이뤄 회사가 제공한 아파트에서 훈련기간을 보냈는데 다 같이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하면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왔다. 젊고 키도 비슷하고 화장도 같고 머리는 쪽을 졌으니 시선이 갈만하다. 그렇게 입사와 함께 타인의 시선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리고 회사에는 여러 지역에서, 각자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전공도 제각각인 다양한 친구들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승무원이 꿈이었던 친구도 있었고 나처럼 취업이 다가오자 갑자기 선택한 친구도 있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좀 드물었던 것 같다. 나중에 어떤 친구는 입사하기 전까지 자기가 나름 잘났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들어와서 자신이 평범한 축에 든다는 걸 깨닫고 우울했다는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놀랐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직업을 하는 본인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분명 있었다. 그 또한 내가 놀란 부분이었는데 나는 내 직업을 폄하하지도 그렇다고 높게 평가하지도 않았다. 내가 필요로 해서 가진 내 직업일 뿐이었다. 난 그냥 내 일을 잘하고 싶었다. 아마 어떤 직업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랬을 거다.


일을 시작하고 보니 우리의 주 업무는 서비스가 아니라 손님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었다. 매뉴얼에도 서비스는 업무중요도에서 4순위로 나온다. 사실상의 우리 업무가 그렇다 해도 눈에 보이는 것이 서비스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서비스인으로만 다. 비행기를 타는 일이 이제는 특별한 일이 아닌 게 되면서 우리가 하는 일을 가까이서 보고 우리 일을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났다. 그래도 내가 느끼는 건 이 직업에 대한 호감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거다. 거기다 여자가 주류를 이루는 집단이다 보니 외적인 것에 관심도 많고 멋지고 세련된 사람들도 많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명품과 유행은 늘 근접거리에 있었다. 출국장을 통과하고 나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면세구역. 그리고 해외에서 쉽게 접하게 되는 온갖 물건들. 지금이야 직구로 어디서든 편하게 물건을 구할 수 있지만 한때는 해외를 드나드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했다. 그것들은 어느 순간 내 손안에 들어와 마치 내 삶 전체가 그렇게 바뀐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고 비행기에서 만나게 되는 정재계 인사들은 나의 지위도 같이 올려 주는 듯했지만 나는 바로 깨달았다. 내가 그런 것들을 통해서 얻은 것은 좋은 물건을 볼 줄 아는 눈과 높은 지위의 사람들을 상대하는 매너지 내 삶이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반면에 그런 것들을 동일시해서 자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 쫓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혜정이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승무원이 아닌 사람들이 승무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승무원들을 보면 승무원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승무원을 뽑는 기준이나 우리가 입고 있는 유니폼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 사람들은 어떤 친절함을 기대하는지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건다. 그냥 말을 걸기도 하고 길을 물어보기도 하고 자기가 타야 할 버스를 물어보기도 한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새벽에 출근을 위해 차 시동을 거는데 갑자기 어떤 여자분이 차 창문을 두드렸다. 너무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자기 남편이 해외로 출장을 가는데 나보고 인천공항까지 태워 줄 수 있겠냐는 거였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리무진에서 자리가 없다고 앉아 있는 승무원 보고 자리를 양보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일들이 있다. 다 유니폼 때문이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 나의 직업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그런 게 싫다면 사복을 챙겨 다니는 번거로움을 해야 한다.

유니폼을 입지 않는 순간에는 될 수 있으면 나는 내 직업을 말하지 않는다. 직업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면 살짝 긴장이 되는데 상대방의 반응이 둘로 나뉘기 때문이다.

"어쩐지 그럴 것 같았어!"와 '승무원인데 별로네...'라는 뜻의 우회적인 표현.

그리고 뒤따르는 비슷비슷한 질문들.

25년 동안 늘 그랬다.

그럼 승무원만 그런가? 생각해 보면 선입견이 따르는 직업들이 있다. 나 또한 그런 선입견으로 누군가를 바라볼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하는 것에는 관대하고 남이 우리를 그렇게 보는 것은 불편하다고만 주장하면 위에 썼듯 당신들은 뭐가 특별하냐는 답을 듣게 될 것이다.


어느 곳이건 다양한 생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혜정이'는 승무원 중에 있을 수도 있고 이 사회 어느 직군에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인간상이 스튜어디스인 게 아니고 인간군상의 한 부류일 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볼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설사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도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일부인 거다.


어제 나에게 말을 거신 분도 공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승무원을 보니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하셨겠지. 갑작스러운 부름에 당황해서 답을 못 해 드린 것뿐이니 너무 서운해 마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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