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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아 Aug 29. 2023

eco flight

난기류를 만나다

우리 회사에는 특화팀이라는 게 있다. 내가 입사하고 얼마 후부터 생겨났는데 워낙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점점 아이디어가 더해져서 많은 팀들이 생겨났다. 매직팀을 필두로 세계 각국의 의상을 입고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딜라이터스팀, 바리스타팀, 일러스트팀, 셰프팀, 레터팀, 차일드팀, 타로팀, 전통매듭팀, 승무원체험팀, 사회 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하는 모자뜨개 팀 등등이다. 이런 특화팀들은 요즘 코로나를 기점으로 많은 상황적 변화와 생각의 변화로 인해 전환기를 맞고 있는 중이다.


한참 특화팀이 손님들에게 환영을 받고 유의미하던 시절, 일반 그룹에 속해 있던 나는 그 당시 그룹장에게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다. 내가 제안한 것이 바로 'eco flight'팀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무슨 여유가 있겠는가. 마냥 선배들 따라다니고 내 일 배우기 바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일하는 공간을 둘러보니 온통 일회용품 천지였다. 장거리 비행을 가다 보면 손님들이 마시고 버린 플라스틱 컵만 해도 산더미 같았고 음료를 따를 때마다 나오는 플라스틱 통들, 캔, 식사를 싸는 일과 플라스틱 뚜껑, 종이컵, 담요를 싸는 비닐, 헤드폰을 싸는 비닐, 일회용 칫솔, 슬리퍼, 물수건 등 무수히 많았다. 말 그대로 환경오염의 주범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eco flight'이었다.

회사에 아이디어를 낼 때는 일단 비용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실현가능성과 그것으로 인한 효과까지.


내가 낸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이렇다.
첫째, 홈페이지에 'eco flight' 팀이 있음을 알리고 비행날짜를 공고한다. (실제로 다른 특화팀도 비행날짜를 고지했다. 꼭 그 팀을 보기 위해 일정을 변경하지는 않겠지만 비교적 날짜 선택이 자유롭다면 선택을 함에 있어서 넛지를 줄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 있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선택의 기준이 될 수도 있었다고 본다.)
둘째, 손님들이 'eco flight' 비행에 동참하는 방법은 개인 텀블러를 가지고 오는 거다. 물론 승무원도 포함이다. 그것에 대한 댓가는 5% 면세품 할인 쿠폰이라던지, 약소한 마일리지 제공이라던지, 항공사 기념품 정도가 되겠다.
셋째, 해당 비행에서는 음료를 텀블러에 받아 마시고 될 수 있으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인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율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큰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사회적인 이슈가 될 수 있고 세계적으로 시행한 항공사를 들어본 적이 없으므로 새로운 항공문화를 선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올린 아이디어는 별다른 답을 듣지 못하고 그룹장선에서 끝나고 말았다.


그로부터 1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에 자연재해는 뉴스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그에 따른 영향인지 몰라도 근무 중 심한 난기류를 만나는 일도 전보다 잦아졌다. 극심한 난기류는 항공기와 그곳에 탑승한 사람들을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게 한다. 요즘 회사에서는 난기류를 대비하기 위한 몇몇 대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일에 완벽하게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식사서비스 중에 만나는 난기류는 정말 위험하다.


코로나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비행이 많아지면서 나도 생각이 많아졌다. 환경은 변하는데 우리의 서비스 형태는 전혀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이다. 아니다. 변한 것이 없지는 않다. 한 7년 전부터 단거리 노선에는 간편식이라는 게 생겨났는데 일회용품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많이 늘어난 상태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환경운동에 앞장서는 미국의 한 유명한 탑스타가 어디든 개인전용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고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말하자면 항공기가 한번 뜨고 내릴 때마다 연료로 인해 발생되는 환경오염이 더 많다는 얘기였다. 해당 내용이 기내에서 제공하는 것들을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나는 매 비행마다 버려지는 많은 물품들을 생각하며 공감했다. 세계를 다니는 항공기들은 각 나라의 관세와 검역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해외에서 탑재된 물품들은 한국에 오면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손님들의 식사 트레이에서 사용되지 않은 여러 가지 것들은 매번 쓰레기로 처리되고 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우리는 꼭 기내식을 먹어야 하는가?'다.


비행기가 아무나 탈 수 없는 운송수단이었던 시절에는(물론 지금도 누구나 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보편화된 것은 맞다) 기내식도 하나의 특별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음식전 세계 사람들 모두에게 흔하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먹을 것항상 사람들의 근거리에 있다. 장시간 가는 비행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나 다른 이유 때문이라도 음식을 제공하는 게 맞겠만 3시간 미만으로 가는 비행에서도 과연 무조건적으로 제공되는 음식이 꼭 필요한 걸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현재 우리나라에는 많은 항공사들이 다.

FSC항공사도 있고 LCC항공사도 여럿이다. 물론 LCC는 특성상 식음료를 유상판매한다. LCC뿐만 아니라 티켓에 식음료가 포함된 FSC도 이런 것들이 항공사의 수익 일부를 차지할 것이다. 기업이 수익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고 거기에 맞춰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도 다시 고심해 봐야 한. 그리고 이제는 손님들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3년을 기점으로 국내선에서는 음료를 찾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 장거리 비행에서도 식사를 하지 않거나 쓰던 컵을 계속 쓰겠다고 하는 손님을 만나는 비율이 높아졌다.


그래서 이건 나의 바램이다.

서비스 중 조우하게 되는 난기류로부터

나와 승객들을 보호하는 길은 과거에도 해왔기 때문에 그냥 고수하는 불필요한 서비스보다 과감한 생략일 수도 있다. 적어도 3시간 미만 비행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회용품의 양산을 막는 작은 부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우리의 주 업무는 식음료 서비스가 아니다. 항공기 크기에 따른 손님수와 항공기 도어수에 따라 탑승 승무원의 수는 정해진다. 많은 항공사들이 거기에 맞춰 최소 승무원을 탑승시키고 있는 추세다. 그리고 만약에 필요성이 줄어들어 미래에 없어질 직업이라면 내가 무슨 수로 막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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