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끈한 것과 거친 것 사이에서
나에게는 요상한 취미, 혹은 습관이 하나 있다. 계절적으로는 비수기라 하겠지만, 내 직업 때문에 겨울에도 따뜻한 곳을 오가니 사계절 내내 이어지는 습관이라 해야 맞겠다. 나에게 관찰당하는 많은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다른 사람의 뒤꿈치를 유심히 바라보는 일이다.
이 습관이 생긴 지는 꽤 오래되었다. 어느 날 전철 계단을 오르다 앞사람의 뒤꿈치를 보게 되었는데, 어찌나 매끈하고 촉촉하던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렇게 매끈한 발을 가질 수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엇비슷하게 걷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뒤꿈치에도 눈이 갔다. 앞모습은 보지 못했어도 얼굴은 모두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발은 딱 두 가지로 나뉜다. 매끈한 발과 거친 발.
그 뒤로 어디서든 어딜 가든 맨발이 보이면 자연스레 뒤꿈치를 보게 되었다.
거친 발을 볼 때면 묘한 동지애를 느꼈다.
'그래,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거기서 거기지 뭐.' 하며 위안을 얻는다.
반대로 매끈한 발을 볼 때면 왠지 모를 경외심까지 생기곤 했다.
'저 사람의 삶은 어떨까? 아주 편안하고 많은 것을 가진 삶일까?' 궁금해하며 말이다.
이 습관이 꽤 오래 지속된 후에 친한 언니와 만난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언니, 매끈한 발을 가진 사람들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사는 걸까요? 모든 것은 타고나는 거겠죠? 저는 워낙 건조해서요. 그래서 그런지 그런 사람들이 부럽기만 하더라고요. 저는 오늘 같이 샌들을 신는 날에는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언니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지 않을까? 겉으로는 거저 얻어진 것처럼 보여도 현아 씨처럼 노력해서 가진 걸 수도 있지."
그 말을 듣는데 정말 그 언니 말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가질 수도 있지만 노력으로 가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우리 삶에서 많은 부분이 그렇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노력까지 한다면 그 사람을 이기기는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는 원하는 바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꼭 타고난 사람과 경쟁할 필요도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 보고 그것을 얻고 싶다면 그만큼의 노력을 하고 얻어진 만큼 만족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되는 요즘은 자꾸 절대적인 마음보다 상대적인 마음을 가지게 된다.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이 구조 속에서 매끈한 뒤꿈치가 저절로 생긴 것처럼 생각되듯 그들의 부도 저절로 이뤄진 것만 같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마을을 이루고 국가를 만든 순간부터 시작된 이 불행은 날이 갈수록 더 짙어지고 있다.
나는 아버지의 낡은 집을 떠안고부터 소위 '없는 사람들'과 여러 번 마주 해야 했다. 내가 알던 '있는 사람들'과 집에 세 들어오는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웠고, 물질적인 있음과 없음의 기준이 나를 괴롭혔다. 아직도 나는 그 간극에서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것만은 안다. 만약에 사람이 가진 만큼만 행복하다면 이 세상을 살아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있어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 그래야 공평하다. 그래야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오늘도 거친 내 뒤꿈치에 로션을 바르며, 행복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