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째 절교

‘루’도반의 글

by 도반

스무살에 꿈을 좇으며 만난 친구. 실은 그보다 이십대와 삼십대를 아울러 빤스만한 치마를 입고 올라탈 듯 한 킬힐을 신고는 개처럼 술을 먹고 소화되지 않은 인생의 찌꺼기들을 길바닥에 흩날리며 같은 궤도를 돌고 돌면서 함께했던 친구.

자매라고 불렸던 친구. 실은 나보다 한 살 많은 친구. 내가 유독 챙기고 싶어했지만 나를 끝끝내 애 취급 했던 친구. 말 못할 비밀스런 사건들을 함께 공유했던 친구. 숱한 밤과 새벽 넘치는 감정들을 음악이나 시에 녹이며 결국 또 술로 마무리 졌던 친구. 그래, 결국 모든 것이 술로 귀결되던 친구.

나는 그 친구와 작년 겨울 언젠가에 절교 했다.


절교, 그런 단어는 조금 유치하게 느껴져서 중고등학교 때나 쓰는 것인 줄 알았지만 인생을 살다보니 친구와 절교하는 일은 꽤 있었다.

힘든 절교는 이 친구가 두 번째다.


첫 번째 절교는 지독한 연인들보다 질긴 애증으로 얽힌, 기묘한 관계로 유지되던 친구와의 절교였다.


서로에게 마음의 웃짱을 전부 깐 가족보다 찐한 사이였지만, 서로 폭언에 가까운 말들을 서슴치 않으며 상대에 대한 불만이 비난으로 번지게 된지 오래 된 애증의 관계. 남은 건 서로의 살을 파먹는 일 뿐이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외부로 내뿜는 에너지가 강한 친구였고, 순간 순간 감정을 외부로 뿜지 않으면 안되는 타입의 성격이어서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 전화를 걸어 폭발적인 에너지, 주로 분노의 에너지를 쏟아내어야만 속이 풀리곤 했다. 나는 십여년 쯤 그 짓을 하니 지쳤다.

가끔 나도 하소연을 하고 싶었는데 그 친구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자신에게 주지 말라고 했다. 자신은 그걸 받아낼 만큼 여유로운 인생이 아니라고.


그렇게 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두 번의 순간 그녀는 나를 외면했다. 그래서 그만 하자고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입장에서의 서술이다. 그 친구도 내게 벅참이 있었기에 나의 선언에 응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그 친구의 꿈을 꾸곤 하지만 절교선언을 후회하진 않는다. 다시 연락하고 싶지도, 시간이 흘러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해도 그 땐 그랬지, 하면서 웃으며 다시 재회할 생각도 없다.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인 것이다. 내 선에서 지독히 할만큼 다 하고 나면 완전히 식어버리고 그런 후에는 완전히 끝나버리는. 이 것도 내 입장이겠지만.


작년 겨울의 절교는 나 답지 않았다. 나는 꿍해있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데, 그 친구에겐 수년 간 꿍해있었다. 서운하거나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들을 참았다. 이유는, 긁어 부스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얘길 해도 그 친구가 들어주지 않을거라고 확신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친구가 묘하게 나를 무시하거나, 요즘말로 긁는다고 생각했다. 아님 내가 긁혔거나.


우리는 과거에 술을 많이 먹고 막 살 때와는 달리 띄엄 띄엄 보게 되었고, 그러는 시간동안 서로 다른 방식의 삶을 꾸렸다. 그녀가 그 때의 그녀가 아니듯, 나도 그 때의 내가 아닌 것을. 그녀는 인지하지 않았다. 혹은 인정하지 않았거나.

그녀는 계속 과거 그 때의 나에게 말하고 대응하고 행동했다. 나는 그 때의 내가 아닌데. 하지만 설명하긴 복잡했고, 종종 표현했지만 전달되지 않았다.


그리고 겨울 어느 날. 그녀와 나 포함, 네명이 있는 단톡방에서 내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부탁한 일을 그녀가 또 무시하고 말했을 때, 나는 터졌다. 그건 단지 그 일 때문이 아니라, 이제까지 그녀가 무시한 모든 일들을 통틀어 터진 것이었고, 그녀는 그걸 알리 만무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갑자기 쟤가 왜이래? 상황이 되면서 기가 막혀했다. 나는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도. 아니, 아무것도.


나는 이 절교 사건이 허무하게 이루어졌다 생각지 않는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겐 이제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이야기 할 에너지가 없나보다. 아니면 그렇게도 가까웠던 사람이라도 이미 답을 내리고 있는 사람을 설득시킬 재간이 없다. 나는 그녀를 그렇게 답 내렸다. 우린 결국 똑같은 셈이다.


그리고 봄, 여름, 계절이 바뀌었고 우리는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집이 세고, 자존심도 세다. 아마 절대 먼저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보통 내가 먼저 연락을 해서 달래곤 했지만 이번엔 아쉽게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두번째 절교를 하며 우리가 긴 시간동안 같은 궤도를 돌며 보냈던 모든 것들이 서로를 사랑해서 일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저, 우린 외로웠고, 술을 미친놈들처럼 마시고 싶었고, 다 잊고 싶었고, 그러고 싶었던 마음이 그 시기 잘 맞았떨어졌을 뿐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관계를 다 부정하는 마음이 아니라, 때론 그런 이유로 어떤 관계는 맺어지고 유지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런 게 한 때의 인연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조건일 수 있고.


떠난 것에 대해 점점 그러려니 한다.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기보다 어떤 순리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쓸쓸하지도 씁쓸하지도 않은 것이 쓸쓸하고 씁쓸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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