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의 풍경 ‘낯섦으로의 회복’
여행은 익숙함으로부터 낯선 곳으로 나를 던지는 행위다. 새로운 나를 찾는 게 아니라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 순간들이 텍스트화하는 순간 언어는 질서를 가지고 자신만의 규칙을 만든다. 인과를 통해 서사를 구축하고 단편적으로 이어진 이미지들을 꿰어 말이 되는 것들로 탈바꿈한다. 빛을 머금은 입자들은 어느새 활자로 변하고 글을 쓰는 이들은 ‘말言‘에 사로 잡힌다. ‘이‘는 단순하게 흘러가는 세계에 권태를 느끼고 있다. 선입견과 예정된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자신에게서 발견한 “재능 없음”은 그를 무력하게 한다.
‘이’가 각본 작업을 한 최근작에는 그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낯선 여름의 해변에서 만난 젊은 남녀, 무료함으로 가득한 휴가의 한복판에서 서로를 알게 되고 정처 없이 여기저기를 다니다 낯선 동굴을 지나고 인적이 없는 자신들만의 스폿을 찾는다. 미묘한 끌림으로 만난 두 사람은 현학적인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간다. 남자는 무서운 이야기라며 해안가의 익사자 이야기를 하고 여자는 무섭다기보다 슬픈 이야기라 한다. 화자의 두려움은 청자에게로 가서 슬픔이 된다. 태풍이 상륙한 어느 날 그들은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발견 못한 물고기와 함께 서로 멀어지며 영화는 끝난다. 번잡한 도시도 삭막한 시골도 잊게 하는 만남이었지만 이에겐 여전히 프레임에 붙들려 정체된 듯하다.
이의 고민을 알았을까, 스승은 시사가 끝나고 각본이 잘 써지는지 묻는다. 근심이 깊어 보이는 제자에게 그는 여행을 제안한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는데 얼마 안 가 스승은 급사를 한다. 추모를 위해 간 곳에서 그의 쌍둥이 동생을 만나면서 슬픔은 신기함으로 전환된다. 그는 형의 유품인 카메라를 이에게 넘긴다. 오랫동안 잠들었던 카메라는 새로운 주인을 만나 낯선 곳을 여행할 준비를 마친다. 여름의 언어에 사로 잡혔던 이는 설국으로 떠난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낯선 곳에서 식사를 하고 예정에 없던 숙소를 찾아 산길을 헤맨다. 밤이 깊어서야 만난 여관, 그곳에서 만난 벤조는 차가운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카메라 역시 자신만의 여행을 떠난다. 숏과 몽타주를 만들어 내는 낯선 빛들을 담고 다시 돌아온다.
1부의 여름은 액자로 표현된다. 이방인이 포착한 이방인의 고독이었다. 언어라는 세계를 만들어 스스로 가두고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게 도달한 낡은 카메라는 프레임 밖에 풍경을 전해줬다. 미야케 쇼는 <여행과 나날>을 통해 말한다. 서사의 인과보다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만든 이미지야 말로 힘이 있다고, 4:3의 좁은 화면은 바다와 산의 광활한 풍경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안에는 밀도 높은 생이 시간과 시간 사이를 자유롭게 다닌다. 영화는 의미를 버릴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이야기를 한다. 여름의 반대 편에서 겨울을 걷고 눈 위에 발자국의 의미를 아는 순간 흰 종이 위에 글을 쓸 수 있다. 마침내 익숙한 언어에서 벗어난 것이다.
<여행과 나날>은 서사라는 프레임 밖을 여행하는 실험적인 영화였다. 안과 밖을 동시에 봄으로써 관성에 지친 우리에게 신선한 질문을 던진다. 왜 안정이라는 불안을 안고 있는가? 고착되고 정지된 인지에 새로운 자극을 통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게 한다. 영화에 오락성만 남은 현재,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의 풍경은 여전히 영화 밖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