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의 풍경 “일상이라는 바다에 내리는 빛“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지는 않지만 가끔 픽사의 작품들을 만나면 반가울 때가 있다. 늘 알기 쉬운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내면에 묵직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웅숭깊은 질문을 하기에 기대가 되었다. 디즈니와 한 몸이 되면서 그들이 전하던 가치관 역시 변질되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여전히 꿈과 희망을 정답이라 말하는 디즈니식의 답변 대신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하는 것은 무엇인지 묻고 있었다.
직선과 곡선으로 나눠진 세계
현실에 존재하는 뉴욕은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프 노트에 피아노, 공사장에 떨어지던 벽돌 심지어 길을 가르는 표시까지 가드너는 그 세계에서 원형의 맨홀에 빠져 다음 세상으로 가게 된다. 영혼의 세계는 곡선으로 이뤄져 있다. 그곳을 관리하는 이들 역시 하나의 선으로 된 존재로 등장한다. 이런 연출은 두 세계를 구분 짓는 형태를 가지기 위함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얼마나 본질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나 돌아보게 한다. 원형의
출구를 통해 피투 된 존재에서 사각의 틀에 모든 것이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한 번쯤 진짜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생각해 보게 한다.
내가 아닌 내가 되어 보는 시간
22의 가짜 멘토가 되어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려 고군분투를 하던 조와 22는 현세와 저승을 자유로이 다니던 현자를 만나 도움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22와 함께 현실로 돌아온 조는 자신이 고양이의 몸으로 22가 자신의 몸에 들어간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에서 둘은 자신들이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간다.
22는 조의 몸을 통해 작지만 소소한 일상들이 나를 만든다는 사실을 느끼고 조는 고양이가 되어 봄으로서 주신의 주변 인물들의 삶에 귀 기울여 보게 된다. 이발사인 데즈는 원래 수의사가 되려 했으나 꿈을 포기하고 이발사가 되었다. 조는 그가 불꽃에 다다르지 못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이발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머리를 하며 늘 재즈에 관한 대화만 이어갔다. 조에게 불꽃을 피아노라 믿었고 무대에서 최고의 연주를 하는 것이 살아가는 목적이었다. 고양이가 된 조는 데즈와 재즈에 관해 대화할 수 없었고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이발을 하면서 느꼈던 즐거움, 이웃들과 가까워지는 순간들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있는 그를 보며 22와 조는 내가 아닌 내가 되었을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듣지 않았던 것들에 귀를 기울여 보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나를 만드는 모든 순간들
조 가드너는 결국 그토록 염원하던 하프 노트 무대에 오른다. 혼신을 다한 연주에 관객들은 감동하고 합을 맞춘 밴드 멤버들 역시 만족한다. 무대를 마친 후 돌아가려던 조는 허무한 감정을 느낀다. 꿈이 이루어졌는데 어째서 그럴까 도로시아는 조에게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바다에 있으면서 바다를 찾았던 물고기, 도로시아는 택시를 타고 떠나고 이어지는 장면은 지하철에 서있는 조의 모습을 보여 준다. 목적을 향해 달리던 중반에 장면이 다시 구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엔 그 열차 칸에 있는 승객과 차창에 비치는 자신을 돌아본다.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22에게 외쳤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나를 만들어 온 모든 순간들과 열망이 함께 이루어냈다는 사실을 깨 땋게 된다.
22와 조 가드너
22를 설득하던 멘토들은 그에게 생의 위대함을 가르치려 들었고 자신들의 업적을 통해 어필을 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반면 조의 삶은 너무나 평범했다. 창대한 꿈이 있었으나 평범하고 소시민 적인 삶을 살았던 그에게 22는 어째서 반응을 했을까? 그것은 영화가 던지는
주제와 통한다. 인생은 위대한 무언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보통의 일상을 살아 내는 중에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22는 조의 몸을 통해 느꼈던 사소한 것들에서 살아있다는 감각을 배운다. 피자 한 조각, 도시를 지나는 바람, 창에 내리는 빛줄기, 천천히 내리는 나뭇잎, 타인과 나누었던 사탕 한알까지 22는 살아있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간다. 우리는 일희일비하면서 순간순간을 쌓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다음 세상으로 떠나겠지만 나를 이루는 것들을 인지하고 잠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소울>은 22와 조 가드너 그들을 둘러싼 세계와 인물을 통해 나에서 우리로, 우리에서 나로 살아가는 의미를 곱씹어 보게 했다.
목적과 수단은 잠시 내려두자. 가끔은 방황하고 비틀거리자. 아주 가끔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