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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더스 FINDERS Jan 21. 2022

시인, 어쩌면 편지 배달부

일기를 편지로 배달하는 시인 문보영

1992년생 시인, 최단 기간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 일기 배달부, 손 편지 마니아, 전화 시 낭송가, 브이로거, 힙합 댄서∙∙∙. 문보영 시인을 검색하면 뒤따르는 키워드들입니다. 유튜브를 시청하다 알고리즘의 늪에 빠진 것처럼 그의 이력은 보통의 문인들과 전혀 다른 행로로 거침없이 나아갔습니다. 등단 이래 시집, 산문집, 소설집 등 반년마다 책을 펴내는 작가로서의 근면함도 잊지 않고서 말이지요. 일기를 쓰다 시의 영감을 떠올리고 다시 소설 같은 일기를 손 편지로 써서 우체국으로 향하는 수상한 시인. 그렇게 물음표를 잔뜩 안은 채 문보영 시인의 작업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 FINDERS


시인, 어쩌면 브이로거

문보영 시인은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듬해 낸 <책기둥>은 첫 시집으로 최단 기간 김수영 문학상 타이틀을 거머쥔 시인으로 회자됐다. 2019년 발표한 두 번째 시집 <배틀그라운드>는 좀 더 능란하고 치밀하게 시의 문법을 넘나들었다. 픽션과 산문 어딘가를 부유하는 듯한 문장과 직접 그린 그림들. 문보영식 시적 허용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이력만큼 예측 불가능하다.


데뷔하고 벌써 7권의 책을 냈습니다. 시와 산문은 번갈아 쓰는 편인가요?

제가 멀티가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최근 인정했어요. ‘일기 딜리버리’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에 직업적으로 일기를 계속 썼는데, 사실 그 기간에는 시를 거의 쓰지 못해요. 반대로 시를 쓸 때는 ‘일기 다이어트’를 하는 거죠. 지금처럼 일기 딜리버리를 쉴 때 시를 쓰니까요. 제가 어느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어떤 단상이 느껴졌을 때 그냥 모르는 채로 푹 묵혀두었다 쓸 때가 있어요. 드문드문 그 글이 스스로 뭔가를 말하는 기분이 들면 의식적으로 일기를 안 쓰려 해요. 반대로 일기에 열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확 폭발해서 시가 되는 경우도 있죠.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거 같아요. 제게 일기와 시는 그런 관계예요.


브이로그나 일기 딜리버리는 시 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브이로그는 뭔가 제가 시인이라는 자의식을 계속 없애려고 시작한 거였어요. 근데 하다 보니 또 시인의 브이로그가 되긴 했지만요. 시작할 때는 진짜 시인이라는 자의식 없이 일상인으로 잘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반면 일기 딜리버리는 뭔가 밑천이 없는 상태에서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을 제 스스로 만든 거잖아요. 부담스럽게 말이죠. 그런데 그런 환경에서 써야 하는 글이 있더라고요. 몰아붙였을 때만 쓸 수 있는 글. 나중에는 도저히 나로 시작하는 문장을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은 지점까지 갔는데, 그럴 때는 장르적 고민을 하면서 소설로 방향을 틀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진짜 할 말이 다 떨어지면 시를 쓰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 찾아오는 거죠.


ⓒ FINDERS


일기주의자, 어쩌면 편지 배달부

문보영 시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건 다름 아닌 일기다. 비정기적으로 모집하는 ‘일기 딜리버리’ 서비스는 일종의 1인 문예지다. “사실을 기록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가장 자유로운 글쓰기”라는 문보영 시인이 정의 내린 대로 시, 소설, 에세이, 그림, 사진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무정형 일기를 주기적으로 보내준다. ‘일기 딜리버리’가 구독자를 조용히 늘려간 비결은 손 편지. 매호 첫 번째 일기는 직접 손으로 쓴 일기를 편지 봉투에 고이 담아 발송한다. 받아본 사람들은 안다. 문보영 시인의 이상한 그림과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은 손 편지가 얼마나 중독적인지.


작가님에게 일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일단 제가 지칭하는 일기와 에세이는 구별해야 해요. 엄밀히 말해서 제게 일기는 블로그나 일기장에 쓰는 글인데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을 계속 저에게 전해줘요. 블로그에 쓴 일기를 나중에 산문집으로 엮는다고 했을 때 제 스스로 그 글에게 몹쓸 짓을 한다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아요. 그러니까 책으로 나오는 과정은 일종의 사회화와 비슷해요. 그렇다고 블로그 일기를 그대로 책으로 내기에는 출판사 편집자분에게 뭔가 죄송하기도 한 이중적인 마음이 들어요.

ⓒ FINDERS



※ 본 콘텐츠는 'FINDERS 파인더스 Issue02. 레터 보내는 사람들'의 수록 콘텐츠 일부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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