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작가 김민채
요즘같이 디지털 도구가 발달한 세상에 편지를, 그것도 누가 손으로 쓰느냐며, 편지에 대해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편지 쓸 시간에 전화나 문자를 하면 그만이긴 하지요. 하지만 편지는 우리에게 내면을 발견하게 할 문장과 호흡을 남긴다는 걸, 김민채 작가와 대화하면서 확인했습니다.
내면의 발견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지금의 언어, 지금의 호흡으로 나는 누구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해보는 게 내면의 발견이 아닐까요. 작가에게 편지는 언제나 당신과 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작은 움직임으로 새로운 물보라를 일으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편지를 쓰며 편지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김민채 작가를 만나볼까요.
편지로 이어진 인연
여덟 살 때 첫 편지를 받았다고 하니, 얼추 계산해도 작가는 20년 이상 손 편지를 주고받으며 살아왔다. 더구나 받은 편지들은 버리지 못하고 모두 간직한다고 하니, 엄청난 맥시멀리스트다. 시간을 들여야 하는 편지를 꾸준히 써온 원동력이 궁금했다. “편지를 써서 부치는 일은 누군가와 대화하는 거라고 봐요. 혹자는 답장을 써서 전해주고 혹자는 제게 와서 말을 걸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조금 더 투명하게 서로의 진심에 가까워지죠. 그런 깊은 관계가 만들어지는 힘이 편지에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계속 썼던 것 같아요.”
편지는 남편과의 인연을 맺어준 소중한 존재다. “연애 중일 때 잠시 헤어져 있었는데 자취방 문 앞에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는 내용의 편지가 붙어 있었어요. 저는 헤어진 사람과는 다시 연애하지 않는다는 원칙 같은 게 있었는데요, 남편을 다시 만난 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작은 편지 한 장 때문이 아닐까 해요. 문자나 전화도 아니고 직접 찾아와서 편지를 남겼으니 외면할 수 없었거든요.” 만나서 다시 사귈 마음 없으니 그냥 돌아가라고 이야기하려 했는데 막상 만나니 웃음만 났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애했고 서로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됐다. 여전히 그 편지를 지니고 다닌다며 배시시 웃는 작가의 표정이 투명했다.
편지로 시작한 글쓰기
김민채 작가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최초의 욕망을 느끼게 한 것이 바로 편지다. 중학생 때 친구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를 받은 친구가 다음 날 작가에게 한 말 덕분이다. “어제 네가 써준 편지 읽고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내 글이 누군가에게 자극을 줄 수 있다니 전율이 일더라고요.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었어요. 특히 누군가를 울리는 글을.”
바람대로 에세이, 여행기 등 각종 글을 썼고, 다른 이의 글을 편집했다. 그동안 주고받은 편지에 대한 기억을 모아 에세이 <편지할게요>를 냈다. “상대에게 애정이 없으면 편지 쓰기는 힘들어요. 추억도 없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면 한두 줄 쓰는 것도 곤욕스럽잖아요. <편지할게요>를 쓰면서 제가 살면서 받은 사랑을 발견했어요. ‘이 사람이 이렇게나 나를 사랑했구나’ 하는 마음을요. 그 사랑을 하나씩 펼쳐 다시 읽는 과정이 참 좋고 소중했어요.”
편지로 이어진 미래
2021년 8월, 작가는 편지 형식의 에세이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수신인은 로디. “코로나 시대라 더더욱 저마다의 외로움이 넘쳐날 텐데요, 저는 친구가 보내주는 편지가 큰 위로가 됐어요.” 예기치 못한 때에 편지가 우편함에 꽂혀 있는 경험은 그의 삶에 새로운 물보라를 일으켰다. 큐레이터인 친구는 몇 장씩 빽빽하게 편지를 써 보냈고, 어떨 땐 아티스트의 그림 엽서나 귀여운 스티커를 동봉해 보내주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받은 위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실물 편지를 우편함으로 부쳐서 꺼내어 만지고 읽어볼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
순천으로 이사 오면서 작가는 부산에서 운영하던 책방 ‘취미는 독서’의 영업을 종료했다. 시즌 2로 전남 순천에서 새롭게 문을 열려고 준비 중이다. “예전부터 늘 해보고 싶었던 일인데, 책방 안에 편지를 쓸 수 있는 작은 방을 만들고 싶어요. 편지지와 봉투, 엽서, 우표, 펜, 연필 같은 문구류가 잔뜩 놓여 있는 방이요. 누구에게든 무슨 말이라도 적어야만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방이 있다면 정말 설렐 것 같아요.”
※ 본 콘텐츠는 'FINDERS 파인더스 Issue02. 레터 보내는 사람들'의 수록 콘텐츠 일부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