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시작을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소개를 해야 할 것만 같다.
고등학생 시절, IMF의 여파로 인해 화장실이 세 개나 있던 아파트에서 쫓겨나
하수도 냄새가 진동하는 반지하로 이사를 가게 되었음에도
너무나 음악이 하고 싶었다.
한강변에서, 석양빛을 받아 눈부시게 일렁이는 황금의 거대한 잔물결을 바라볼 때,
라디오(아마도 배철수의 음악캠프이었으리라)에서 들려온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가 이미 내 마음속에 박혀버린 때문이었다.
출처 : pixabay.com
욕망은 컸지만 용기는 작았던 나는, 대학만 들어가면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라는 아버지와 타협해 관악산 반지하 집에서 제일 가까운 숭실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블랙세인트라는 밴드 동아리에 가입을 하였고 강의실이 아닌 세인트에 출석하러 학교를 갔다.
군대를 다녀온 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취업 준비에 매진했다.
취업에 대한 일념으로 맛을 본 증권회사원들의 삶은 정말 까마득히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술집을 겸하는 라이브클럽에서 엘프 반주기(교회나 술집에서 노래와 연주를 위한 반주기)를 재생해 주거나 밤무대연주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 싶었다.
이래저래 다시 28살 늦깎이 학생이 되었다.
재즈클럽을 돌며 업라이트 베이스로 긱을 하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밴드도 했다.
박동휘라는 천재적 뮤지션을 만나 Recordame라는 팀으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수상을 하는 영광도 맛봤다.
하지만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베이스를 맡으며 프로 연주자로서의 첫발을 뗀 나는 기어코 이번에도 짜인 삶의 틀에 나 자신을 맞추는데 실패했다.
이 무렵 정키의 곡 ‘홀로’ 베이스 세션 녹음을 끝으로 연주자의 삶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연주는 실시간이었지만 ADHD였던 나는 언제든 나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실수는 늘어나고 자존감은 줄어들었다.
잠시 정신을 팔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작곡과 편곡만이 나의 유일한 살 길이다 생각했다.
영상음악이 좋았다. 광고음악감독이라는 직함이 부럽고 멋져 보였다.
알바로 진행했던 광고음악 작업의 지급된 금액을 확인한 순간 내가 갈 길은 정해졌다.
가난하고 불확실한 나의 삶에 동아줄이 될 것만 같았다.
광고녹음실 KissFM의 전설 배철우 실장님에게 너무나도 잘 보이고 싶었고 어여삐 여겨주신 실장님이 기회를 주셨다.
나의 첫 입봉작에서의 두려움과 욕망과 흥분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해 낼 수 있다.
https://youtu.be/iYYRH4apXDo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