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에코(Praeco) : 광고의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4. 세계의 창조
현재까지 광고음악감독으로서 가장 뿌듯했던 작품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많은 고민 끝에 2022년 유광굉 감독님의 작품 ‘삼성 Finally BESPOKE Infinite Line’을 뽑겠다.
영상을 보자마자 압도당했다.
편집은 거의 완성되었고, 곡의 방향성 설정은 스톤사운드웍스의 이대성 팀장이 찾아낸 느낌의 레퍼런스가 바탕이 되었다. 이는 홍성래 실장의 취향과 연결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광고음악은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다.
유광굉 감독님의 작품을 볼 때마다 항상 공통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키워드가 몇 가지 있다.
영원, 초월, 파괴와 부활 같은 기독교적인 메타포. 그리고 유년, 소년 혹은 소녀스러움 에 내재된 모호함과 순수성, 충동성이 연관된 이율배반적 매력.
비스포크 인피니트는 유광굉 감독님의 기존 작품에 대한 나의 느낌을 바탕으로 제작하였다.
아래의 글은 어디까지나 나의 해석일 뿐임을 미리 알려드린다.
The Light
천지창조, 빛이 있으라. 서사의 시작이다.
빛이 빅뱅을 일으키고 세상이 창조되었다.
천지창조의 순간은 인간의 두뇌로는 재현할 수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리라.
정확하게 들리는 사운드는 피하고 싶었다.
빅뱅의 순간, 임팩트가 강한 사운드에 멀티밴드 컴프레서(특정 주파수 대역만을 컴프레싱하는 장치)에 사이드체인(소리의 다이내믹을 특정순간에만 처리할 수 있도록 걸어주는 외부신호)을 주어 엔벨롭(소리의 시작과 끝의 시간경과적 표현)의 특성에 변화를 주었다.
결과적으로 폭발의 순간에 귀가 먹먹 해지는 듯한 느낌, 그리고 뭐라 정확히 형언할 수 없기에 오히려 더 사운드를 숨길 수밖에 없도록(그 장대함은 인간이 느낄 수 없기에) 연출했다.
이후 등장하는 줄무늬 패턴과 입자는 빅뱅의 결과로써 세상에 출현한 물질, Particles and Waves 입자와 파동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이는 곧 이 땅에 내려지는 신의 말씀이라 해석했다.
요한복음 1장 1-3절의 영상적 구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신시사이저인 옴니스피어의 패치를 여러 가지로 조합하고 스테레오 이미지를 확장해 신의 창조 사역을 찬양하는 천사의 노랫소리를 표현하였으며,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합창단의 노랫소리로 입자감을 표현하였다.
이윽고 글리치 사운드와 호응하는 영상 속에는 여러 미생물들을 엿볼 수 있다. 바로 생명의 탄생.
전체적으로 화면 전환 시 귀가 아닌 가슴으로 창세기의 사운드를 느낄 수 있도록 서브대역의 주파수를 있는 그대로 살리거나 혹은 부족하다고 판단될 때 UAD Little Labs 플러그인으로 강조하였다.
The Time
시간(시공간)이 탄생하자 마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노리스와 같은 형태로 비스포크 냉장고가 등장한다. 모노리스는 인류에게 2진법의 디지털로 상징되는 지식을 내린다.
사실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이 세계는 모두 디지털이다. 세상의 본질은 결코 선형적 linear이지 않다.
디지털의 이진법적 분절성, 그리고 입자에 대한 표현을 위해 스타카토로 끊임없이 내달리는 콰이어의 사운드를 연출하였다. 이는 The Light 파트에서의 입자감과 연결성을 가진다.
독특한 점이라면 이 작품에서는 생명이 먼저 창조되고 나서 시공간이 탄생한다는 점이다.
나중에 감독님을 뵙게 된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 사항 중 하나다.
이윽고 지식전수가 끝이 나고 인류가 등장한다.
Finally
마침내 우주, 비스포크, 인류 즉 세상이 창조되었다.(천지인?)
7일간의 천지창조 이후, 안식을 표현하기 위해 잠시 음악의 힘을 빼며 휴식의 한숨을 표현하였다.
어떤 방법으로도 원하는 소리를 만들지 못했지만 운이 좋게도 대략 세 시간 만에 스플라이스에서 원하는 느낌의 한숨 소리를 찾아냈다.
광고 속 비스포크 냉장고는 단순히 개개인의 취향을 넘어서는, 영원 혹은 초월과 연결된 그 어떤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나가더라도 비스포크로 인해 신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도처에 존재한다.
신이 인간에게 현현한다면, 모세가 보았던 것처럼 불타는 떨기나무의 모습일까,
아니면 기억나지 않는 영화 속 장면처럼 어린아이의 모습일까.
나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라 생각한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기에, 순수하면서도 욕망덩어리인, 그래서 그 끝을 가늠할 수 없기에 어린아이의 노랫소리에서 노자적 진리와 같은 심묘함을 느낀다.
구약에서의 불타는 떨기나무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다소 촌스럽게 느껴진다.
신의 언어는 인간이 해석할 수 없다.
그렇기에 가사의 해석은 중요하지 않되 노래 가사 속 인피니트가 들리도록 유도하였다.
그리스어나 라틴어, 혹은 히브리어로 쓰이지 않은,
신을 찬양하는 시편이 아닌 천상에서 직접 내려오는 ‘말씀’을 인간이 직접 듣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 느낌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광고 속 아이의 음성은 신의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처럼 스타차일드로 부활한 초월적 인류의 것일 수도 있겠다.
Respected by Bespoke
광고 속 비스포크 라인은 신적 존재, 초월, 영원과 관련된 어떤 것이다. 비스포크가 찬양하는 대상은 그것을 사용하는 소비자일까 아니면 신일까? 알 수 없지만 광고 속에서는 신의 물건인 비스포크 냉장고가 존재하므로 신의 지식이 인류에게 전달되었고 말씀이 그 주변을 둘러싸며 천사들의 합창이 도처에서 울려 퍼지며 등장인물의 육체적 환희와 함께 대서사시가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대서사시의 절정으로 가는 과정에서 비스포크 냉장고가 어떻게 감각적으로 삶에 녹아드는지, 제품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 리듬감 넘치는 호흡의 편집으로 보여주는 것은 유광굉 감독님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이후 LFO와 사인파를 사용한 묵직한 리듬의 추가와 편집 수정 등의 절차를 걸쳐 내가 생각하는 나의 대표작
‘Finally BESPOKE Infinite Line’이 완성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