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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 Dec 07. 2023

나는 취업을 그만두기로 했다.

취업? 나는 안 한다 이거예요

나는 오랜 시간 취업 준비를 했다. 이것저것 도전하고 여러 명과 어울려 공부도 했다. 밤을 새우며 자기소개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지만 내가 준비한 것들이 진짜 그들에게 읽혔는지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어김없이 도착하는 불합격 메일, 불합격 문자를 붙들고 자기혐오를 한 겹 더 쌓아 올렸다.  이렇게 반복이 되니 결국 나는 내 자신이 싫어졌다. 취업 하나 못하는 내가 등신 같았고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 같았다.


100번 지원 중 98번은 응답 없음, 1번은 불합격 통보, 1번은 면접까지 가지만 쓴소리 듣고 불합격. 쓰린 마음 붙잡고 다시 취업 사이트 정독하듯이 회사 찾기. 매일 이렇게 좌절하는 하루가 몇 개월이 되고 몇 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면접을 보기만 해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또 면접에 가서 나이 공격, 경력 공격, 학력 공격 등 각종 공격의 연속을 듣고서도 잘 보이겠다고 애쓰는 내가 너무 불쌍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20대를 그냥 허투루 보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바빴고 스펙을 쌓기는커녕, 대학도 진학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20대를 보냈기에 지금의 30대에 그 업보를 그대로 돌려받는다 생각했고 괴롭긴 했지만 받아들였다.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막살았던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허투루 보내는 시간 그 사이사이, 분명 미래에 대한 고민, 진로에 대한 생각,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며 노력하는 내가 있었을 거고 그렇기에 어쨌든 그 면접 자리에 있게 된 건데. 웃기게도 내가 면접 보러 간 회사들은 하나 같이 내 인생을 다 비웃고 무시했다.


한 회사의 대표라는 사람은 그 나이에 경력 관리 해야 한다, 회사는 왜 그만뒀냐, 그거 다 변명이다, 시간 관리하면서 살아라, 회사 다니기 전에는 뭐 했냐, 얼마나 일했냐, 어떻게 살았냐 이런 질문만 하더라. 내가 이 일을 하려는 이유, 이 일로 인해서 어떤 발전을 꿈꾸는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회사를 지원했는지는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은 그냥 한 사람 짓밟으면서 본인 자존감 높이기 바쁜 늙은 아줌마일 뿐이었다.


이런 같잖은 면접들만 보고 나니 취업이 뭐고, 회사가 뭔지 싶었다. 회사에 들어가지 않으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건가, 애초에 나는 진짜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인가. 답도 없는 고민과 질문의 굴레에 갇혀 스스로를 계속 괴롭혔다. 긍정적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자기혐오와 비관적인 생각으로 나를 꽉 채웠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왜 내가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회사가 뭐라고 우울증까지 생기게 하는지. 뭔가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지금 당장 원하는 회사에 합격을 해서 원하는 일을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이렇게 우울하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취업을 그만두기로 했다.




취업을 그만두고 나서 제일 처음 한 것은 아빠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살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서울 자취집도 정리하고 부산에 내려와서 다시 아빠와 살겠다고 그랬더니 아빠는 그래하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더니 담배를 피우러 가셨다.


처음에 아빠는 그냥 계속 서울에 있으라고 했다. 아빠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못 해줬고, 다른 집처럼 좋은 학원 한 번 못 보내고, 대학 보낼 돈도 마땅치 않았고, 항상 돈이 없으니 나중에 하라고만 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충분히 나를 서포트해주고 싶다며 돈 걱정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 면접 보러 가면 나이가 많다고, 경력이 아쉽다는 소리 밖에 안 듣는다고 아빠한테 어떻게 말하겠나. (이후에 어쩌다 다 말하긴 했다.)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더 찾아보겠다는 말만 했고 그렇게 서울 원룸을 정리하고 부산 본가로 내려왔다. 취업 중단을 통보하고 집을 정리해서 내려오고 아빠와 함께 살게 될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데 딱 3주가 걸렸다. 다시 한번 내 뛰어난 실행력에 스스로 감탄했다.


그냥 서울에 있지, 서울에 계속 있으면 안 되나? 하던 아빠도 막상 내가 오니까 좋기는 좋으신가 보다. 매일 자기 전, 잘 자라고 이불을 폭 덮어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매일 내가 좋아하는 과자와 커피를 사 온다.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믿고 사랑해 주시는 아빠를 보며 과연 취업을 그만두는 것이 잘한 일일까 0.1% 정도는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아빠가 나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겠다는데 없던 힘까지 내서라도 꼭 내 길을 찾아야지.


취업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고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저마다의 이유와 생각들로 내린 결정들이지 않을까. 반드시 취업이 정답인 것도 아니고, 취업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니 그저 관대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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