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안개 걷힌 후에

by 신완식

“와! 안개가 아주 짙게 드리웠네요.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게요. 목사님 운전 조심하셔야겠어요.”

“네, 아주 천천히 조심해서 몰겠습니다.”

“이렇게 안개가 끼었으니 낮에는 날씨가 좋을 겁니다.”


어제였습니다. 여느 날처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운행하는데 사방에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오전 4시 20분경. 운전경력이 30여 년이나 됐지만 이런 때는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됩니다. 좁은 농촌 길에 여간 변수가 많아야지요.


한 시간 남짓 지난 귀갓길은 더 심해졌더군요. ‘아! 8시경에는 서울로 출발해야 하는데...’ 조그만 경차를 몰고 짙은 안개 길을 헤쳐 갈 생각을 하니 적잖은 부담이 됐습니다. 해가 뜨면 괜찮겠지!


몇 개월 만에 아내 외진 받으러 운전대를 잡는데 새벽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8시니 곧 걷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조심운전을 시작했습니다. 국도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는데 한 동안은 별 차이가 없더군요. 그래도 연신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더 조심하자. 해가 뜨기만 하면 삽시간에 걷힐 테니...’ 그리고 한 30분을 더 달렸을까요.


“여보! 창밖을 봐. 정말 멋지지 않아?”


산을 뚫어 만든 고가도로를 달리는데 산 중턱에 아직 안개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영화 속 한 장면 같았습니다. 한 동안 운전을 방해하던 안개가 부분적으로 걷히니 오히려 탄성을 자아낼 만큼 자연경관이 아름다웠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조그만 시골집들은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이 정도면 목사의 입에서 찬송가가 나와야 하는데 마음속 깊이 엎드려 있던 오래된 노래가 제 뇌리를 울렸습니다.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제 또래들에게 다정한 누님 같은 가수 양희은 씨가 부른 <한계령>입니다. 저는 그 노래를 부를 때면 왠지 울컥해집니다. 특히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이 대목에 이르면.


새벽에 제게 말씀해 준 어르신들은 모두 80대 중후반의 권사님들이십니다. 올해 아흔한 살이 되신 분도 계십니다. ‘낮에는 날씨가 좋을 거예요.’ 물론 충청도 말씨로 그러셨습니다. 낮엔 좋을 거예유!


맑고 화사하고 따스한 대낮. 하지만 그때가 이르기 전까지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시간이 제법 길게 이어졌습니다. 목사가 아니랄까 봐 또 설교거리를 찾았습니다.


‘나는,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표준새번역, 로마서 8장 18절)


‘내 형제 여러분,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 여러분은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믿음의 시련을 받으면 인내력이 생긴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공동번역 개정판, 야고보서 1장 2~3절)


앞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드는 짙은 안개 같은 삶이 펼쳐질 때 한낮을 생각하며 참고 견디고 기다려야겠습니다. 해가 뜨면 그토록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온갖 장애물들이 오히려 내 삶을 빛나게 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아! 하루가 지난 오늘은 하루 종일 아무리 뒤져도 안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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