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음악인 되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음악을 전공했다가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회사에 들어갔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곡을 만들고 공연을 기웃대다가 아무래도 이렇게 회사를 계속 다니다가는 나중에 관짝에 들어가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입사 1주년, 퇴직금을 챙겨 런하려는 원대한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팀장님께 사직의사를 전달하고 퇴직일이 결정되었다.
첫 글은 전업 음악인 생활을 시작하기 한달 전, 퇴사 선언을 맞이한 사람들의 반응을 기록해본다.
우선 부모님이다. 고등학교 때 클래식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이미 충격을 받으셨으므로 우리 부모님은 타격이 없으셨다. 회사 그만 둔다고 하니까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으로 일단락되었다. 이왕 하는 거 풀칠할 정도로는 벌어라. 부모님의 기대는 빨리 저버리는 게 (?) 살기 편한 것 같다.
두번째는 남자친구인데, 그는 자칭 대가리 꽃밭의 수호자로 인류애가 넘치는 이상주의자다. 회사를 그만 둘 예정인데 당분간 돈을 못벌테니 이제 맛있는거 좀 덜 먹자고 했다. 괜찮다며 김밥집 VIP 및 도시락 달인이 되어보자고 했다.
다음은 친구들, 과연 엠지라 그런지 퇴사를 전폭 지지해주었다. 요새 퇴사 철인지 비슷한 시기에 갭 이어를 가지거나 쉬려고 그만두는 친구들도 꽤나 있었다. 프리랜서로 전향한 언니오빠들도 퇴사하면 인성이 급격하게 좋아진다며 환영해주었다.
가까운 이들에게 알렸으니 회사에 통보할 차례다. 카톡 프로필이 자작곡이라 웬만하면 내가 노래 만드는 걸 알고 계신다. 부장님은 그만둔다니 '작곡 전공이죠? 음악하시려구요? 화이팅' 으로 일축하셨고 동료들은 응원해주면서 생활비를 어떻게 벌건지 궁금해했다. (아마 나인 투 식스가 아닌 모든 일들을 해보겠죠!)
대체로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이었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건 재미로 쓰레드에 올린 글이었다!
스물여섯 퇴사하고 음악하려고 합니다! 노래 들어봐주세요
가장 최근에 만든 노래들의 유튜브 링크를 올리고 훈수를 요청했는데, 100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놀란 음악인들은 (그리고 업계인들은) 달려와 얼굴도 모르는 사회초년생을 걱정해주셨다! 대체로 현실은 시궁창이다, 성공하기 너무 힘든 길이니 취미로 하고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이 많았다.
공감되고 고마운 말들이 많았지만 결정을 밀고나가기로 했다. 사실 그건 내가 몇년 전 음악할 용기가 없고 자신감이 없어서 이미 했던 생각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끝나면 매일 작업실로 뛰어갔지만, 도망쳤다는 아쉬움과 함께 시간을 더 투자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왔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갖느니 한번 더 해보기로 한다. 하루하루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어제보다 나은 날을 보내면 언젠가 어떤 열매가 있을 것이다.
곧 퇴사하는 노래 만드는 사람입니다.
제 노래가 궁금하신 분은 인스타에 @0nesipoflove 를 검색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