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가로등 위가 아니어도, 나의 하루는 충분히 빛난다.
낮에 읍내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도로변의 높은 가로등 위마다 까마귀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시골 도로에는 유난히 까마귀가 많다.
산에서 내려온 들짐승들이 차에 치이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고양이, 너구리, 오소리, 뱀까지.
철마다 도로 한켠에는 그렇게 생명을 잃은 야생동물들이 남겨져 있다.
그곳은 까마귀들에게 ‘기회의 장소’다.
힘들게 사냥하지 않아도, 손쉽게 먹이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녀석들은 가로등 위에서 도로를 지켜본다.
어딘가에서 또 다른 사고가 나길 기다리며.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일이 있었다.
쉽게 얻은 먹이를 먹던 까마귀 한 마리가
차를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순식간에 찾아온 죽음이었다.
‘손쉬운 먹이에도 대가가 따르는구나.’
그 까마귀는 그걸 알고 있었을까.
돌아오는 길 내내 그 장면이 마음에 남았다.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곳,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 길에 몰려든다.
누가 더 빨리, 누가 더 많이 얻을 수 있을까 경쟁하며.
하지만 세상에 ‘쉬운 길’은 없다.
그 쉬움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위험과 대가가 숨어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려고 한다.
김치를 담글 때도 그렇다.
조미료 한 스푼이면 감칠맛을 금세 낼 수 있지만,
나는 진도에서 잡은 꽃게로 젓갈을 만들고,
직접 농사지은 호박고구마를 구워 양념에 넣는다.
설탕 대신 고구마의 단맛을 믿고,
화학 조미료 대신 재료의 깊은 맛을 기다린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 맛은 천천히 깊어진다.
나는 그런 김치처럼 살고 싶다.
빨리 오르기보다, 천천히 단단해지는 사람으로.
쉽게 얻으려 하지 말고, 깊이 있게 살아가고 싶다.
내가 담그는 김치의 맛이 그러하듯,
내 삶도 그렇게 익어가기를 바란다.
조급하지 않게, 속도를 스스로 지키며,
시간이 만들어주는 진한 향과 맛을 믿는 사람으로.
높은 가로등 위에 앉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내 자리에서, 내 속도로,
오늘도 천천히 나를 익혀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