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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사짓는 뚱여사 Aug 07. 2022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농사일을 시작하면서 아니, 더 멀리 깊숙한 곳으로 달려가서 내 기억의 시작부터 꾸준히 내 속에서 외치는 한마디는 "행복하고 싶다" 였던 것 같은데,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나는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행복은 어디에 있길래 이리도 내게 오지 않는 것 같은 것일까요?


어느 해에 고추를 만주 넘게 심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초보 농사꾼에게 좋은 밭을 누가 줄리가 있나요.

길 없고 흙이 안 좋거나 주변에 물이 없거나 경사가 심해서 농사짓기 어려운 밭들만 초보에게 기회를 주지요.

경사가 심한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려면 발가락 끝에 힘을 잔뜩 주고 몸을 고정시키면서 고추를 따야 합니다.

허리 아픈 것은 기본이고 다리에 쥐가 나서 밤마다 다리를 잡고 방바닥을 굴러다녔습니다.


농사는 초보였고 갚아야 할 빚은 많았고 빨리 만회를 하고 싶은 마음에 비싼 고추씨를 사서 키우고 융자로 고추 말릴 건조기도 구입하고 넓은 마당이 가득 차게 고추를 펴서 말리면서 희망이 있다고 믿으며 한 여름 따갑고 뜨거운 볕을 무서워하지 않았더랬습니다.

고추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원예사로 달려갑니다. 한 번에 몇십 만원대의 농약을 이것저것 잔뜩 가져와서 고추들이 어찌 될까 봐 열심히 약을 해주죠.

아무리 신경을 써도 다른 농부들의 고추밭은 좋아 보이고 우리 고추는 왜 그리 키도 작고 고추도 작고 병들도 많고 풀도 다른 밭들보다 열 배는 더 잘 크는 것 같고,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이하는데, 해야 할 일들은 항상 산더미 같았죠.

수확한 고추들을 씻어서 말려서 다듬고 골라 골라서 팔려고 하면 가격이 폭락하는 농부들에게 참으로 가혹한 그런 절망만 있는 세상에 살고 있었습니다.

땅 임대료, 농약값, 건조기 대금, 건조기 돌리는 데는 석유도 필요하고 전기도 듭니다. 씨앗부터 비닐 깔고 트랙터로 밭을 치고 퇴비하고.... 끝이 없이 들어갔던 돈이 고추를 팔면 절반도 못 나오던 때가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애써 이 상황이 전국에 있는 농부들에게 같을 것이라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하며 내년에는 좀 더 나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 여름을 보냈던 것이 해마다 반복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 여름날 이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더위를 고추를 만져 매운맛이 배인 가득한 손바닥으로 슥슥 문지르면 이내 농부의 얼굴은 따끔따끔한 매운맛을 피부로 느끼게 되면서도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하나는 이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고통을 참고 인내해야만 행복의 시간이 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왜 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두통이 오는 더위를 참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고,

끊어져 버릴 것 같은 허리 통증을 참고 고추를 따고,

해야 할 일이 밀릴 것 같아서 배고픔을 참고,

고단함에 쏟아져 내리는 잠을 참고,

갚아야 할 빚들은 전화벨의 공포가 되어 숨을 참게 하는...


그런 여름을 몇 해를 넘기고 그 고통들이 당연한 일이 되는 내 인생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끼어 들어올 틈이 없어 보였습니다.

모내기를 하고 고추를 심고 나면 봄이라는 계절이 지나가고 고추를 따다 보면 여름이 지나고 벼를 타작하고 배추를 심으면 가을이 지나고 배추로 절임을 해서 보내다 보면 겨울도 가버리는 내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록을 해야겠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 일기 쓰기를 좋아했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 맘때 한창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의 기록들이 모이고 농사 이야기가 쌓여가다 보니 지나던 사람들이 댓글도 남겨주고 농산물을 사겠다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의 시간을 미니홈피에 정성을 쏟다가 다음 블로그를 거쳐 지금은 네이버 블로그까지 이사를 와서 일기를 씁니다.

이사를 다니는 그 시간 동안 차곡차곡 나의 이야기도 쌓여갔고 이웃들도 한 분 한 분 늘어갔습니다.

내 블로그에서는 더워서 힘들다고 투정도 부리고 농산물 가격이 폭락해서 속상하다며 짜증도 내고 배추가 병들었다고 걱정도 모두 쏟아내 버립니다. 엉망진창 농사짓는 모습을 봐주시는 분들이 박수도 쳐주고 응원도 해주고 함께 걱정도 해주는 그런 블로그가 되어갔습니다.


뜨거운 여름 한낮의 칼로 베이는듯한 햇볕 아래 고추를 따면서 이마에 땀이 주르륵 흘러 턱밑에서 방울 거리다 뚝 떨어지면 그 아래 내가 따놓은 붉은 고추들이 한가득 담긴 가마니가 방긋 웃어줍니다. 이 붉은 고추들이 나의 블로그를 찾아주는 이웃인 것 같아서 말도 걸어봅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깨끗하게 씻겨줄게요!"

고추를 파먹다가 들켜버린 벌레 놈을 사나운 욕과 함께 응징하며 작은 쾌감을 느끼는 별스러운 농부가 되기도 합니다.


이마에서 뚝뚝 떨어지며 아프기만 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던 그 더위는 언젠가부터 내 턱에 방울 거리면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어 컨트롤하고 싶어 하는 장난기를 끌어올려놓는 도구 변하기도 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깨를 베고 있는 옆집 할머니에게 농사지은 호박 몇 개를 건네며 며칠 전 얻어먹은 참외의 보답 했고,

마당에 고추를 말리려고 널다가 식구 중에 누군가가 "오늘 읍장이다!" 하며  요란스럽게 소리치면,

"출동이닷!" 온 식구가 덜덜거리는 트럭을 타고 읍장에 가서 순대 5천 원어치를 사 가지고 와서 한 끼를 해결하는 기적의 순간도 보냈습니다.


내가 찾던 행복이 어디 있었을까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꼭 인공호흡이나 심폐소생술만 있는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웃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이런 말들이 차곡차곡 내 가슴에 쌓여 삶이라는 공기가 되어 제 심장을 뛰게 하고 피를 뜨겁게 하는 심폐소생술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지금도 고추농사, 배추농사, 감자 농사를 지으며 허리 통증과 싸우고 있고  여전히 농산물 가격은 불안정하고 기름값과 인건비는 한없이 오르고 병해충은 너무 많아서 농산물을  수확하지 못할 때도 너무 많은 빚만 늘어가는 그런 농부입니다.

고통스러운 하루 안에 5천 원어치의 순대만큼의 행복이 있었고, 내가 얻어먹은 참외와 할머니에게 들려 보낸 호박 속에 행복이 담겨있다는 걸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아침에 눈뜨고 저녁에 잠들 때까지 한 가지의 행복이 열 가지가 되고 천 가지가 되고 만 가지가 되고....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내가 찾는 행복이 완전한 행복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행복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곧 찾아낼 당신의 행복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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