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랑 연애 때 사진을 보면 천진한 웃음만 가득했던 내 얼굴옆에, 장난 가득한 남편의 얼굴이 딱 붙어있다.
지금의 남편은 없어져서 찾아보면 폰 챙겨서 어디 도망가 숨어있고, 화장실에서 안 나오고,
나를, 아이를, 상황을 피해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태평양 같은 넓은 마음으로 지구는 둥글다고,
더 좋은 일이 오느라 그런 거라고 말하던 여유로운 사람이었는데
그리고 그 옆에 앉아 둥근 지구 얘기를 누구보다 반짝이는 눈을 하고 듣던 나와 함께
임신 결혼 출산 회사 육아 집안일
이리저리 치이고 정신 차려보니까 지금 여기.
어제 애들 재우고 불러서 한마디 했더니
오늘 아침 새사람이 된 남편이 나 보라고 잡은 컨셉이 너무 웃겨서 컵에 코 박고 한참을 웃었다.
남편..
한때는 나의 우주였는데
결혼하고 나니 이 남자 지나가는 발걸음만 봐도 화가 난다.
어제 새벽 우리 집 식탁 위에서는 새로 들여온 컵 하나가 깨지고(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물을 어마어마하게 마시고, 남편은 앉았다 일어났다 옷을 입었다가 벗었다가,
결국 마지막은 가운데서 맞잡은 뜨끈한 두 손
연애할 때 싸울 일도 없고 싸워본 적이 없어서
그게 우리 커플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지만
결혼하고 나니 최고의 단점이었다.
이제껏 부딪혀 본 적이 없으니 갈등을 풀어가는 방법을 모르겠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상처받고 더 큰 상처를 돌려주고
신혼 기간을 견뎌오며
이제는 피하지 말고 오늘 안에 우리의 이야기를 끝내기로 했다.
컵이 깨지고, 마음에 불이나도 우리 잠은 편하게 자자.
24시간 눈치게임. 톰과 제리처럼 살고 있는 우리는
연년생 애기 둘을 데리고 아슬아슬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알게 모르게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면서 잘~ 지내고 있나 보다.
퇴근 후에 "남편!!"하고 달려가서 안기면
뒤에서 허리춤에 손 올리고 화내는 아빠바보 첫째 딸이랑
자기도 여기 있다고 소리 지르는 둘째 딸이랑.
이제는 데이트대신 우리 목소리에 아이들이 깰까 봐 조용히 키득거리면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 네 식구 지금 모습을 제대로 간직하며 더 행복하게 살자 우리.
보고 싶은 거 보고 듣고 싶은 말 듣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평생 내편해!
여전히 멋있고 최고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