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는 필사, 786일
인생은 결국 선택의 문제고, 어느 쪽을 선택하건 선택하지 않은 쪽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는데, 그게 맞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인생이 선택의 문제라면 인생은 이를테면 자장면과 짬뽕처럼 중국집의 메뉴 같은 것이 되어버리는데, 살다보면 알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인생은 그냥 닥치는 건지도 모른다. 닥치고, 수습하는 일의 반복이다.
-<온전히 나답게>, 한수희
나는 P보다 J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래서 계획이 틀어지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몸도 마음도 '얼음'이 된다. 하루를 대강 흘려보내는 게 불안해서 늘 머릿속에 보이지 않는 일정표를 펼쳐두고 살아간다.
그런 내가 가장 많이 무너진 곳이 육아다. 육아는 매일 예상치 못하고 갑작스러운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이었다.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고, 막무가내로 울고,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지고, 어제까지 잘하던 걸 오늘은 거부하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 필사한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말처럼 인생은 자장면이냐 짬뽕이냐 고르는 일처럼 정돈된 선택의 연속이 아니니까. 육아는 특히 더 그렇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무엇을 선택할까’보다 ‘이미 벌어진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까’를 훨씬 더 자주 고민하는 것 같다.
어쩌면 육아를 잘한다는 건 완벽한 선택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 갑자기 닥친 상황을 수습하고 예상치 못한 아이의 말과 행동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아닐까?
예상치 못한 일들 앞에서 얼어붙지 않고, “아, 또 망했다” 대신 “그래,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뭘까”로 방향을 틀 수 있는 힘.
그런데 생각해 보니 육아에서 행복은 무언가를 완성하고 완벽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은 순간, 미완성의 순간에 자주 있었다.
놀이터에서의 환한 웃음,
식탁은 엉망진창이지만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
삐뚤빼뚤 색칠한 스케치북 한 장,
매번 싸우다가도 어느 순간 붙어 앉아 노는 남매의 뒷모습.
육아는 나에게 다른 기준 하나를 슬며시 건넨다. 오늘 계획을 얼마나 잘 지켰느냐보다 오늘 아이의 삶에 따뜻한 장면 하나라도 남겼느냐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기준.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 아니라 닥치고, 수습하는 일의 반복이라면 육아는 그 진실을 가장 먼저 가르쳐 주는 영역이 아닐까.
오늘도 또 하나의 미완성 장면을 남겼으나, 그게 실패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닥치고, 수습하며 조금 더 엄마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