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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우 Oct 18. 2023

바라볼 수 없는 시선

사색, 한 가지 색

 완벽이란 것이 없다는 가정은 경험적으로 실재한다. 완벽이라는 게 가능하다면 살아왔던 모든 문제는 부정되며, 그 자체로 완벽하지 못한다. 무작위식 논리를 지어내지만, 완벽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이 세상을 이겨내기엔 무지할 지라도 편안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 가정을 확실시했을 때 단정지을 수 있는 멋있는 현상들이 정립된다.


 결핍은 완벽이 어려운 이상 필연적이다. 결핍을 겪어보지 못한 삶은 후에 더 큰 결핍으로 돌아온다. 어설픈 충족은 결핍의 구멍을 더욱 더 키워간다. 물론 글로 적히는 모든 사건은 귀납적으로 집결된다. 절대란 건 참 어렵고, 누군가는 절대를 꿈꿨지만 결국엔 부정당하는 사실이 존재했다. 스스로 완전하다고 믿는 것이 행복할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향해 방향을 살펴보며 맞게 가고 있지만 결국엔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편이 다행인 삶일까. 머릿 속이 어지럽지만, 정답이 한 가지로 귀결되면 그건 또 이상하다. 그렇다고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대체 무엇을 향해서 인내의 길거리를 서성인걸까. 만사 허무하다지만 구체적으로 허무를 바라보게 될 수록 점점 몸에 힘이 빠져가기 마련이다.


 그래도 멈춘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정확히 이유를 들어서 말할 순 없다. 그저 현실에 안주하고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 채 실패를 무시하며 살아가는 건 그저 이유없이 절망스러운 상황이다. 이성과 본능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다. 두 가지는 성질이 무한대로 나뉘지만 시선을 달리보면 결국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은 융합된 채로 구성된다. 단 하나도 절대로 분리할 수 없고, 분리했다고 착각하는 경우는 다반사이며,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단순화를 통해서 개념을 확립해나가고 인류가 이해할 수 있게 되며 결국엔 하나의 를 위한 발걸음으로 이어간다.


 결국엔 헛돈다. 모든 이야기를 포괄하고 있지만 추상으로 남게 된다. 구체성은 일반을 대변할 수 없다. 감히 말하지만 현재 인간은 절대로 초월할 수 없다. 극복해낼 수 없다. 극복해낼 수 있는 상황은 성공을 상상할 수 있을 때 가능성으로 남게 된다. 고로 지금은 결코 극복해낼 수 없다. 개인의 차원에서 생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역시 이 또한 귀납적으로 정의됐다. 구체성을 모두 무시해나가다간 진리를 절대로 찾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허상을 쫓는 비렁뱅이일지도 모르지만, 멋으로 받아들이고 무수한 선원들은 항해를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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