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2학기 진로를 변경하기로 했다

첫 걸음

by 서도현

막상 글을 쓰려니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 생각들이 이리저리 엉켰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다지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왕 시작하게 된 거 최선을 다해서 꾸준히 기록을 남겨 볼 생각이다. 주저리주저리 쓰게 될 글이기에 지금 이 글을 읽어주는 분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나의 속사정을 낱낱이 적는다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털어놓고, 무모한 도전이라도 일단 해보라는 용기를 주고 싶어서 직접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이 결정을 내리기 위해 몇 십 번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정해지지도 확실하지도 않은 길을 걷게 되었다. 선택을 내린 순간, 나는 비로소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먼저 나의 원래 진로는 미술, 그중에서도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북커버 디자이너]였다. 내가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우게 된 것은 친오빠를 따라 동네의 작은 미술학원을 다니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게 내가 미술을 배우게 된 건 6살부터였다.


6살 매우 어린 나이에 시작하게 된 미술에 나는 금방 흥미를 느꼈고, 친오빠가 학원을 그만두었을 때에도 나는 어김없이 학원을 다녔다. 그림을 그리면서 집중을 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그림 그릴 때만큼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시간은 흘러 ‘전국 어린이 미술대회‘에서 큰 상을 받기도 하고, 시집에 그림이 실리는 경험도 겪으면서 차츰 나는 미술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었다. 그러다가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서 다니던 미술학원을 3학년 때 끊게 되었다. 덕분에 성적은 많이 올라 거의 100점에 가까운 평균을 받으며 초등학교 4학년 기말고사를 끝으로 시험이 사라졌다.


처음 시험이 사라졌을 때, 난 꽤나 당황스럽고 방황했다. 목표가 사라진 느낌이 많이 났다. 그래서 공부도 설렁설렁하며 해이해졌다. 그와 동시에 5학년, 12살이라는 나이에 사춘기가 찾아왔다.


이때 정부에서 기획한 진로 프로젝트에 도전해서 친구들과 함께 바빴던 기억이 난다. 나는 참고로 돈 관리를 맡았었다. 영수증도 챙기고, 돈 계산을 하느라 바쁘기도 했다. 그리고 개인 사정상 말할 순 없지만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자존감이 바닥에 박혔다.


힘든 마음 때문인지 불면증이라는 불청객이 날 찾아왔고, 이 때문인지 ‘대상포진‘에 걸렸다. 다행히도 림프절 때문에 간 병원에서 초기에 발견을 한 덕분에 2주 정도 약을 먹으니 사라졌다. 그렇게 아프고 난 뒤 마음 정리를 하면서 나는 때때로 사람들이 조금 ‘괴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6학년이 된 나는 다시 미술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1년 정도밖에 다니지 못했다. 다시 학업에 집중해야 됐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진로는 아나운서였다. 6학년이 되고, 2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폐렴에 걸렸다. 코로나라는 것이 우리 지역으로 오기 딱 2주 전에 말이다.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다. 이때의 내 심정은 정말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재난문자가 와도 읽지 않고 넘기는 나였고, 뉴스 또한 그리 챙겨보지 않았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폐렴이 다 나아서 퇴원을 하고 마스크를 벗은 채로 병원 밖을 나섰다. 그리고 난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강제로 되어버렸다. 나 빼고 거의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비쳤다.


나는 순간 황사 아님 미세먼지가 오늘 심한 날인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문득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떴던 것이 기억났다. 설마 하는 마음에 다급하게 부모님께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에 나는 벗어서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박아두었던 마스크를 꺼내 썼다. 그렇게 난 2주 동안 지겹게 썼던 마스크를 또다시 착용하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었지만, 코로나라는 전염병 때문에 6개월 동안의 방학 아닌 방학이 주어졌다. 그때 내 시야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나는 그렇게 쉬는 동안 학원조차 가지 않고 애니를 정주행 했다. 일본애니를 100개쯤 보자 자연스럽게 귀가 트이고 일본어를 조금씩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뒤로 학교를 다시 다니며 적응을 잘 못하다가 2학년 때에는 다시 적응을 했지만 공부하는 학원에서 트러블 때문에 학원을 끊게 되면서, 공부를 놓았다. 3학년 때 내 인생 친구들을 만났고, 다시 입시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미술을 다시 배우게 된 건 애니를 보다 보니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일러스트를 배우기 위해서 학원을 다녔지만, 기초소묘와 채색을 하면서 디자인이라는 것에 재미를 느끼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다니는 학원이 나에게 잘 맞지 않아서 난 돌연 학원을 끊고 잠수를 타다가 끊었다. 이쯤부터 나는 아마 ‘우울증’을 앓고 있던 것 같다.


나는 일반고가 아닌 특목고, 그중에서도 집 근처에 위치한 예술고에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 때문에 예술고에 대한 환상도 깨지고, 우울증이 점점 심해졌다. 결국 나는 고등학생들이 흔히 하는 설문지에 나의 상태를 표시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위클래스에서 상담을 받았고, 나의 속사정을 털어놓으며 정신과에서 약을 먹게 되었다. 약은 잘 맞지 않아서 맞는 약을 찾기까지도 오래 걸렸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이렇게 시간을 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날 강박적으로 몰아붙였다. 결국 나는 다른 미술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새로 다니게 된 미술학원은 나에게도 잘 맞았고, 나의 상태를 배려해 주시는 선생님과 원장선생님 덕분에 그럭저럭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점점 입시 미술을 하면서 흥미가 떨어지기도 하고 우울증의 흔한 증세인 무기력함에 지배당해 학원을 계속 빠졌다. 다녔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니 그림 실력도 도통 늘지를 않았다.


나만 뒤처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불안했고, 점점 흥미가 사라졌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은 흘러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되었다. 이제 결정해야 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을 그만두고, 다른 진로를 결정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그렇게 일주일 동안 머리를 싸매며 고민을 거듭하다가 나는 결정했다.


진로를 변경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