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갈 수밖에
막상 그런 결정을 내리니 마음 한편이 후련해졌다. 어쩌면 나는 미술에 미련이 남아 붙들려 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결정을 내렸고, 선택을 한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등 떠민 것도 아닌 스스로가 한 결정이었기에 더욱이.
지금껏 날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던 부모님께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결국 이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다시 이 지점으로 되돌아올 것 같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이젠 내 새로운 진로를 찾아야 할 때였다. 하지만 우울증을 겪는 나의 내신은 바닥을 맴돌았고, 생기부에는 오로지 미술 관련 글밖에 적혀 있지 않았다. 학교를 결석한 날과 조퇴한 날이 매우 많아서 출결도 엉망이었다.
이쯤 되니, 괜히 진로를 변경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그저 머릿속 한 구석에 자리한 생각일 뿐이었다.
이렇듯 진로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나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의 특기는 무엇인가? 등등…
나는 스스로 글을 잘 쓰는 편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취미는 웹소설 쓰기와 웹소설 감상 그리고 애니시청 및 JPOP을 듣는 것이다.
처음 웹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채티‘라는 그 당시 유행하던 앱이었다. 나는 불치병 환자가 기적처럼 병이 낫고 여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사랑을 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적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글은 조회수 400만텝을 찍으며 꽤 좋은 성적을 거뒀다. 화면 속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나는 한동안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착각을 얻기도 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저 자극적인 내용이 사람들을 끌어들였던 것 같다. 그렇기에 난 글을 잘 쓴다기보다는 매끄럽게 흘러가듯이 쓰는 걸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중학교 때 열린 글쓰기 대회나 독후감 쓰기 대회에서 꾸준히 상을 받은 경험이 있다. 아마 그 당시 장르소설에 한참 빠져있던 시기라서 필력이 조금 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조금 든다.
위 내용만 보면 원래 글을 잘 쓰는 사람이구나 싶겠지만, 놀랍게도 난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는 여름방학 숙제로 읽은 책 빼고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책을 읽은 적이 없을 정도로 그다지 책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글을 잘 쓰지도 못했다. 물론 지금도 별로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실 처음에는 웹소설 작가가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국 고교생 웹소설 공모전‘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고, 결국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웹소설 작가는 뜨기 전까지는 투잡 즉 본업과 부업을 해야 된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내겐 제일 불투명한 미래였다. 그 사실 앞에 나는 오래 서 있을 자신이 없었다.
웹소설 작가라는 꿈은 그렇게 마음속에 간직하게 되었다. 마음 한 편에서는 나중에 다시 시작해도 되니까 라는 생각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돌고 돌아 나는 일본어를 전공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쯤 와서 나의 일본어 실력을 밝히자면, 일상대화가 가능한 수준이지만, 한자는 전혀 모르는 전형적인 오타쿠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잘 생각해 보면 난 일본어와 꽤나 친숙한 사이였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일본 관련 영상이었고, 플레이스트는 JPOP으로 점령당해 있었으니 말이다.
그 생각이 든 직후 난 결정을 내렸다. 일본어학과로 진로를 변경하기로. 어쩌면 답은 이미 나와있었는데 나는 이리저리 돌아온 것만 같았다.
그 선택을 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행동은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때의 난 미술학원을 무작정 쉬는 중이었기에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을 없었다.
결심을 굳힌 뒤, 나는 곧장 거실에 계시는 아버지께 이야기를 꺼냈다.
“저 일본어학과로 진로변경 하려고요…”
내 말에 아버지는 선뜻 그렇게 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두 분 모두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말을 꺼내면서 느꼈던 긴장감이 탁 풀리면서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지고, 오히려 새 출발의 설렘이 기분 좋게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솔직히 혼자 내린 결정이었기에 막연하지만 당연하게도 불안했다. 또 맞지 않는 선택을 할까 봐. 하지만 충분히 고민했고, 여러 경험들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또다시 흘러 개학날이 성큼 다가왔다. 삼삼오오 친구들이 모여 교실은 떠들썩했지만, 내 한쪽 귀에는 잔잔한 JPOP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혼자였지만 이상하게 외롭지는 않았다.
이제 와서 밝히자면 내 글을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다. 그렇게 될 수도 그렇게 할 생각도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은 담은 이 글은 나의 인생을 담고 있기에 그렇다. 그러니 조금 무겁고 느리더라도 끝까지 읽어줬으면 싶다.
일본어학과라는 진로변경을 하게 되고, 학교 실기시간에는 JLPT N3를 따기 위해서 일본어공부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람은 목표가 있어야 실행을 하고 좀 더 노력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3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도전이라도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난 지원할 수 있는 대학 6개 모두 일본어와 관련된 학과에 지원했다. 이젠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그 선택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웃으며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니 전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