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일상의 이야기

by 서도현

대학 지원서를 털어내듯 모두 제출하고 나니, 기다림이란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매번 그랬듯, 기다림은 내 심장을 팽팽하게 조여와 날 초조하게 만들었고,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불안이 어깨를 짓누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나의 시선은 허공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무중력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나만의 작은 루틴을 만들었다. 창문 너머로 아침 햇살이 날 향해 찾아올 때쯤, 그제야 눈을 뜨고 정신과 선생님이 건넨 작은 알약 한 알로 아침을 깨우고, 집을 나섰다.


요즘 교실은 썰렁하다 못해 공허했다. 나오는 학생이 반 절도되지 않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남아있는 학생은 나 포함 3명뿐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각자의 실기시험 준비로 인해 각자의 학원으로 향했다.


반에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니 텅 빈 교실의 조용한 적막이 예상외로 편안했다. 물론 나는 맨 앞자리, 심지어 교탁 바로 오른쪽에 위치해 있었기에 수업시간마다 선생님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꽤 부담스럽게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오히려 혼자인 순간일수록 나 자신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치 오래된 거울 속 나를 들여다보듯이.


학교에서 자습시간이 주어지면 어김없이 일본어공부를 했다. 별로 남지 않은 시험 덕분인지 집중은 잘 되는 편이었다. 한자. 낯설고, 번거롭고, 금세 잊어버리는 글자들이지만, 하나씩 손끝에 새겨질 때마다 묘한 안온함이 날 찾아왔다. 예전에는 그림을 그리며 느꼈던 그 깊은 몰입감이, 이젠 일본어공부를 하면서 다시 피어나는 듯했다.


결과는 아직 멀었다. 합격이라는 달콤한 단어가 내게 올지, 불합격이라는 차가운 그림자가 내게 드리울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지금 멈춰 선 게 아니라 나아가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 막막한 기다림의 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멈춤이 아니라 도약을 위한 ‘숨 고르기‘였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오늘도, 난 작은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넸다. 비록 지금은 불확실한 길 한가운데에 서 있지만, 이 불안마저도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그러니 언젠가 내가 이 시점을 다시 되돌아보았을 땐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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