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신은, 없다

삶의 낭떠러지에서

by 서도현

어제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에서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난 비 오는 날을 꽤 애정하는 편이다. 비 오는 날마다 듣는 플리가 있기 때문에 습한 공기 속 찝찝함만 없다면 좋아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젯밤 통화했던 일본인친구와의 전화내용을 곱씹으며, 헷갈렸던 일본어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본다. 오늘의 계획도 세워야겠다.


전 글의 내용인 루틴은 평일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체크리스트에 하나하나씩 오늘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나간다.

난 분명 계획형이 아니지만, 백지 같은 하루를 나만의 색깔로 채워나가는 걸 좋아하는 게 아이러니다. 물론 세세하게 계획하진 않는다. 그때 그때 하고 싶은 일이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노래를 한 곡 추천하고자 한다. 지금 내가 듣고 있는 노래인 악동뮤지션의 <DINOSAUR>이다.

왜인지 오늘 같은 날 듣기 좋은 노래인 것 같다. 몽환적이면서도 파도가 내 마음을 쓸어내리듯이 시원한 노래이기 때문일까.

톡톡 튀는 사운드 위를 유영하듯 이수현 님의 청량한 고음이 퍼지면 왠지 모르게 잔잔했던 마음에 활기가 샘솟는다.


언제 시간이 이리 빨리 흘렀는지, 정주행 하려고 아껴뒀던 애니메이션들이 마지막화까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볼 애니메이션만 여섯 개였다.

그중에서 한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비와 너와>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제목 그리고 그림에서부터 느껴지는 힐링감에 내 손가락이 홀린 듯 휴대폰 화면으로 향했다. 내용은 버려진 개인 줄 알고 주인공이 너구리를 키우게 되는 내용이다.


우리 집은 개와 고양이를 키운다. 그래서 그런지 더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다.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휴대폰으로 애니메이션을 재생했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큰 소리를 낼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에서는 귀여움에 대한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고양이를 열심히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그르릉 소리를 내며 기분 좋은 듯이 눈을 감았다. 여러 면에서 고양이는 내게 큰 힘을 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일본어공부를 하는 건 조금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을 투자한다. 내가 업으로 삼기로 정한 이상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기 때문이다.

어제는 교회에 다녀왔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무교다.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미사 때문에 간 것이었다.


조금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로 들어가자면, 어쩌면 내게 신은, 생의 끝자락에 서 보았던 순간에 그 존재를 잃어버린 것만 같다.

물론 신을 믿거나 종교가 있는 사람을 비하하고자 하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종교를 가진 그들의 신념이 그들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나는 신을 믿지 않을, 믿을 수 없을 뿐이다. 귀신도 도깨비도 죽음 이후의 어떤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삶의 낭떠러지에서 내가 생을 향해 등 돌리려고 했을 때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해, 간절하게 신이라는 존재든 누구에게든 빌었다.

내가 망설임 없이 죽음을 향하길 바라니 말려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 당시 내게 신은 없었다.

그저 빌었던 것이다. 누구라도 도와주기를. 그러나 아무도 없었고, 내 주변엔 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부모님조차 내가 어떤 상태인지 인지하지 못하셨다. 나는 충분히 겉으로 드러났다고 생각했는데, 내 주변 이들 중 그 누구도 나의 상태를 알지 못했다.

전에 적었던 공부 학원에서 트러블이 있었던 날, 나는 학원에서 집으로 가라는 선생님의 빈말에 감정이 조절이 되지 않아서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작정 걷다 보니 도로 주변 길을 맴돌고 있었다. 순간의 충동과 복받치는 감정에 찻길을 향해 걸었다.


하지만 도중에 멈췄다. 남은 사람들이 날 망설이게 했다. 나는 내가 좋지 않았지만, 이런 형편없는 ‘나’라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필요로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니.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울음을 터트리며 길가에 주저앉았다. 이번에는 모순적이게도 다행이었다.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몇 분 동안 혼자서 숨죽여 울었다. 몇 년 동안 이어온 숨죽여 우는 버릇 때문에 소리 내어 우는 법조차 잊어버린 것일까.

내 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울음을 삼키는 목넘김만이 묵직한 공기 속에 가만히 들릴 뿐이었다.


울음을 참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가슴이 저릿하며 매우 아려온다. 난 가슴이 아려오는 통증을 느끼며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후 집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깊은 잠에 들었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 후 학원을 끊었다. 선생님께 들었던 말이 나에게 큰 트라우마인 동시에 스위치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학원 선생님의 말은 지금 생각해도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부러우면 저기서 떨어지지 그래?’라는 말 한마디. 그 한마디가 내겐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다.


가뜩이나 삶의 의미를 모르겠는데, 그런 말까지 들으니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만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이게 만약 교회에서 말하는 시련이고 죄를 지어서 받는 벌이라면, 나는 얼마나 큰 죄를 지었던 것일까.

하지만 내 성격상 그렇게 큰 죄를 지을 수가 없는데, 견딜 수 없는 시련만 내려주시는 건 왜일까. 내겐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내 주변의 어른들은 다 어른답지 않은지. 아니면 난 그런 사람을 만날 운명이 아닌 건지. 다시 생각해 봐도 난 신을 못 믿겠다.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을 만나게 된다면 차라리 죽이지 그랬냐고, 차라리 애매하지 않게 고통 속에 몰아넣어서 더 이상 참을 수도 없게 만들지 왜 그랬냐고 말할 것이다.


자살이 큰 죄라고들 말하는데, 그럼 그 지경까지 사람을 몰아넣은 것들은 무슨 벌을 받는 걸까. 난 지옥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내가 겪었던 고통들은 전부 모른 척 아님 모르고 그저 그렇게 편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최고의 복수는 잘 사는 것이라고들 한다. 아니 최고의 복수는 ‘복수‘ 그 자체다. 그건 복수를 할 만큼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만이 내뱉을 수 있는 기만이다.

똑같이 당해보길 바라는 마음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그렇게 실행하지 않을 뿐이다.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복수만이 살 길인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난 그런 사람들을 존중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그러니 난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은 나에게 아무것도. 진정으로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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