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5."함께"의 깨달음

(24) 라스베이거스에서 에펠탑을 보고 삼겹살을 먹는 하루

by 윤예진

햇살에 눈이 떠졌다.
창밖으로는 스피어가 보였다. 둥글고 거대한 그 구체는 아침부터도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우리는 서둘러 채비를 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스피어도 가까이서 봐야 했고, 호텔들도 둘러보고 싶었다. 이 도시는 세계 각국, 도시의 주요 특징을 내세운 호텔들이 즐비해있다. 예를 들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콘셉트로 한 호텔, 파리 에펠탑의 호텔, 뉴욕 자유의 여신상 콘셉트의 호텔 등. 나는 이 호텔들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호텔 구경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가 먼저 향한 곳은 파리 호텔이었다.

이름 그대로 파리를 콘셉트로 한 호텔이라, 에펠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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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카지노였다. 천장은 마치 파리의 푸른 하늘처럼 꾸며져 있었고, 실내인데도 실외처럼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오전 시간이었는데도 이미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낮부터 카지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니 조금 신기했다. 여행자처럼 잠깐 들른 사람이 아니라, 정말 그 자리에 오래 머무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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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에는 에펠탑의 철골 구조를 닮은 기둥들이 서 있었다. 처음엔 그냥 장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밖에 나가 실제 호텔 외관 쪽 에펠탑을 보고 나니 그 내부 구조와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디테일까지 꽤 공들여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지노는 가까이에서 보니 더 묘했다.
술 한 잔과 담배 한 대가 너무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풍경, 화면 속에서 쉴 새 없이 번쩍거리는 불빛, 그리고 누군가는 무표정하게 버튼을 누르고 있는 모습.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는 화려한 이미지로만 상상했는데, 막상 그 안의 카지노는 생각보다 어둡고 조금은 지쳐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유로워 보였다. 카지노 내 담배가 가능했기에 이 층은 공기 전체에 담배냄새가 배어 있었다. 오래 머물기는 힘들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온 게임이 하나 있었다. ‘BUFFALO’.
화면 속에서 버팔로가 달리고 있었고, 이름부터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기억에 남았다. 몇 번을 봐도 카지노 게임은 규칙을 잘 모르겠고, 무엇이 쉬운 건지도 모르겠어서 사람들 하는 모습을 괜히 한참 구경했다. 나중에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말은 했지만, 그때는 아직 구경하는 쪽이 더 재미있었다.


카지노를 빠져나온 뒤에는 근처 상점들을 둘러봤다.
한 가게에는 산리오 캐릭터 상품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헬로키티 텀블러를 살지, 마이멜로디 우유팩처럼 생긴 플라스틱 병을 살지 잠깐 진지하게 고민했다. 귀여운 물건 앞에서는 늘 판단력이 조금 흐려진다. 결국 가까스로 내려놓았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안 사길 잘한 것 같다. 하지만 산리오 캐릭터만 보면 여전히 눈이 반짝이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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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그날 내 눈을 붙잡은 건 마그넷이었다.
나는 원래 여행지에서 마그넷을 사는 편이 아니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한 번도 산 적이 없었다. 그런데 라스베이거스 마그넷은 이상하게 다 예뻐 보였다. 주사위, 포커 카드, “Welcome to Fabulous Las Vegas” 사인, 각 호텔의 상징들을 한데 모은 디자인까지, 도시의 성격이 너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가족사진이나 메모를 붙여둘 때 꽤 유용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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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밖으로 나가자 파리 호텔의 에펠탑이 보였다.
우리 남매는 실제 파리에서도 에펠탑을 본 적이 있었는데, 물론 크기는 훨씬 작지만 생각보다 꽤 그럴듯하게 재현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파리를 흉내 낸 공간이라는 걸 알면서도, 라스베이거스의 햇빛 아래에서 보는 그 가짜 에펠탑은 또 나름의 방식으로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잠깐 사진도 찍고, 강한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거리를 걸었다.


길거리에서는 관광객과 사진을 찍어주고 팁을 받는 사람들도 보였다.
화려한 깃털 장식을 달고, 거의 공작새처럼 꾸민 채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미키마우스나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사람들을 본 적은 있었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더 대담했고, 더 노골적이었고, 더 라스베이거스다웠다. 그 장면을 보며 이 도시는 정말 유흥의 도시이기도 하구나 싶었다. 어쩌면 가족 단위 여행자에게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다행히 우리 둘은 성인이었고, 그래서 그 풍경을 그저 이 도시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지나갈 수 있었다.


한참 돌아다니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구경하다가 괜찮은 곳이 있으면 들어가자고 말하던 차에, 유난히 화려한 불빛이 보이는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식당의 외벽은 유리로 되어 있고 유리 안쪽으로는 초 같은 거를 전시해 둬 불쇼처럼 보였다. 꽤나 멋을 낸 식당 입구였다. 동생과 나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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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램지 버거였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이거 먹자” 하고 입구로 향했다.

라스베이거스는 흔히 유흥의 도시로만 기억되지만, 동시에 미식의 도시이기도 하다. 미국 각지에서 유명해진 식당들이 이 도시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그만큼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 식당을 찾아온다.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호텔 구경만큼이나 ‘무엇을 먹느냐’도 여행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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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버거 하나와 트러플 감자튀김 하나를 주문했다.

이곳의 트러플 감자튀김이 맛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했다. 둘이서 메뉴 두 개만 시켰는데 가격은 거의 5만 원 가까이 나왔다. 그래서 점심은 가볍게 먹고, 저녁에 제대로 먹자고 했다. 이때는 몰랐다. 그날 저녁, 우리가 거의 푸드파이터처럼 먹게 될 줄은.


아무튼 다시 점심 이야기로 돌아오면, 고든 램지 버거는 확실히 맛있었다.
한입 베어 물면 육즙이 흘러나왔고, 전체적으로 반짝반짝 윤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그냥 “버거”라기보다, 버거라는 음식의 고급 버전 같았다. 미국에서 먹어서인지 더 맛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트러플 감자튀김도 좋았다. 짭조름한 감자에 소스를 찍어먹었다. 왜 사람들이 이 메뉴를 같이 추천하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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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우리는 꽤 부지런히 걸었다.

MnM’s 매장도 가고, 코카콜라 매장도 구경하고, 뉴욕뉴욕 호텔과 MGM 그랜드 호텔 내부도 둘러봤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은 여행자들에게 숙소라기보다 하나의 세계에 더 가까웠다. 호텔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서, 들어갔다 나오는 것만으로도 도시를 여러 번 갈아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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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체력이 확실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남매는 이상하게 둘 다 비슷한 패턴이 있다. 숙소를 나와 4시간에서 5시간쯤 지나면 귀가 본능이 생긴다. 그때부터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해야 한다. 카페에 들어가 한 시간 이상 쉬든지, 아니면 아예 숙소로 돌아가든지. 그날도 비슷했다. 어느새 오후 4시가 가까워져 있었고, 더 무리해서 돌아다니기보다는 저녁을 위해 체력을 남겨두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 잠깐 쉬었다가, 저녁에 다시 나오기로 했다.
그동안은 트레이더조에서 산 밀키트나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 햇반, 반찬 같은 걸로 요리를 해 끼니를 해결하는 날이 많았다. 물론 그것도 나름 괜찮았지만, 그날은 왠지 제대로 맛있는 밥을 먹고 싶었다. 사실은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둔 곳이 있었다. 숙소 근처에 현지인 맛집으로 유명한 코리안 바비큐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 이름은 'All You Korean BBQ'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한국인이 운영한다고 했고, 무제한 바베큐 집이었다.

도착해 보니 홀은 넓었고, 의외로 아시아인은 없고 서양인 손님들이 더 많아 보였다. 그 풍경이 조금 신기했다. 우리는 신이 나서 얼른 자리에 앉았다. 메뉴를 보니 양념갈비, 대패삼겹살, 차돌박이 등 익숙한 이름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이것저것 다양하게 주문했고 계란찜도 함께 시켰다. 양념갈비는 주문 횟수 제한이 있었지만 다른 메뉴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 가본 무제한 음식점들은 한국에서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는 무제한이라고 하면 음식 회전이 느려서 상태가 아쉽거나, 맛이 평범한 곳들도 있는데, 내가 여행하면서 경험한 미국의 무제한 식당들은 의외로 대체로 괜찮았다. 맛도 좋고, 품질도 나쁘지 않았다. 이곳 역시 그랬다.


무엇보다 그날 우리에겐 ‘지금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다는 기쁨이 컸다.
김치를 함께 굽고, 차돌박이와 목살을 올리고, 삼겹살을 뒤집고, 마지막으로 양념갈비까지 익혀 먹었다. 그 냄새와 소리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 중에는 익숙한 음식이 유난히 더 절실해질 때가 있다. 그날의 우리에겐 그게 바로 구워 먹는 고기였다. 동생과 나는 보스턴에서 먹었던 훠궈 이후로 가장 만족스러운 식사라고 말할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너무 신이 나서 불판 앞에서 행복해하는 모습까지 사진으로 남겼다.
가족 단톡방에 보내려고 찍은 사진에는, 피곤했던 하루가 고기로 거의 회복된 얼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격은 팁까지 포함해 둘이 13만 원 정도 나왔다.
미국 물가를 생각하면 이 금액은 아주 감사했다. 배부르고 맛있고, 마음까지 채워지는 저녁이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니,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 보일 정도였다.


식사 후에는 바로 옆 타겟에 들렀다.
한 바퀴 천천히 돌면서 필요한 물도 사고, 소화도 시킬 겸 걸었다. 마지막으로 타겟을 들리는 그 동선이 참 좋았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가볍게 장을 보고, 숙소까지 천천히 걸어 돌아가는 일. 화려한 호텔과 카지노를 누비던 낮과는 전혀 다른 리듬이었다.


돌아보면 그날의 라스베이거스는 유난히 대비가 선명한 하루였다.
낮에는 번쩍이는 호텔과 카지노, 과장된 장식과 자극적인 풍경 속을 걸었고, 저녁에는 익숙한 고기 냄새와 김치, 계란찜 앞에서 마음이 느슨해졌다. 여행자는 늘 새로운 것만 찾게 되지만, 하루의 끝에서 사람을 가장 안심시키는 건 뜻밖에도 익숙한 맛일 때가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그날도 그랬다.
우리는 한낮에는 이 도시를 구경했고, 밤에는 그 안에서 잠깐 우리 쪽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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