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첫 번째 도전과제는 에어컨
첫 번째 도전과제는 에어컨이었다
5개월 동안 살아남기 대작전을 펼칠 나의 숙소에서, 첫날밤부터 일이 생겼다.
잠이 들기 무섭게 목이 따끔따끔해졌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불속으로 머리를 밀어 넣고, 그 안의 공기로 숨을 쉬었다. 그런데도 편하지 않았다. 새벽 공기는 얇고 차가웠고, 나는 그 공기를 고스란히 들이마셨다.
시차 탓인지 새벽 6시쯤 눈이 떠졌다.
목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아, 이건 편도염이다.’ 딱 알았다. 나는 뉴욕에 오기 전부터 편도염을 달고 살던 사람이다. 피곤하면 제일 먼저 목이 붓고, 에어컨 바람만 맞아도 목이 먼저 반응한다. 여름에는 냉방병처럼, 겨울에는 면역이 떨어진 틈을 타 감염처럼. 한국에 있을 때도 항생제를 달고 살 때가 많았다.
사실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 일주일 전까지도 약을 하루 세 번 챙겨 먹었었다. 다행히 출국 직전에 가라앉았지만, 혹시 몰라 남은 약을 챙겨 왔다. 뉴욕 첫날 아침, 나는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먼저 욱여넣었다. 약이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그 ‘찌르는 듯한’ 통증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프면 사람은 쉽게 짜증이 난다. 나는 솔직히 억울하고 짜증 났다. ‘하필이면 왜 지금이야.’
원인은 금방 보였다.
내 방 창가에는 창문형 에어컨이 달려 있었다. 미국에서 흔히 보는 그 방식. 창문은 한국처럼 좌우로 미는 형태가 아니라 위아래로 올리고 내리는 형태였고, 창틀 아래쪽에 에어컨을 끼운 뒤 위쪽 창을 에어컨 상단까지 내려 고정해 놓는 구조였다. 처음엔 신기했다. 이게 진짜 ‘미국식’인가 싶기도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에어컨은 창문보다 가로 폭이 조금 작았다. 에어컨 양옆으로 아코디언 형태의 날개가 붙어있었는데 이는 창과 에어컨 사이를 막을 수 있도록 유동적으로 길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이 아코디언으로는 깔끔하게 바깥공기가 차단되지 않아 새벽에는 찬 공기가 계속 들어왔다. 8월인데도 새벽 공기는 차갑고, 나는 창가 옆 침대에서 그 공기를 온몸으로 마셨다. 공기와 습도에 예민한 내 편도는 그걸 그대로 받아냈다.
그날 이후 일주일 넘게 목이 나를 괴롭혔다.
나가고 싶은데 아프고, 아파서 집에 있고, 집에 있으니 더 답답했다. 밥을 잘 먹고 약을 잘 먹는 생활이 내 일상이 됐다. 속상했던 건, 한국에서 ‘혹시 몰라’ 챙겨 온 약을 금세 다 먹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결국 미국 약까지 찾아야 했다. 룸메이트 추천으로 CVS에 가서 감기약을 사다 쟁여 뒀다. 데이퀼과 나이트퀼은 그 뒤로도 내 미국 생활에 오래 함께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결심했다.
에어컨을 떼자.
8월 15일, 한여름이었다. 에어컨을 포기하면 더위를 견뎌야 한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덥게 살기로 했다. 목이 붓는 것보단 낫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나는 잠에 들기 전, 혼자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에어컨은 생각보다 완고했다.
꽉 끼운 채로 고정돼 있어서 양옆, 위아래로 흔들어도 꿈쩍하지 않았다. 더 세게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창틀을 자세히 보니 위쪽에 창과 에어컨을 단단히 고정하는 장치가 있었다. 나는 ‘화끈하게’ 그걸 빼고 창을 조금 더 올리려 했다.
그런데 창이 잘 올라가지 않았다.
오래된 건물 특유의 녹과 무게감 때문인지, 창틀이 뻑뻑했고 힘을 주면 허리가 먼저 반응했다. 나는 결국 라디에이터가 들어 있는, 툭 튀어나온 선반 위로 올라갔다. 두 발을 올려 쪼그려 앉은 채, 에어컨의 하부를 잡고 있는 힘을 끝까지 끌어올렸다.
진짜 무거웠다.
손목과 팔에 힘이 떨리고, 중심이 흔들렸다. 그래도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툭.
드디어 빠졌다.
나는 에어컨을 들고 복도 쪽 창고로 옮겼다. 그런데 창고도 이미 물건이 가득했다. 결국 창고를 정리하고, 에어컨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 과정에서 먼지가 어깨와 얼굴, 머리카락에 쌓였다. 에어컨 위의 먼지, 창틀의 먼지, 창고의 먼지까지. 그날 나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물 한 잔을 마시고 바로 샤워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로 씻어 내리며 생각했다.
뉴욕에서의 삶이 쉽지는 않겠구나.
그래도 내가 스스로를 칭찬한 건 하나였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실행했다는 것. 그날 밤부터 나는 적어도 ‘새벽의 찬 공기’는 걱정하지 않고 잠들 수 있었다. 낮에는 더워서 창문을 열고, 친구 방에서 에어컨을 잠깐 쐬며 열을 식히기도 했다. 냉장고에 넣어 둔 쿨링 팩을 얼굴에 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편도염은 서서히 물러갔고, 나는 그 이후로 웬만한 더위와는 타협하며 지내게 되었다.
불편함이 많은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
첫 번째 도전과제는 에어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