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뉴욕에서 살기

(1) 뉴욕, 첫날의 무게

by 윤예진

뉴욕으로 출발하는 날, 새벽 6시가 되기 전에 두 개의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집 앞에서 공항버스를 타기만 하면 인천공항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내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집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공항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여행의 시작은 늘 짐에서 시작되는데, 그날의 나는 이미 짐을 끌고도 숨이 덜 찼다. 야호.


28인치 캐리어 하나와 기내용 캐리어 하나. 5개월 반을 살아야 하는데 짐은 생각보다 적었다. 나는 두 손 무겁게 떠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필요한 물건은 미국에서 사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했고, ‘가볍게 출국해서 가볍게 도착하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때는 8월 14일.

여름옷 위주로 챙겼다. 2월 7일까지 머물 예정이니 겨울옷이 필요했지만, 두꺼운 옷은 거의 들고 가지 않았다. 줄무늬 긴 티셔츠 한 장과 롱패딩, 무스탕. 그 정도면 됐다고 믿었다. 나머지는 뉴욕에서, 어차피 살 물건이라면 그곳에서 사서 오래 입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계절은 겨울이라 그때의 선택이 얼마나 대담했는지 새삼 웃음이 나온다.


나는 공항버스 5000번을 탔다. 언니가 캐리어를 함께 끌어주고, 내가 차에 올라탈 때까지 옆에 서 있었다. 나는 애착 백팩을 메고 머리를 질끈 묶었다. 나이키 원피스에 청반바지, 언니가 사준 핑크색 미니백까지 메고. 그 차림이 가능했던 걸 보면, 그날은 분명 더웠다. 요즘의 한국은 너무 춥다. 계절이 바뀌면, 과거의 나도 자꾸 낯설어진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꼬르륵 거리는 배를 잠재우기 위해 푸드코트 존의 스쿨푸드로 향했다. 떡볶이와 스팸마요김밥. 한국을 떠나는 순간까지 떡볶이를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달콤하고 매콤한 소스에 김밥을 찍어 먹으며 ‘기내식 먹기 전 1차전’을 거하게 치렀다. 사실 이건 나를 위한 의식이었다. 출국 전에 마지막으로 한국의 맛을 입에 남기는 일.

IMG_7387.heic 별 거 없어 보이지만 별 거였던 쟁반 위 음식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커피를 사 들고 잠시 앉아 있었다. 여유는 좋았지만, 그 여유 속에서 마음은 계속 앞서 달렸다. 이제 짐을 부치고, 출국 심사를 하고, 탑승 게이트를 지나면 정말로 뉴욕이다.


비행기는 날개 쪽 창가 자리였다.

“잘 부탁해.”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안전벨트를 맸다. 나는 안쪽 자리가 더 편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몸이 계속 불편했다. 앉아 있는 동안 다리가 점점 붓는 게 느껴져서, 나는 몰래 종아리를 두드렸다. 17시간 비행 동안 내가 자리에서 제대로 일어난 건 단 한 번이었다.

IMG_7397.HEIC 17시간을 함께 보낸 나의 창가

옆자리엔 연세가 있는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계속 주무셨고, 나는 괜히 눈치를 보며 움직이지 못했다. ‘이제 진짜 화장실 가야 한다’는 타이밍에 조심스럽게 깨워 통로로 나가려 했지만, 이어폰을 끼고 주무시는 바람에 한 번에 실패했다. 몇 번을 시도한 끝에 뒤좌석의 누군가가 도와주어 그분을 깨울 수 있었다. 그제야 통로로 나갈 수 있었다.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서자 다리가 제 몸이 아닌 것 같았다. 근육을 쓰는 법을 잠깐 잊은 느낌. 다리가 흐물흐물했고, 관절 사이사이가 시큰했다. 나는 키가 작은 편이라 발이 바닥에 온전히 닿지 않아, 애착 백팩을 발받침처럼 바닥에 눕혀 두기도 했다. 그래도 다리는 붓고, 갑자기 일어선 탓에 중력이 발바닥으로 몰려드는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아, 지금 진짜 멀리 가는구나.’ 몸이 먼저 거리를 계산하고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자도 자도 끝이 없는 밤을 보냈다. 영화와 예능, 드라마, 유튜브를 번갈아 틀었다. 석양도 하늘 위에서 봐줬고, 오렌지 주스에 버터 바른 모닝빵, 블루베리 요거트, 데리야끼 치킨덮밥도 먹었다. 이코노미 기내식은 언제나 내 입맛에 딱 맞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꾸역꾸역 먹었다. 소리 울려대는 배를 잠재워야 했으니까.


마지막 기내식을 먹고 두 시간이 지났을 때쯤, 비행기는 뉴욕에 착륙하기 직전이었다. 도착 시간은 미국 기준 오전 11시 17분, 한국 기준 새벽 12시 12분. 다시 생각해도 어메이징 한 시차다. 나는 내릴 준비를 하며 가방을 정리하고, 괜히 MLB 모자까지 꺼내 썼다. 뉴욕이니까 NY가 쓰여 있으면 완벽했겠지만, 내 모자엔 LA가 적혀 있었다. 핑크색이라 더 어색했지만, 그 어색함이 오히려 내 첫날과 잘 어울렸다.


JFK공항 도착 직전

공항에서 짐을 찾고,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될 동생(그리고 앞으로 같은 에어비앤비에서 지낼 룸메이트)을 만났다.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한인 택시 기사님과 접선해, 브루클린 숙소로 이동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공동 현관문이 열렸다. 이미 먼저 도착해 있던 또 다른 룸메이트가 내려와 우리를 맞이했다. 모두 같은 학교 사람이고, 나와 동갑이었다. 우리는 뉴욕에 오기 전 학교에서 서로를 찾아 만나 함께 살 집을 구했고, 꾸준히 연락하며 ‘사전만남’도 가졌다. 다시 보니 반가움이 먼저 나왔다.


집은 방이 세 개였다. 우리도 세 명.

샤워실은 한 방에 딸려 있었지만, 다행히 화장실은 복도에 있어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우리는 거실에 모여 방을 어떻게 정할지 의논했고, 결국 가위바위보로 결정했다. 4개월 반 동안 방을 돌아가며 쓰기로 했기에, 그 순서를 이날 정하는 셈이었다.


가위바위보에서 내가 1등을 했다.

제일 큰 방, 제일 큰 침대가 있는 방이 내 차지가 됐다. 운이 좋았다. 긴 비행을 마치고 이런 작은 행운을 받는 건, 뭔가 ‘잘 왔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각자 방에서 짐을 풀고 잠깐 숨을 고른 뒤, 우리는 필요한 공용 물품을 사러 나갔다. 가위, 집게, 수저, 접시, 그릇, 냄비 같은 것들. 먼저 도착해 있던 친구가 “지금 필요한 것”을 리스트업해 둔 덕분에 훨씬 수월했다. 우리는 집 근처이자 학교 근처인 타겟으로 걸어갔다. 세 사람 모두 각자 필요한 물건도 조금씩 샀다.


웃긴 건 식기 세트를 고르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똑같은 세트를 사되 색만 다르게 골랐다. 나는 민트색, 다른 두 명은 베이지와 파랑. 각자 다른 식기를 사용하여 구분하기로 했다. 함께 먹을 재료도 샀다. 파스타와 파스타 소스, 버터, 다진 마늘… 그리고 그날 마실 탄산음료까지. 그런데 나는 다진 마늘을 샀다고 생각했는데, 실수로 다진 생강을 집어 왔다. 뉴욕 첫날부터 이렇게 어설픈 실수를 하나쯤은 해야 ‘시작했다’는 느낌이 드는 법이다.


빨간 타겟 쇼핑백이 양손에 가득 차자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갈 때는 동네 구경도 하며 시간이 빨리 간 것 같은데, 돌아오는 길은 유독 길었다. 나는 지도 담당인 친구에게 “우리 집까지 얼마나 남았어?”를 계속 물었다. 그 질문은 길을 묻는 말이면서, 동시에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지’ 하는 마음의 확인이었다.


IMG_7423.heic 뉴욕에서의 첫 식사

저녁은 크림 파스타와 고추참치 비빔밥이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재료로 김을 넣고, 햇반을 돌려 비비기만 했는데도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낯선 도시에서 먹는 첫 번째 ‘한국의 맛’은 생각보다 더 크게 위로가 됐다. 우리는 수다를 떨며 밥을 먹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같은 식탁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밤이 되자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나는 씻고 방에 들어가 가족들과 연락을 나눈 뒤,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제트레그는 만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피로는 이상하게도 나쁘지 않았다.


뉴욕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무겁지 않은 짐과 무거운 하루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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