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4. "함께"의 깨달음1

(2) 파리라는 두 음절

by 윤예진

다음 날, 언니와 동생은 시차 탓인지 새벽부터 눈을 떴다.

숨은 에펠탑 찾기

나도 뒤척이다가 8시쯤 일어났다. 호텔 방 창가에 서자, 에펠탑의 윗부분이 아주 조금 보였다. ‘조금’이라는 단서가 오히려 더 설레게 했다. 파리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들떠서, 나는 “예쁘다”, “너무 좋다” 같은 말을 자꾸만 흘렸다. 물론 우리 언니도다. 파란 하늘에 붉은 기가 살짝 섞인 구름이 걸려 있었고, 그 정도면 이미 파리는 내가 상상하던 파리였다.


우리는 서둘러 준비를 하고 에펠탑을 보러 나가기로 했다. 인생에서 처음 보는 에펠탑을, 언니와 동생과 함께 본다는 게 더 기대됐다. 셋 다 한껏 꾸몄다. ‘파리지앵 콘셉트’라고 부르기엔 조금 과했지만(왜냐하면 나는 핑크색 머리띠에 선글라스까지 꼈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에밀리 룩’이라고 우겼다. 에펠탑을 향해 걸을수록, 타워는 점점 커졌고 그 덕분에 가는 길의 모든 풍경이 예뻐 보였다. 시간은 10시 반쯤. 거리는 생각보다 한적했다.

안녕하세요. 파리 그자체입니다.

센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물빛은 맑다기보다 탁했고, 솔직히 말하면 흙탕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마저도 파리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센강을 끼고 이어지는 산책로, 나무 사이로 따뜻하게 비치는 햇빛,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잎사귀, 강변을 따라 달리는 러너들, 그 사이로 걸어가는 우리 삼 남매. 그 풍경 속에 ‘파리’가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파리라는 도시가 가진 힘일까, 아니면 ‘파리’라는 두 음절이 가진 힘일까.


센강을 따라 걷다 보니, 에펠탑이 기가 막히게 예쁘게 보이는 구도가 나타났다. 우리는 멈춰 서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우와”라는 말이 자꾸 새어 나왔다. 지금 이곳이 영화 속인지, 낭만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강 위를 지나가는 전차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기도 했다. 건물들은 서양식 건축물 특유의 선을 드러냈고,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파리지앵’처럼 걸었다. 나는 그 모든 게 신기해서 자꾸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파리 핫플 'CARETTE'

에펠탑도 식후경이라며, 우리는 유명한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카레트(CARETTE). 핫초코와 어니언 수프가 진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줄은 길었다. 그래도 ‘파리에 왔으니’라는 말은 웬만한 기다림을 정당화한다. 테라스 좌석도 있었지만 우리는 추워서 실내로 들어갔다.

주문은 거의 “먹고 싶은 것 전부”였다.

크로와상 두 개, 치즈와 양파가 듬뿍 들어간 어니언 수프, 몽블랑, 마카롱 세트, 에끌레어, 핫초코. 메뉴판을 훑고 나니 ‘우리가 지금 브런치를 먹는지 디저트를 먹는지’ 경계가 흐려졌다. 이런 호사를 누리게 해 준 언니에게 나는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핫초코는 진짜로 ‘다크 초콜릿을 녹여 마시는 맛’이었다. 진하고, 묵직하고, 달았다. 크로와상을 찍어 먹으니 그 자체로 극락이었다. 겹겹이 결을 가진 빵이 핫초코를 머금어 촉촉해졌고, 입안에서는 달콤함이 천천히 퍼졌다. 곁들여 나온 휘핑크림을 핫초코 위에 얹어 먹기도 하고, 크로와상을 들고 휘핑크림에 찍어 먹기도 했다. 황홀한 당 스파이크. 마카롱도 놀랍도록 맛있었다.


몽블랑은 동생의 픽이었는데, 원래 몽블랑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끝까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언니가 궁금하다며 시킨 에클레어도 결국 조금 남았다. 대신 어니언 수프는 의외로 내 취향이었다. 달큰한 양파, 치즈, 수프 안에 젖어 부드러워진 빵이 따뜻하게 어우러졌다. 그날의 내 투픽은 어니언 수프와 핫초코였다. 겨울의 추위를 진심으로 붙잡아 주는 음식들이었다.

배가 든든해지자, 우리는 에펠탑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이동했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마르스 광장 근처에서 사진을 한 번 찍고, 에펠탑 가까이로 내려가 타워를 올려다보았다. 영화 속 장면을 그리며 ‘바로 밑 잔디에 앉아 쉬는 장면’을 상상했지만, 현실은 북적임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눈과 사진에만 담고, 파리의 공기를 더 맡으며 천천히 걷기로 했다. 유리창을 거울삼아 거울 셀카도 찍고, 가게 창가에 놓인 꽃과 사람들의 옷차림도 구경했다. ‘여행’이란 결국, 내가 평소에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오래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쇼핑과 구경의 시간으로 들어갔다. 너무 많이 걸어서 우리는 먼저 카페로 피신했다. 커피도 마시고 체력도 충전할 겸, 아라비카 카페에 앉아 한동안 쉬었다. 투명한 창에 기대어 앉아 밖을 바라보는 시간은 항상 여행의 일부였다. “이제 진짜 나가자” 하고서야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뗐다.


우리가 먼저 향한 곳은 메르시(MERCI)였다.

색깔별 에코백이 유명하다고 해서 구경하러 갔는데, 매장 자체가 하나의 관광지처럼 붐볐다. 빨간색 작은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고, 그릇과 옷과 소품들이 공간 여기저기에 자연스럽게 걸려 있었다. 천장 쪽으로 빛이 들어오는 구조 덕분에 실내도 더 ‘파리답게’ 보였다.


언니는 회색 바탕에 주황색 ‘MERCI’ 글자가 포인트인 에코백을 골랐다. 후보로 베이지도 있었지만, 결국 회색이 더 언니에게 잘 어울렸다. 그 가방을 고르는 몇 분 동안 우리는 진지했다. 여행 중에 가장 사소한 선택이 때론 가장 오래 남는다는 걸, 우리는 이미 여러 번 겪었으니까.

메종 키츠네도 들렀다.

동생 옷을 같이 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종류가 많지 않아 몇 벌 입어 보고 나왔다. 언니는 탈의실에서 잠깐 ‘불편했던 옷 정리’를 하며 숨을 돌렸다. 이런 장면이 좋다. 큰 랜드마크보다 오히려 이런 사소한 장면이 여행을 ‘현실’로 만들어준다.


조금 걷다가 동생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우리는 방금 전까지 카페에 있다가, 또 밥을 먹으러 가는 게 웃기긴 했지만, 빵으로 채운 아침 겸 점심은 생각보다 빨리 꺼진다. 그래서 마라탕을 먹으러 갔다. 통통한 우동면 같은 면이 들어간 마라탕을 먹으며, ‘파리에서 마라탕을 먹는 삼 남매’라는 사실에 또 한 번 웃었다.

이후에는 시내 한복판에 공장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는 곳을 들렀다. 빨강, 초록, 파랑 같은 색들이 외관에 드러나 있었고, 철제 구조가 훤히 보였다. 평범하지 않은 형태와 큰 규모가 눈에 띄었다. 건축학과인 동생은 그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우리는 길을 걸으며 창문마다 걸린 화분들을 구경했다. 화분이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건물들도, 꽃 하나 덕분에 파리의 분위기를 품었다. 도시를 꾸미는 건 거대한 조형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작은 정성일지도 모르겠다.

스투시 매장 앞에도 줄이 있었다.

줄은 길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어 우리도 들어가 구경했다. 딱히 산 건 없었지만, 그마저도 여행답게 즐거웠다. 우리는 그렇게 파리를 한껏 걷고, 이제 호텔로 돌아가 캐리어를 들고 이동할 시간이 되었다.


문제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흘렀다는 거였다.

우리는 파리에서 1박 2일로 잠시 경유하며 구경하기로 했고, 곧 로마로 넘어가야 했다. 그런데 쇼핑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늦어졌다. 공항까지 늦을 것 같은 불안이 목을 잡았다. 셋은 말수가 줄었고, 발걸음은 빨라졌다.


그때부터 우리는 전력질주를 했다.

정말로 발이 안 보일 정도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평소엔 잘 의식하지 못하던 심장 박동을 생생하게 느꼈다. 언니는 길을 찾고, 나는 옆에서 같이 뛰고, 동생은 가벼운 짐을 들고 따라왔다. 헥헥거리며 겨우 호텔에 도착해 캐리어를 찾았다. 그리고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이동했다.


택시에 올라타는 순간, 세상이 다시 조용해졌다.

창밖 풍경이 흐르는데, 마음이 갑자기 편안해졌다. 우리는 택시 안에서 “파리가 너무 짧았다”라고 입을 모았다. 아쉬웠다.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동시에, 다음에 또 올 수 있는 이유를 남기고 간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여행이란 늘, 미련을 조금 남기고 떠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공항에 도착해 우리는 비행기를 탔다.

이탈리아, 로마. 역사의 중심지로.


짧았지만 선명했던 파리를, 우리는 그렇게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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