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5. "함께"의 깨달음2

(1) 뉴욕의 좁은 방과 한국의 거실

by 윤예진

카톡, 카톡.

언니와 동생이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오는 중이라고 연락을 보냈다. 나는 뒤늦게 메시지를 확인하고 허둥지둥 방을 대충 정리한 뒤, 현관 앞으로 마중 나가려고 3층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가 아마 10시에서 11시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막 일어나서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참이었다. 서둘러 몸을 일으켜 내려가 보니, 택시에서 내리고 있는 언니와 동생의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나도 이곳에 올 때 장거리 비행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에, 둘 역시 비슷한 상태구나 하는 게 표정만 봐도 느껴졌다.


유럽 여행 이후 세 달 만에 다시 보는 가족이었다. 그래서인지 더 애틋했다. 나는 언니의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이라 동생이 주로 힘을 썼지만, 그래도 셋이 함께 계단을 오르는 그 상황 자체가 이상하게 즐거웠다.


그전까지 나는 룸메이트 두 명과 거실과 화장실, 샤워실을 함께 쓰며 생활하고 있었다.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 나누며 지내긴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은근한 외로움과 쓸쓸함이 있었다. 그걸 감추려고 일부러 더 밝고 활기찬 척하고 다녔다. 초반에는 서로 꽤 친하게 지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 예민해지고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그런 생활 속에서 벗어나, 언니와 동생이 도착한 순간부터 내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표정이 스스로 느껴질 만큼 밝아졌다. 분명, 오래 가족과 떨어져 지낸 탓이 가장 컸을 것이다. 셋이 함께 영상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그러셨다.


“언니랑 동생 오니까 얼굴이 달라졌네. 웃음이 계속 있네.”


나는 전날 밤, 뉴욕에 도착할 언니와 동생을 위해 함께 먹을 김치찌개 재료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김치찌개에 넣을 고기와 양파, 파, 마늘, 김치 등을 한데 버무려 냉장고에 재워 두면서, 아마도 ‘반가운 사람들에게 맛있는 걸 해 주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다 같이 둘러앉아 이야기하며 먹는 한국 음식이 그리웠던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길고 지친 비행 끝에 도착할 언니와 동생을 위해 따뜻한 집밥 같은 무언가를 해 주고 싶었다는 점이다.


언니와 동생은 방에 올라와 구경을 하고 짐을 풀었다. 간단히 씻는 사이, 나는 부엌에서 밥 먹을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내 방은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이 딸린 집에서 세 개의 방 중 가장 작은 방이었고,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는 그 방을 나와 주방으로 가, 요리를 시작했다.


평소 뉴욕에서 자주 사 먹던 타겟의 뉴욕 스트립 스테이크를 꺼내 열심히 구웠다. 기름이 후두둑 떨어지기 직전, 주방 후드 바로 아래에서 조심스럽게, 그리고 정성을 다해 굽는 느낌으로. 미디엄 정도로 익은 고기를 내가 쓰는 플라스틱 접시에 담았다. 언니가 한국에서 들고 온 썰어 놓은 배추김치도 함께 플레이팅 했다. 물론 매콤한 쌈장도 빼놓지 않았다.


(다음 사진, 지저분한 식탁 위 모습에 주의하세요)

그와 동시에 라면을 한 냄비 끓이고, 햇반을 돌린 뒤 고추참치와 김가루를 넣어 비벼 간단한 비빔밥도 만들었다. 그렇게 차린 밥상을 언니와 동생에게 들고 들어가 셋이서 함께 먹었다. 룸메이트는 예전에 “가족을 공용 공간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서, 나는 부엌에서 요리를 끝낸 후 방으로 가져오는 쪽을 선택했다.


우리는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먹고, 잠시 쉬다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언니와 동생과 함께 근처 마트 타겟에 소화도 시킬 겸, 산책도 할 겸 구경을 나갔다. 다른 룸메이트 친구가 내 방에서 샤워를 해야 해서, 그동안 자리를 내어주는 의미도 있었다.

타겟을 둘러본 뒤에는 내가 다니던 학교를 구경시켜 주었다. 캠퍼스 곳곳을 보여 주고 싶었지만, 시차 탓에 둘 다 점점 지쳐갔다.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왔고, 남동생은 들어오자마자 카펫 위에 이불을 깔고 누워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언니도 금방 눈꺼풀이 감기더니, 곁에 누워 잠이 들었다.


밤 9시 반이 조금 넘어 셋 다 다시 깨어났다. 우리는 타겟에서 사 온 시나몬 시리얼(이 시리얼은 이후 동생의 최애 시리얼이 된다)과 요플레를 꺼내고, 귤을 까먹으며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또 자연스럽게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뉴욕의 좁은 방은 잠시 한국의 거실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이전글Part3. 뉴욕의 장면들, 오감을 매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