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 번 건넌 다리, 브루클린 브릿지
뉴욕에 있는 동안 나는 브루클린 브리지를 세 번 건넜다.
첫 번째는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였고, 두 번째는 혼자였다. 세 번째는 언니와 동생의 손님이자 가이드가 되어 건넜다. 세 번의 방문에서 동선은 거의 같았다. 덤보에서 사진을 찍고, 페블 비치를 걸으며 맨해튼 브리지와 브루클린 브리지를 번갈아 올려다보고, 타임아웃 마켓을 스쳐지나 잠깐의 온기를 얻은 뒤, 회전목마 옆을 돌아 다리의 입구 계단을 찾아 올라가는 과정.
같은 길을 세 번 걷는데도 매번 다른 곳에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 풍경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때의 내가 달라서였다.
첫 번째 브루클린 브리지는 ‘뉴욕’이라는 단어에 가장 가까웠다.
친구들과 웃으며 덤보의 사진 명소를 찾고, 페블 비치에 늘어선 벤치에 앉아 “이런 해변이 도시 한복판에 있을 수가 있나” 같은 감탄을 주고받았다. 여름의 해는 늦게 졌고, 하늘은 천천히 어두워졌다. 우리는 사진을 찍느라 자꾸 멈춰 섰다. 예쁜 각도를 찾는 시간이 뉴욕을 즐기는 방식이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두 번째는 혼자였다.
혼자 건너보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였고, 그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실행으로 옮겨졌다. 다만 시작부터 계획이 어긋났다. 덤보에서 내려야 하는데 정거장을 놓쳐 지하철로 브루클린 브리지를 한 번 먼저 건너버린 것이다. 덕분에 나는 ‘원래 걷고 싶던 방향’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브루클린을 향해 걸었다. 맨해튼을 바라보는 뷰가 더 좋다는 말은 알고 있었지만, 우연히 얻은 이 반대편 풍경도 꽤 특별했다. 계획이 틀어졌을 때만 보이는 도시의 얼굴이 있었다.
다리 위 중간쯤에서, 오래된 인쇄기 같은 장비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을 만났다. 빈티지한 방식으로 사진을 찍어 주는 사람이었다. 종이 한 장을 건네면, 뉴욕 타임스 1면처럼 꾸며진 레이아웃 위에 내 사진이 들어가고 짧은 문장이 얹힌 ‘신문’이 완성되는 방식이었다. 브루클린 브리지 관련 글에서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어 마음속으로만 “언젠가 만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실제로 마주치니 반가움이 먼저 올라왔다.
나는 그때 ‘추억이 될 만한 건 가능한 한 다 해보자’고 마음먹고 있던 때였다.
조심스럽게 나도 찍을 수 있냐고 물었다. 셔터가 눌리고, 종이가 나오고, 잉크 냄새가 섞인 기분 좋은 감각이 남았다. 그 프린트물은 고이 접어 지금도 한국에 가져와 보관하고 있다. 사진은 남아도, 그 순간의 공기까지 그대로 남는 경우는 드문데, 이상하게 그 종이 한 장은 당시의 공기를 함께 붙잡고 있는 것 같아서.
혼자였던 두 번째 방문에서 나는 브루클린 브리지 위에서 ‘사진 속의 나’보다 ‘걷고 있는 나’를 더 보고 싶었다. 첫 번째에는 다리 위에서 내가 예쁘게 나오는 사진을 찍느라 바빴지만, 두 번째에는 휴대폰을 잠시 넣어 두었다. 앞으로도 걷고, 뒤로도 걷고, 중간에 멈춰 서서바라보고, 몸을 한 바퀴 돌려 360도로 도시를 훑었다.그곳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사진 욕심을 이겼다.
그날은 낮이었다. 늦여름의 햇빛이 생각보다 뜨거워서, 추울까 봐 골랐던 약간 두툼한 긴 티셔츠는 완벽한 의상 실패가 됐다. 팔을 걷어 올리고 땀을 훔치며 걸었다. 이렇게 사소한 실패까지 포함해서, 혼자 걷는 날은 이상하게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덤보에 도착했을 때는 토요일이라 플리마켓이 열려 있었다. 골동품과 빈티지 액세서리, 오래된 옷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구경하다가, 탑처럼 층층이 쌓인 나무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멍하니 쉬고 있는데, 바로 사선에 앉아 있던 누군가의 휴대폰 화면이 우연히 보였다.
카카오톡이었다.
뉴욕에서 한국어를 발견하면 마음이 먼저 튀어 오른다. 한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알바 언니와 별것 아닌 이야기로도 길게 수다를 떨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처럼 반가움이 다시 솟구쳤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그분은 방송계 PD로 일하는 사람이었고, 휴가를 내어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배낭여행 중이라고 했다. 나는 당시 그 직무에 관심이 있어, 일과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뉴욕에 와 있었다. 나는 교환학생으로, 그분은 잠시 멈추기 위해. 서로에게 특별한 정보가 있어 만난 게 아니라, 우연히 같은 언어를 알아본 덕분에 잠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알던 뉴욕의 동선과 팁들을 전해 드렸고, 그분은 본인의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낯선 도시에서 누군가의 말투가 내 언어라는 사실만으로도 따뜻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날의 그분은 내 마음에 온기를 남긴 사람이었다. 인스타그램도 서로 팔로우했는데, 문득문득 잘 지내는지 궁금해진다. 부디 여행을 잘 마치고,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고 있기를—이름 모를 ‘언니’를 응원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
세 번째 브루클린 브리지는 계절부터 달랐다.
때는 12월 21일. 정말 추운 날이었다. 언니와 동생을 내가 에스코트하듯 이끌고, ‘공식 코스’대로 덤보의 사진 명소를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언니는 야무지게 셀카봉까지 챙겨 와 페블 비치에서 셋이서 셀카를 남겼다. 그런데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장갑 속에서 손가락을 잠깐 빼내면, 그 짧은 순간에도 손끝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전날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었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급하게 타임아웃 마켓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실내 공기가 피부에 닿는 순간, 몸이 먼저 안도했다. 뉴욕에 와서 먹어 봐야 할 ‘에사 베이글’을 아직 못 가본 게 떠올라, 마켓 안에서 베이글과 핫초코로 간단히 몸을 채웠다. 연어가 들어간 시그니처 베이글을 들고 페블 비치 쪽을 다시 걸어, 회전목마 근처 벤치에 앉아 먹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손은 조금 가벼워졌고,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이제 진짜로 다리를 건널 차례였다. 세 번째라서였는지, 다리 입구 계단을 찾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우리는 올라가자마자 사진을 많이 찍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첫 번째처럼 오래 멈춰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다리 위의 바람이 너무 매서웠다. 걸을수록 얼굴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언니와 동생은 뉴욕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에서 내가 이 추위를 뚫고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쪽이 콕 찔렸다. ‘날짜를 잘못 잡았나.’ ‘괜히 무리하게 끌고 왔나.’ 미안함이 바람처럼 스며들었다.
그럼에도 다리는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만큼 차가웠다.
우리는 빠르게 걸으며 풍경을 눈에 담았고, 그 순간을 끝내기 위해—정확히는 그 추위에서 도망치기 위해—실내로 들어갈 만한 장소를 찾았다. 그렇게 내가 가족을 안내한 곳이 오큘러스였다. 일종의 도피였다.
돌아보면, 세 번의 브루클린 브리지는 같은 길이 아니었다.
첫 번째는 ‘뉴욕에 왔다’는 증명 같았고, 두 번째는 ‘뉴욕을 느끼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으며, 세 번째는 ‘가족을 지키는 마음’과 ‘미안함’이 함께 건너간 겨울이었다. 같은 다리를 세 번 건넜는데, 나는 매번 다른 사람으로 그 위를 걸었다.
브루클린 브리지는 도시를 잇는 다리였지만, 내게는 계절과 마음을 잇는 다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