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시리즈 따라쓰기 <아무튼 도라에몽>
직장 동료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모니터 앞에 피규어를 하나씩 사놓기 시작했다. 역시 고단한 직장 생활을 견디려면 눈이라도 즐거워야 한다며. 처음에는 한두 개더니 그다음 주는 세 개, 그 다음엔 네 개. 월요일이 오면 머릿수가 배로 늘어나 있었다. 개중에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깔끔한 책상은 나뿐이었다. 이래 봬도 난 추구미가 미니멀 라이프라구. 무심한 듯 모니터를 보고 있는 내 옆에서, 어제 산 피규어를 소개하며 깔깔거리던 동료들은 슬쩍 데스크를 훑어보더니 묻는다.
“채은 님은 좋아하는 캐릭터 없으세요?”
왜 없을까.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해 왔던 최애 캐릭터가 나에게도 있다.
지금은 휴대전화를 통한 간편 인증만으로도 손쉽게 처리하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쥬니어네이버’나 ‘야후’ 같은 인터넷 사이트 계정의 비밀번호를 찾으려면 엄청난 관문을 거쳤다. 회원 가입할 때 질문을 골라 답을 적고, 다음에 계정 비밀번호를 찾을 때는 그 답변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적어 내야 했던 것이다. 대개 이 질문들은 사적이며,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 이름은?’처럼 까먹기 딱 좋거나 ‘나의 취미는?’처럼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에게는 한두 달 사이로 답이 변하기 쉬운 것들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 동시에 나만이 알 수 있는 - 질문을 골라냈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그리고 당차게 답을 적었다.
‘도라에몽’
나는 집 나간 패스워드를 찾을 때마다 ‘도라에몽’을 적어내며 몇 번이고 되찾아냈다. 이것은 결계를 만드는 마법진처럼, 꼭꼭 숨겨둔 도라에몽에 대한 나의 애정을 패스워드와 함께 봉인시키는 장치였다.
도라에몽을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이따금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딱 잡아 이야기하기 참 어렵다. 그와 나의 인연은 너무나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처음 도라에몽 만화를 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집을 이사하면서 학교와 1시간 거리로 멀리 떨어졌다. 붉은 벽돌로 된 새집은 문을 열면 좁은 시멘트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구조였고, 작은 방 두 개가 딸려 있었다. 그 방조차 하나는 부모님의 침실, 하나는 TV 방으로 아버지가 퇴근 후 점령하고 있었다. 모두가 잠에 들면 그제야 언니와 나의 침실이 되었다. 사춘기 소녀 둘이 좁은 그 방에서 불만도 없이 자라났다.
그러나 불만이 없다고 고충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사 후로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오는 긴 시간부터 나는 외로워졌다. 학교 끝나면 놀이터에서 만나던 친구들과도 놀지 못하고, 서너 시면 집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다. 중학생인 언니는 근처 중학교로 입학해 새로운 동네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연고 없는 나는 무인도에 고립된 사람처럼 동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런 나에게 친구가 되어준 게 만화책이었다. 새집에서 조금 걸어가면, 골목 모서리에 노란 간판의 만화책방 ‘수다라글방’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만화책을 대여해 읽는 풍경이 동네마다 흔했고, 1권에 250원을 주고 3일간 빌려볼 수 있었던 귀한 시절이었다. 빽빽하게 진열된 책장 사이 책 냄새를 맡아가며 숨겨진 보물 같은 만화책을 발견할 때의 쾌감은 자꾸만 나를 만화책방으로 이끌었다.
수다라글방 사장님은 반납 기한을 넉넉하게 주셨다. 아마 당시 어머니의 넉넉한 재력을 바탕으로 대여했기 때문일 테다. 우리는 적게는 10권, 많게는 30권의 만화책을 한꺼번에 빌려다 봤다. 겨울이면 세 모녀가 보일러 뜨끈하게 켠 바닥에 누워서 귤 까먹으며 한 권씩 돌려보고, 다음 사람은 앞사람이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리며 재촉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오시면 밥상에 앉아 저녁을 지어 먹고, 느지막한 저녁에는 만화책을 반납하러 엄마랑 언니랑 나갔다가 아이스크림 하나 사 오기도 했다.
로맨스를 꿈꾸던 나는 하이틴 스토리의 만화책도 무척 좋아했지만, 그보다 더 꾸준한 선택을 받은 만화책은 단연 <도라에몽>이었다.
동그랗고 넓적한 머리통 덕에 종종 너구리로 오해받는 귀 없는 고양이 로봇 도라에몽.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노진구를 만나기 위해 22세기 미래에서 21세기로 왔다. 어느 날 진구의 책상 서랍 속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오더니, ‘이대로 살다가는 미래에 퉁퉁이의 여동생 퉁순이와 결혼한다’며 ‘하는 일마다 족족 망한다’고 으름장 놓는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다. 염치 불고 진구네 집에 눌러앉는다. 도라에몽은 그때부터 곤란에 빠진 진구를 돕기 위해 주머니에서 미래에서 온 도구들을 꺼내어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우정과 성장기가 바로 도라에몽의 중심 스토리다.
낯선 동네에서 매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멀쭉멀쭉 앞집의 감나무가 얼마나 익었는지나 지켜보던 초등학생에게, 방안에서 만화책을 읽거나 낮잠만 자는 진구가 자기 자신처럼 보였던 걸까. 노란색 만화책 표지를 넘기며, 진구와 도라에몽의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때로는 진구가 되어 괴롭히는 퉁퉁이와 비실이에게 속 시원하게 복수해 주고, 때로는 도라에몽의 도구가 내게 주어진다면 어떻게 사용할지 허무맹랑한 상상도 하면서.
무슨 일만 생기면 도라에몽을 찾는 진구가 한없이 답답하기도 했으나 사실 그가 부러웠다. 나도 ‘대나무 헬리콥터’를 이 동네를 떠나 원하는 곳으로 날아볼 수 있다면. ‘어디로든 문’으로 학교를 오가는 외로운 시간을 없앨 수만 있다면. ‘타임 벨트’를 통해 이사 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서랍에서도 누군가가 나타나, 나를 이 외롭고 심심한 동네에서 구출해 주진 않을까 수백밤을 기다렸던 것도 같다.
다행히 중학교에 입학하고 새로운 동네 친구를 사귀었다. 새 친구들과 등하교를 함께하는 날 수가 많아질수록, 만화책방을 찾는 일은 줄어들었다. 그 사이 수다라글방의 만화책 대여비는 400원으로 올랐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던 나는 ‘컵떡볶이가 500원인데, 한 권 대여비 400원은 비싸다’ 생각하며 발길을 더더욱 끊게 되었다.
그러다 열여섯에 또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동시에 대학 입시 준비를 위해 아침 여섯 시에 집에서 나가 밤 열두 시에 들어오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운 K-고딩에게는 한가로이 도라에몽 만화책 보며 깔깔거릴 겨를이 없었다.
수능이 끝나자, 또 한 번 이사를 하게 된다. 부모님 사이의 지겨웠던 갈등이 끝나고, 아버지가 집을 나간 탓이다. 스무 살, 첫 대학교 OT 날이었다. 그렇게 나와 어머니와 언니는 평생 살던 서울에서 연고 없는 경기도로 짐을 싸서 떠났다.
대학에 가니 누구는 해외로 누구는 군대로 저마다 길을 찾아 떠나는데, 그중에 나는 생존을 위해 악착같은 알바생이 되었다. 빚어놓은 듯 친구들과 비슷한 일과였던 청소년 시기를 떠나보내며, 자연스레 삶의 모습이 다른 친구들도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은 더 쉽게 멀어지던 시대였다.
결혼하고 남편 직장을 따라 흐르고 흘러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는 다시 외로워질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나한테 평생 한곳에 정착 못 하는 역마가 낀 것일까. 어차피 어디서도 나를 그 동네 사람으로 받아주지 않는걸. 끊임없이 새로운 거처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진득한 인연 하나 없이 그때그때 옆에 있는 인연들로 마음을 달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이십 대를 지나며, 도라에몽과 함께 하던 모험 같은 날들은 현실의 그림자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다 도라에몽을 다시 만난 건 이십 대 후반이 되고서였다. 지인들과 예의 차리기 위한 모임이 달력에 한 달 전부터 수두룩하게 쌓이는 모양은 꼭 어엿한 어른 같았다. 휘몰아치듯 업무를 하다가 6시가 되면 엊그제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모습으로 퇴근하고, 주말이면 온갖 경조사를 다니며 사회적인 관계 유지에 시간을 쏟았다.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해야 하는 ‘도리’에 관하여, 혹은 어떤 일 인분의 ‘책임’에 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고 증명해야 했다.
뭐 하나라도 놓치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고 살던 어느 날, 집안을 청소하며 틀어둔 유튜브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구야! 어디서 또 말썽부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알고리즘이 이끈 곳에는 오래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라에몽이 있었다. 십 년 동안 촌스럽던 그림선은 더 깔끔하고 정교하게 바뀌었지만, 그동안 몇 번의 성우를 거치며 조금씩 목소리도 달라졌지만, 나의 파랗고 동그란 고양이 로봇은 여전히 다정하게 진구 옆을 지키고 있었다.
자연스레 OTT를 통해 모든 에피소드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도라에몽 앞에선 여전히 나도 진구처럼 철딱서니 없는 초등학생이 된 듯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마음이 생겨 지도맵을 켰다. 십수 년 전 도라에몽을 처음 만났던 그곳에 가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무슨 전남친도 아니고’ 스스로 우스워하면서. 그러나 휴대폰 화면 너머로 그 동네 풍경을 보는 순간, 나는 강한 향수에 휩싸였다. 수백 밤 숨을 맞댔던 장소가 주는 그 찡함은 마치 내 새끼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 보낸 어미의 감정과도 같지 않을까. 가장 가까웠던 이가 다른 이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듯, 이 동네에서 느낀 외로움도 이제는 내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것이었다.
거리뷰의 화살표를 두 번씩 클릭하면서 만화책방으로 향했다. 붉은 벽돌의 주택들을 지나 쭉 걸어가다가, 코너를 돌면 책방이 나오는 익숙한 전경. 하지만 변화도 존재했다. 2013년까지는 문이 활짝 열려있던 수다라글방이 그 다다음 해부터는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그 자리는 조만간 재가센터가 되었다가 그 다음엔 폐백집으로, 그리고 끝끝내 미용실로 바뀌었다.
이제는 무료로 웹툰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도라에몽 만화책 열 권을 쌓아두고 일주일 내내 읽을 때의 풍족하게 수확한 농부 마음 같은 것, 만화책방 사장님께서 쓱 책장을 밀어 신간 위치를 찾아줄 때의 경외심 같은 것은 느낄 수 없게 됐다. 엄마와 같이 손잡고 만화책을 빌리러 가던 길, 방 안에 누워 엄마랑 언니랑 셋이서 깔깔대며 만화책을 읽었던 일도 이제는 두터운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지극한 초딩이던 나도 그사이 직장인 유부녀가 되었고, 무엇보다 그때처럼 심심할 틈이 없었다. 낯선 동네에 사는 초등학생 아이에게 깊게 자리 잡은 외로움 같은 건, 탈탈 털어내야 기억나는 옛날이야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내 아무도 모를 외로운 시절을 옆에서 지켜주었던 그들의 세계는 거기 그대로였다. 똑같이 진구는 시험에서 0점을 맞고, 똑같이 도라에몽은 진구를 위해 도구를 쓴다. 진구를 구하기 위해 갖은 역경을 이겨낸다. 그를 끝까지 응원하고 도와준다. 도라에몽 앞에서 나는 다시금 영원한 우정을 소망하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이제는 ‘2단계 인증’ 같은 철저한 절차가 생겨났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뭐고 보물 1호는 뭐냐는 허술한 질문들은 사라졌다. 당장 휴대폰으로 인증을 하고 간편하게 처리하면 끝이다.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보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비효율이 납득되지 않는 세상에서는 글자보다 중요한 게 많으니까.
그러나 비밀번호 확인 질문에 마음을 꾹 눌러 담아 제출했던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도라에몽’ 네 글자는 이 세상 어디선가 꿋꿋이 휴면 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