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기상

by 채은

효율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시간 단위로 매일 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7:00-8:00 기상 및 식사&씻기

8:00-9:00 독서

9:00-12:00 자소서… (중략)’

근래 평균 기상 시간이 아홉시 반인 걸 알면서 매번 지켜지지 않을 일정을 정했다. 그다지 이른 시간은 아니지만(…) 아침잠 많은 나에게 쉬는 동안 늦잠이라도 푹 자게 해주자는 마음과, 반면 바쁘다바빠 현대 사회에서 미라클 모닝으로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한다는 양가적인 마음이 들었다.

조바심 빼면 시체인 나는 호기롭게 후자를 선택했지만, 매일 아침 조져지는 건 나였다. ‘늦었다!’ 여전히 아홉시 반. 일어나는 순간부터 기분이 나빴다. 늦은 기상 시간만으로 일어나자마자 망한 하루로 느껴졌다. 게다가 계획했던 일정을 두어 개는 빼먹을 수밖에 없었다. 몇날 며칠 아홉시 반 기상이 루틴이 되자, 나 자신에게 면박을 주게 됐다. 그러다 한 가지 물음이 생겼다.

‘아홉시 반에 일어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유 없는 목표를 세워놓곤, 지키지 않으면 나 자신을 게으른 이 취급하며 자존감을 꺾고 있다는 것을. 또한 기상 시간도 나와의 약속인데, 너무 쉽게 생각했나 싶었다. 약속 한 번 파투내도 신뢰가 깨지는데, 매일같이 나와의 약속을 세워놓고 어기니 자신에게 신뢰가 남아있을리가. 가만보면 버리는 시간 없이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하루를 가장 빨리, 가장 많이 채워야 성공하는 삶이라는 성과주의적인 이분법 안에 나를 가두어 놓았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다.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적절한 부지런함과 근면함, 성과가 남는 하루를 지향한다. 그러나 당분간 외부의 어떤 압박 없이 내면의 목소리에 더 집중해봐야겠다.

부지런한 기상 시간보다 게으른 기상의 순간을 더 가지고 싶어하는 몸과 마음을 존중해보자. 신에게 감사해야 할 광명의 아침을 기쁨으로 맞고 싶으니.


그래서 오늘 밤에는 정해놨던 기상시간을 슬쩍 고친다. ‘9:30 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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