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솔직하게 할 말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TV나 어떤 매체에서 솔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돌직구라고 말하거나 그들의 발언에 사이다라는 비유를 들어 속 시원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 가족에게도 솔직하기가 어려울 수 있는 그런 문화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에 솔직하게 얘기했다가 버릇없다고 혼났거나 예의 없다고 꾸지람을 들은 일이 어렸을 때 다들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렸을 때는 속으로 '아니, 정직하게 이야기하라면서 왜 얘기하면 말대꾸한다고 그럴까?'라면서 다시는 어른들께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적도 있다.
아마도 이런 경험들이 내재화되어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집안에 있는 비슷한 그 어른들이 사회에서 마주하는 바로 그 어른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생활을 할 때 더욱 솔직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나의 밥그릇이 달린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뭔가 나보다 더 큰 권력을 지닌 누군가에게 솔직하기란 그래서 어렵다. 보통으로 갈등이나 의견충돌이 생길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에게는 배려라는 이름을 붙여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한없이 지루한 이야기라도 재미있게 듣는 척할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이 슬프고 힘들어도 행복한 척, 기쁜 척하는 능력이 이미 탑급으로 내재화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은 사회화라고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사회생활 할 때 너무 드러내놓는 것도 안 좋은 일이지만 그 감정을 어느 정도는 존중받거나 이해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정말 사회성이 높은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솔직함은 무례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모든 일에 있어서 솔직하기가 어렵다. 되도록이면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하지만 상대방의 기분이나 그때의 상황에 맞춰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훨씬 많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나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일들인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솔직하지 못했으면 정말 진심으로 이야기한다고 할 때 "솔직하게 얘기해서..." 란 어구를 많이 사용할까? 물론, 솔직하게 얘기한다는 저 말 역시 다 믿을 순 없다. 습관적으로 저 말을 내뱉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솔직하게 말해보라는 압박 아닌 압박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럴 때가 어쩌면 가장 솔직하고 싶지 않은 순간일 수 있다. 이미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하기가 더욱 껄끄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솔직하게 말해보라는 말을 들을 때 드는 생각은 그렇게 이야기 한 상대방이 궁금한 것은 솔직한 내 의견이 아닌 본인의 의견에 동조해 달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진다.
나도 당신에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혹은 나의 솔직함이 당신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다면, 당신이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면, 솔직하게 말한 나에게 당신이 언젠가 할 수 있는 소심한 복수가 두렵지 않다면 나는 얼마든지 솔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솔직함을 내뱉은 나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생길까 그게 솔직히 두렵기 때문에 적당히 둘러대며 솔직함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때때로 아주 약간 솔직해 보는 것도 한 번 해볼 만한 일일 수 있다. 아주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말이다. 지난 경험에 비춰 보았을 때 진실에 기반한 그런 솔직함을 가끔씩 표현해 주게 되면 오히려 사람들은 나를 조금은 다르게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조금 더 잘 표현하게 되면 사람들은 나를 더 이상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된다. 겸손하고 사려 깊은 행동도 물론 좋지만 계속해서 그런 태도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그런 나를 지킬 수 있는 힘도 필요하다. 그 힘은 진실에 기반한 솔직함에서 나온다.
결국 소심한 사람이든, 내성인 사람이든,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든 내 일상과 내 생활환경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나 밖에 없다. 솔직한 것은 그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인생을 조금씩이라도 나아질 수 있도록 하려는 의지와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올 해의 목표가 될 수 도 있겠다.
비굴함은 존중받지 못한다.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무작정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상황에 맞추는 것은 때로는 비굴한 일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상황과 사람에 대해 솔직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럴 수도 없다.
그러니 조금만, 아주 조금만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은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이제까지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다른 솔직한 말들을 하고 있었던 모습에 미안해.... 솔직하지 못해서... 이제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