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과 결과... 그리고 보이지 않는 진심
요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 성장의 길을 걸어가게 되고 무수한 실패를 통해서 이루게 된다. 하루에도 수없이 주워 담고 싶은 말들과 후회하는 행동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흑역사라고 생각되는 순간이 자의에서 비롯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박제되어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춘기 시절 예민했던 그때는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 감정이 이리저리 얌체공처럼 튀어 다녔다. 어느 날은 좋아했던 친구가 날 더 좋아하지 않고 별로라 생각했던 친구와 더 친해 보여 속상해하거나 질투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 것 같은 상처를 받은 듯이 굴기도 했다. 똑같은 사춘기를 보내는 주제에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구를 싸잡아서 나쁘게 생각하고 다투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현실이 그때와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든 것이 미숙했던 사춘기 청소년들의 감정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성인과 같은 기준, 혹은 선한 사람의 프레임을 씌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라본다. 그러다 무언가 일치되지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에 대해 실망하고 상처받아 그 사람을 비난하고 공격하기도 한다. 어쩌면 질투로 인해 눈이 멀어 누군가를 깎아내리고 싶은 욕망에 빠져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버리는 충동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
비난받고 공격받는 그 사람이 자신이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란 점이 그 사람의 문제인 걸까? 당연히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맞다. 정말 그 잘못이 패륜에 가까운, 돌이킬 수 없는 그런 잘못이 아니라면 그것 역시 그 사람이 대가를 치르고 난 다음은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단 한 번의 실수에도 금방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요즘, 아무래도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일수록 떨어질 가능성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정말 작은 실수도 금방 발견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된다. 낮은 곳에서 한 발을 떼어 약간 높은 곳으로 오르려 하는 그 순간 어디선가 실수와 잘못이 튀어나와 아래로 밀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은 실패자로 낙인찍혀 버릴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과거의 잘못들 역시 박제되어 계속해서 그를 쫓아다니게 된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이다. 현재의 나는 수많은 실수를 통해서 만들어졌다. 정말 남들이 몰랐으면 하는 그런 잘못들과 실수들, 언행들이 수없이 많다. 약간의 성장 후 그때 왜 그렇게 행동하고 말했는지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절대 실수하지 않거나 잘못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을 할 수 없다.
사람은 변한다. 과거와 똑같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이상할 것이다. 변하는 마음에 실망하는 사람도 많지만 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변화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잘못과 실수, 실패를 자양분으로 한 성장일 수도 있는 거었다.
실수와 잘못에 대한 나 자신의 마음가짐은 나 밖에 모른다. 잘못과 실수라는 원인과 그로 인해 벌어진 결과들로만 평가받는 현실에서 내 마음속 진심은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가 없다. 나도 그렇듯이 다른 사람들도 그러하다. 내가 보는 원인과 결과만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늘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내가 확신하는 사건의 전말에 어쩌면 후회하는 마음이,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이 한 자락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서 뇌우치게 될 수도 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진심을 확신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어려운 세상이다.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건들을 보며 대부분은 한탄을 하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다른 이의 진심을 짓밟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