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평화를 위한 명절 증후군
길고 긴 명절이 좋았던 던 때는 결혼하기 전이었을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 뒤에 명절만 돌아오면 가슴께가 답답한 것이 명절 내내 체기가 가시질 않는다. 나는 명절이 왜 이토록 답답한 것일까? 다들 모여서 이토록 좋아하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이 드는지 억울한 생각마저 든다. 때로는 나는 참여할 수 없는 기쁨에 소외감이 들기도 하고 죄책감마저 들 때가 있다. 몸이 피로한 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그건 잠시만의 고생일 뿐이다. 더 힘든 것은 마음에서 오는 무게일 것이다.
그런데 나만 명절에 이런 느낌을 받는 건 아닌가 보다. 그러니 명절 증후군이란 말이 있겠지.
명절 증후군 : 명절 기간에 스트레스를 받아 생기는 육체적, 정신적 증상을 일컫는다. 부담감과 스트레스, 육체적 피로 등이 주요 우너인으로 두통과 소화불량 등 다양한 신체적 증상을 동반한다. 한국의 명절 문화가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문화적 증후군의 하나로도 볼 수 있다.... 증상은 다양한다. 피로감, 두통, 소화불량, 위장장애, 심장 두근거림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정신적으로는 우울감과 무기력증 조절하기 어려운 분노나 불안감 등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며느리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인한 내 위치가 명절 증후군을 만드는 것일 것이다. 여러 친인척과 가까운 가족이 모여 그들은 즐거운데 왜 나는 그 속에 낄 수가 없는가? 아마도 나를 탓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요즘 며느리의 특수한 위치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입장에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듣기 싫은 소리를 예의를 갖춰 들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을 수 있겠다.
옛 어르신들은 아마도 변화된 시대적 감수성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직장에서는 선 넘는 발언으로 여겨지기 마련인 말씀들을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럼없이 대놓고 말씀하신다. 듣는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곤란하거나 부담스러운 질문과 조언들을 하염없이 듣고 있노라면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 입장을 이해해 주는 사람하나 없는, 그들만이 즐거운 잔치에 하나도 즐겁지 않은 나는 그들의 추억에 동참하지 못하는, 여전히 초대받지 못한 이방인이다.
결혼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말대꾸를 허락받지 못한 나는 그저 내가 선택해서 안 하는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이번의 명절 또한 가정의 평화가 지켜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혹시라도 나의 미친 발작버튼이 작동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이번에도 참아볼 때까지는 참아볼 작정이다.
유독 긴 명절이 언젠가는 기뻤을 그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