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마지막

변화와 안정 둘 다 잡을 수 있을까

필수는 안정을 위해서 변화를 선택했다. 언젠가 변화가 막을 내리고 안정이 자리잡으리라고. 어느덧 일본과 인도를 보고 갔던 해외 일정이 막을 내리고 있었다. 필수는 생각했다. 자신의 능력보다도 더 높은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은. 7년 만이었다. 이제 필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된다. 한국으로 가면 어떤 일이 생길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 30대 중반을 넘어서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러나 여전히 필수가 생각했던 안정된 삶은 가까이 있지 않았다.


필수는 조심스럽게 곰씹어보고 다시금 되돌아 보았다.
지구가 돌듯이 태양도 달도 돌고 있었다. 세상에는 돌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돌고 있는 유성 안에서 필수도 돌고 있었다. 아침 일어나 욕실에 있는 거울에 비춰보니 19살 필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중년의 나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떻게 보면 직장 생활은 무리 없이 순탄하게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직장 생활에는 변화 속에 고요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역동적이었다.

포천에서 만냐 ㅈᆢ각상 pictured by R.G.Y

언젠가 들었던 노래 조영남의 "돌고도는 인생"이 떠올랐다. "돌--고 돌--고 도는 , 돌--고 도는"을 반복하는 조영남씨. 늘 그리했듯이 겉옷을 벗어제껴 왼쪽 어깨어 걸치고 다른 한손으로 청중에게 박수를 유도하듯이 위아래로 들었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는 그의 모습 속에. 참세한 모든 이들이 "돌--고 돌--고 도는 , 돌--고 도는"을 떼창으로 뱌복해서 부르는 장면은 기관이었다.


그래. 굳이 원처럼 반복해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나선형으로 돌고돌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필수가 걸어왔던 삶의 족적과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을 굳이 '익어간다'는 표현을 통해 '늙어간다'는 용어를 피하려고 히지 않아도 나이를 먹는 것은 현실이니까.


사십대 초뱐이 되어 한국에 들어오니 필수는 부장으로 발령이 났다. 그는 서둘러 집을 알아 보았다. 이젠 오피스텔이 아니라 아파트였다. 그동안 개미처럼 일해서 저축하고 틈틈히 주식을 해서 모은 돈으로 아파트 34평짜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다시 집을 찾았다. 오남매를 기르신 부모는 여전히 그곳에서 생활을 하고 계셨다. 칠순을 바라보는 어머니, 칠순을 넘기신 아버지는 필수를 바라보았다. 필수가 온다고 하니 영수와 영숙이가 제수씨, 매제와 함께 조카를 데리고 찾아왔다. "아.. 이게 가족인가?" 사실 이십여년간 함께 산 적도 없었는데 여전히 친근해보이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더더욱 신기한 것은 동생들이 교육을 잘 시켰는지, 처음 만나게 된 조카들이 "큰아빠!!!!"하고 달려와 필수의 품에 안긴다. 비록 서툴었지만 작은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필수는 결코 익숙하지 않은 느낌을 갖는다.

푸꾸억에서 Pictured by R.G.Y

오랜만에 필수는 여러 형제들과 함께 식사를 같이 했다. 지난 22년 동안 헤어져서 살 수 밖에 없었던 , 집을 떠나 살아야 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차근차근히 풀어 나갔다. 동시에 동생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해서도 귀 기울여 들었다.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필수는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또 한 가지 깨닫는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안정이 존재하는구나.

(In the midst of these changes, stability exists.)"

그야말로 오랜만에 아버지로부터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었다. "필수야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독립하겠다고 말을 했을 때 아버지로서 나는 할 말 없었다. 그냥 데리고 살자고 할 수도 없었고. 또 독립하겠다는 날을 밀어줄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무능했다. 참 세월이 빠르다. 벌써 20 여 년이 지났으니 우리 가족들이 많이 늘었구나. 아버지는 한 일이 없었는데 너희들이 잘 자라주었구나. 그래도 세상 떠나기 전에 너를 볼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렇게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여한이 없다." 칠순이 다 되신 어머니는 아버지 곁에 앉아서 시종일관 아무 말씀도 없이 필수의 눈만 바라보고 있다.


식사가 끝난 후, 며느리와 딸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어머니는 슬그머니 필수 곁에 다가와서 손을 잡는다. "우리 큰 애. 얼마나 고생했냐? 어미가 해주는 밥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그래도 부모가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번듯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고맙다. 고마워. 동생들도 너를 매우 좋아한단다."


필수는 동생들을 안고 보듬어 주는데. 넷째 다섯째가 품에 안기며 조용히 귓속말로 전한다.

"큰 형님이 가끔 보내주신 용돈과 영어/일본어책과 애니메이션 자료들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제 전공도 그 방향으로 정하려고 합니다." "큰 오빠. 저도 힘이 났어요. 오빠가 우리에게 큰 별이에요 저도 오빠가 보내주신 자료를 통해 영감을 얻고 오빠가 도와주셔서 학원도 잘 다니고 있어요 고마워요."


부쩍자란 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필수는 마치 자기가 부모가 된 듯 어깨가 올라간다. "그래 이렇게 변화가 이루어지고 멈추지 않는 것이 진짜 안정인 듯해. (Yeah, I think it's really stable that changes are made like this and don't stop.)"


필수는 다시한번 되새김질을 한다.

자신이 너무 어렸다는 사실을. 부모님 밑에서 성장해서 결혼해서 가정을 만든 영수부부, 영숙 부부를 보면서 자신은 무엇을 했는가 하며 반성도 한다. 그렇다고 부질없이 무의미하게 살아온 것도 아니지만, 필수는 너무 단순하고 편협하게 또한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지난 이십년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불안과 안정. 변화와 행복 두마리를 잡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아!(From now on, I think it will be possible to catch two things: anxiety and stability, change and happi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