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온 지 한 달 남짓한 열다섯의 어린 새색시 순이는 성적인 미숙함과 고된 노동으로 고통받는다. 새벽부터 쇠죽을 끓이고, 물 긷고, 논에 점심을 내고 하여 밤에 지쳐 늘어지면 밤새 남편이 어린 몸을 탐내는 것이다. 순이는 그 ‘원수의 방’이 무서워 헛간에 숨기도 하지만, 결국 그 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늘 무서운 밤을 지내야만 하게 된다. 어느 날 점심 고리를 이고 논둑길을 건너뛰다가 쓰러져 의식을 잃는다. 깨어보니, 또 그 ‘원수의 방’이었으므로 정신없이 뛰어나오다가 그릇을 깨었다고 시어머니한테 두들겨 맞는다. 그날 저녁 부엌에서 일하다가 문득 ‘원수의 방’만 없애면 그 무서운 밤을 겪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성냥을 품속에 감춘다. 그날 밤, 난데없는 불이 일어나 집은 활활 타오르는데, 뒷집 담 모서리에서 순이는 근래에 없이 환한 얼굴로 기뻐 날뛴다.
이 작품은 가난한 집 민며느리로 들어간 어린 소녀가 힘에 겨운 노동과 남편의 과도한 성행위, 시어머니의 몰이해와 학대 등으로 희생되는 불행한 운명을 묘사하였고, 집에다 불을 지르는 행위로써 인습에 반항하는 인물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작가의 사실주의 문학이 성숙기에 접어들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소녀의 불행한 운명을 중심으로 농촌사회의 어두운 현실이나 전통적인 관습 및 남성의 횡포에 대한 과감한 저항을 사실적 묘사와 치밀한 구성을 통하여 표현해내고 있다. 특히, 쇠죽솥에 불을 지피고 불붙는 모양을 흥미 있게 구경하는 순이의 모습을 통하여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암시를 보인 점, 그리고 샘물에서 송사리와 희롱하는 천진난만한 모양과 송사리를 태질하는 잔학한 모습의 대비를 통하여 순이의 불행을 예시해주는 대목들은 그의 뛰어난 단편소설적 기교를 말하여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불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위 인용은 우리 학교 다닐 적 필독도서에 항상 자리했던 "운수 좋은 날"의 저자 현진건의 또 다른 작품 "불"이라는 단편소설이다. 1925년 1월 ≪개벽≫ 제55호에 발표되었다. 농촌을 배경으로 한 하층민의 삶을 여실히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인력거를 끄는 김 첨지가 유독 오늘따라 운수 좋다고 느껴진 바쁜 날, 일을 마치고 아내를 위해 그토록 먹고 싶다던 설렁탕을 사 왔지만 병든 아내는 이미 죽어 있다.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라는 김 첨지의 말은 몇십 년 전에 읽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본 적 있는 것처럼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 당시 어린 나이에도 마음이 찡하고 울림을 느꼈던 나는 현진건 단편집을 구해다가 모두 읽었었는데 그중에 "불"이라는 이 소설도 내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왜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하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고, 책이 만들어지고 세월이 벌써 100여 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요새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회상을 보이고 있어 그 옛날의 책 이야기를 꺼내 보게 되었다.
순이는
결국
불을 질렀다.
순이가 불을 지른 행동을 두고 잘했다고 칭찬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순이가 갑자기 불을 지른 이유와 그 배경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범죄심리를 연구하는 프로파일러들도 초반에는 뭇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직업 중 하나였다. 당장 눈에 보이는 범죄자를 잡으러 다니기도 분초를 다툴 만큼 바쁜데 향후 있을, 아니 언제 있을지도 모를 미래의 범죄에 대하여 대비를 하자는 것이 프로파일러의 존재 이유였기 때문이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다룬 김남길이 열연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드라마에서도 이 같은 프로파일러의 존재 이유를 다루었었다.
순이의 나이 고작 15세
지금 우리 시대로 생각해 본다면 중학교 2학년 여학생. 이제 3년 후면 우리 큰 딸이 그 나이가 된다. 5학년인 딸아이는 아직도 아기 같은 구석이 몸에 배어 있는데 3년이 지난다 한들 뭐 크게 다르겠나. 아직도 엄마~ 하며 해맑게 웃으며 노트북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일하는 내 뒤에서 꼬옥 허그를 하기도 하고, 자신이 느끼기에 재밌는 이야기인 것 같은 농담을 엄마가 웃어야 할 텐데 하는 간절함 담아 내 앞에서 조잘조잘 말하는 걸 보면 아직도 너무나 아기 같은 아이인데...
그 옛날 순이는 엄마에게 응석은커녕 학대에 가까운 시어머니의 구박을 온몸으로 받고 으레 해내야 하는 농사일은 물론 집안 일도 몽땅 제 차지이고 더구나 밤에도 푹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루 이틀만 견디면 끝나는 것이 아닌 끝이 보이지 않는 힘듦의 연속. 아마도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을까. 며칠 전 새벽 4시에 하는 축구를 응원하겠다고 밤을 꼴딱 지새웠다가 그다음 날 비몽사몽 제어 안 되는 내 몸뚱이를 보며 나도 잠의 부족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절감한다.
최근에 뉴스들을 보면 100년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우리의 삶은 갈수록 편리해졌다고는 하나 사각지대에 놓여 관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사건 사고들을 보면 너무나도 안타깝다. 숱하게 매를 맞으며 수십 년을 견디어 지내다가 결국 못 참겠어서 남편을 죽인 아내에게 무거운 형벌이 내려진 사건, 한 개 틀리면 한 대씩 맞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집안이라 시험 성적이 형편없이 나온 아들이 매 맞는 게 두려워 엄마를 죽였다는 사건, 평소 자신을 무시한 동네 사람들을 따끔히 혼내 주기 위해 한 사내가 일부러 불을 질렀다는 사건... 등 등... 잠시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내가 모르고 지나친 사건들은 또 얼마나 더 많을까.
궁서설묘(窮鼠齧猫)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기도 한다
매우 평범한 사람이 수세에 몰리고 그 상황에 벗어나기 위한 마음이 간절해지면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무서움도 없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악인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TV만 틀면 온갖 사건, 사고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흉악한 범죄들이 끊이지 않는다. 저런 범죄자들 때문에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순이가 불을 지른 이유 따위 관심도 없고 외면하는 우리.
불을 지른 결과만을 두고 나쁜 거라 단정 짓는 우리.
지금도 우리는 또 다른 순이를 양산해 내고 있는 중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