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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Sep 06. 2023

골뱅이무침에서 골뱅이만 쏙쏙 빼먹는 그녀

엄마도 태어날 땐 엄마가 아니었어

나는 골뱅이 킬러다.

ㅇㄷ골뱅이 400g 캔 하나가 6천 원대였을 때부터 참 열심히 먹었지만 아직도 질리지 않아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다. 쫄깃쫄깃한 식감도 좋고 골뱅이 특유의 향이 스윽 감도는 참 좋다. 그렇다고 너무 크면 씹기 부담스러우니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각종 야채 슬라이스와 함께 고춧가루와 갖은양념 팍팍 넣어 무치면 이만한 요리가 없다. 소면까지 준비하여 무쳐주면 한 끼 식사로도 훌륭한 메뉴이기에 맥콜에서 맥주로 갈아타게 되던 20대 때부터 현재까지 골뱅이 이 녀석을 참 줄기차게 먹어댔다.


사람들 입맛은 다 비슷한 법.

꿀맛 같은 골뱅이를 다들 좋아하니 골뱅이 값은 나날이 치솟았다. 캔 하나 가격이 1만 원 육박하는 골뱅이를 보고 혹자는 집에 골뱅이 있으면 부자입니 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했는데, 그 말에 다들 이의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사뭇 진지하기까지 했다.


사람의 유전자는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지.

아이들 유치원 다닐 적, 애들은 매우니 못 먹겠지 하고 신랑하고만 먹으려고 골뱅이 무침에 넣을 채소를 다듬는 중이었다. 언제 왔는지 딸아이가 주방을 맴돌더니 썰어 둔 골뱅이 하나를 집어 먹고는 그 맛에 홀딱 반해 캔 절반 이상이나 되는 양을 다 먹어치웠고, 나는 골뱅이 없는 골뱅이 무침을 먹고는 마음이 헛헛했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딸은 나보다 더 골뱅이 킬러가 되었다.


출처. 블로그 들꽃향기 건강밥상



지난 주말 남편이 맛나게 만들어준 골뱅이 무침을 보고 나와 딸아이는 환호했다.

뱃속의 저장공간은 유한하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딸아이는 골고루 먹는 걸 멀리 하는 타입이다. 맛있는 음식만 공략한다는 뜻이다. 골뱅이 무침이 상에 놓이면 야채 보기를 돌같이 하고는 골뱅이만 쏘옥 쏙쏙 빼먹었다. 어찌나 그 모습이 보기가 꼴사나웠는지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만일 가족이 아닌 타인과 같이 하는 식사 자리에서 자기만 맛있는 걸 먹겠다고 쏙쏙 빼먹으면 얼마나 주변 사람들에게 욕을 들어먹을 것인가. 너 인성에 문제 있냐? 하고 사람들이 묻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또 인상이 찌푸려진 결정적인 이유는

골뱅이를 저 혼자만 쏙쏙 빼먹으니 내가 먹을 골뱅이가 줄어들어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었다. 400g짜리 캔 두 개를 때려 넣었는데도 골뱅이는 어디론가 금세 자취를 감추어 찾을 수 없었다. 어디긴 어디야. 딸내미 뱃속으로 다이빙했겠지.ㅜ 아무리 400g 중 절반은 국물이고 절반만 골뱅이라 해도 그렇지, 무려 두 캔인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게 다 골뱅이 킬러 딸내미 때문이었다. 양파도, 양배추도, 깻잎도, 오이도, 골뱅이랑 같이 곁들여 먹으면 처음부터 바닥이 보일 때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초반에 골뱅이만 몽땅 다 아작을 내 버리니 나중에 남는 건 야채뿐... 허전한 내 마음에 바람 한 줄기만 휑하니 불었다. 너 자꾸 골뱅이만 골라 먹으면 걸뱅이 된다??


골뱅이만 공략하는 딸의 얌체 같은 행동에 점점 인상이 구겨지는 나. 골라먹지 마라 하고 한 마디 하려는데 남편이 숨어 있는 골뱅이를 낚아채듯 잡더니 딸에게 보여준다. 그리곤 가락까지 얹어 "여깄~네~" 한다. 아빠가 집어 준 골뱅이를 자신의 젓가락으로 냉큼 잡는 딸. 그러더니 또 바로 "여기도 있~네~" 집어 주니 "히~" 웃으면서 기쁘게 집어 입에 홀딱 밀어 넣는 딸. 오물오물 씹으며 행복해하는 딸의 표정. 네 입에 맛있으면 다른 사람들 입에도 맛있는 거야 하고 한소리 하려 했는데 아빠와 딸의 쿵짝이 잘 맞는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났다. 아~ 저 표정을 보고 아빠미소라고 하는 거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딸아이 같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땐 중동으로 일하러 가는 아빠들이 많았다. 우리 아빠도 그중 하나였다.

초등 4학년 때였나.

날계란을 자동차 본넷 위에 깨뜨려 두기만 해도 계란프라이가 뚝딱 만들어진다는 더운 나라로 피땀 흘려 일하러 가실 아빠와 최후의 만찬 같던 식사 중이었다. 허리띠도 졸라가며 살아야 했던 없는 살림이었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엄마는 아빠를 위해 꽤 여러 종류의 반찬을 장만하려 노력하셨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요리는 갈비찜이었다. 평소에는 늘 고기를 물에 빠뜨리는 요리만 하셨기 때문이었다. 고기가 입수를 하면 양이 많아 보이고 또 여러 사람에게 고기가 돌아갈 수 있었기에 평소에 늘 조림이나 구이 대신 국을 만드셨다. 국에 빠진 고기는 니맛도 내 맛도 없는 슴슴한 맛에 지나지 않았다. 생일날에나 겨우 고기다운 고기를 구경했으니 갈비찜만 내 눈에 들어올 수밖에.



마침 외할머니도 먼 길 가는 사위에게 인사할 겸 함께 하는 자리였다. 하룻밤만 자면 아빠가 먼 나라로 일을 하러 가실 테고, 1년 동안이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긴 했지만 코 앞에 놓인 갈비찜의 달콤짭짜롬냄새에 나는 그만 정신을 뺏기고 말았다. 다른 가족이 먹든 말든, 엄마가 눈치를 주든 말든, 걸신들린 것처럼 먹었다. 금세 고기 접시는 바닥을 보였고 마지막 남은 고기 한 점마저 난 냉큼 젓가락으로 꽂았다. 앞 뒤 재지 않고 손녀가 욕심부리며 먹는 걸 보다 못한 할머니가 결국 밥상머리에서 내게 역정을 내셨다.


이 놈의 가시나,
내일 멀리 가는 즈그 아빠 드실 괴기를 니가 다 먹으면 되냐, 안 되냐?
마한(망할) 년의 가시나


어린 나이라 철이 없어 주변 사람생각도 않고 내 입 즐겁자고 고기를 허겁지겁 먹은 나는 밥상머리에서 된통 혼이 났고, 마지막 집었던 고기 한 점을 얌전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난, 내 입에 몽땅 넣어버려야겠다는 욕심보다, 내가 너무 내 입만 챙겼구나 하는 수치심을 느꼈다.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남동생도, 오랜만에 뵌 할머니도 전혀 배려하지 않은 내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배려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지만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자꾸만 떠올라 당시엔 얼마나 서러웠던지, 왜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어서 이깟 고기 때문에 고귀한 내 존재가 혼이 나야 하는가 하고 슬펐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된 지금의 나.

때 그 설움을 직접 겪어봐서 알기에 딸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 법도 한데, 어른인데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참 쉽지 않다. 태생이 이기적이라 그런가. 이렇게 부족한 내가 엄마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게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혹시 나는 모성애가 남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건 아닐까 자문하기도 한다. 항상 사랑으로 보듬어 주어야 할 아이인데 이젠 나보다 덩치가 더 커진 딸아이를 보면 친구 같기도 하고 오히려 내가 이 아이한테 보호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생기니 말이다. 혼자 걷는 것보다 딸과 함께 길을 걸을 땐 얼마나 든든하던지.


별 것도 아닌 골뱅이 때문에 아이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못한 나는 아무래도 엄마로서 자격이 한참 미달인 것 같다. 하지만 자식들만 위하며 사느라 "나의 삶"이 없는 인생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내 자식을 내가 귀히 여겨야 남들도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내가 나를 위해주어야 자식도 나를 위해 준다. 우리 아이들도 시간이 흘러 배우자를 만나 아이를 낳게 된다면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식에게 모든 걸 다 바치는 바보 같은 희생만이 모성애의 전부는 아니라고.                


어릴 적, 엄마와 할머니를 볼 때면

엄마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로 태어나고

할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로 태어났던 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엄마다운 모습, 할머니다운 모습을 매 순간 주저 없이 보여준 게 아니었을까.

내가 이 세상을 처음 마주한 날 그들은 이미 엄마였고, 할머니였기 때문에 그 이전의 삶을 어린 내가 떠올리기는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희생하는 삶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자꾸만 나를 맴도는 질문들.

모성애는 타고 나는 걸까?

가끔, 당연하다는 듯 "엄마는... 엄마니까." 하며 희생을 요구하는 딸에게 말해야겠다.


엄마도 태어날 때부터 엄마로 태어난 건 아니었단다.

우리 그냥...

친구처럼 지내는 건 어떠니?

우리 요 앞 마트 가서 골뱅이 캔 쓸어 올까?

가자! 렛츠 고!! ^^





*ㅇㄷ골뱅이 홍보글 아님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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