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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Feb 13. 2024

칼퇴근하던 남편이 야근을 하니 아들이 변했다


남편이 처음으로 야근한 날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차라리 주간 근무를 보름 몰아 한 후 야간 근무를  보름 내리 하는 시스템이라면 단기간이지만 수면 패턴도 나름 일정하여 몸에 무리가 덜 갈 것 같은데 남편의 회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주간 이틀, 야간 이틀, 휴무 이틀 6일을 한 세트로 묶어 주말, 공휴일 상관없이 무한 순환 체제로 돌아가 해 놓았다. 일개 직원이 뭐 힘이 있나. 회사에서 나오라면 나오고, 방침을 따르라면 따라야 하는 것을.

그 옆에 와이프라는 보이지 않는 명찰을 가슴에 단 나는 남편과 손잡고 함께 회사로 출근하는 것도 아니면서 남편이 주간 출근하면 주간 출근을 하는 대로, 야간 출근하면 야간 출근하는 대로 내 하루 시간표도 같이 돌아갔다.


적응기간이랄 것도 없이 실전으로 바로 투입된 야간 근무 첫날은 무척 어색하고 허전했다.

남편이 4시 반 경 집을 나서자, 방학 중아이들이 내 곁에 둘이나 같이 부대끼며 있는데도 왜 그리 마음은 헛헛했던지. 결혼한 이후 15년 동안 칼퇴근밖에 모르는 남편과 함께 보낸 세월의 익숙함에 몸이 어느새 적응이 되었나 보다. 남편은 15년간 회사를  번 옮겼는데 7시에 퇴근하면 7시 땡 퇴근, 6시에 퇴근하면 6시 땡 칼퇴근을 하는, 예외라고는 일절 없는 바른생활 사나이었기에 더욱더 저녁시간은 함께 있는 것에 익숙했던 것 같다.


회식을 하는 날도 거의 칼퇴근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남편은 회식을 하면 고주망태 되도록 술을 퍼마시는 것도 모자라 2차, 3차, 다 함께 차차차 순회공연을 하느라 퇴근을 하러 오는 건지, 출근을 위해 잠시 집에 들러 벽 짚고 퇴근 흉내만 내는 건지 모를 새벽녘 귀가를 하기도 한다는데 우리 남편은 회식 때도 다름이 없었다. 회식을 하더라도 밤 9시를 넘기지 않는 모범남편을 보고 괜히 흡족한 미소를 지었더랬다. 물론 첫 회식날 예상보다 너무 일찍 귀가한 남편을 보고 처음엔 나도 무척 놀라긴 했었다.


"오늘 회식 있다 하지 않았어?"


"응. 회식하고 왔지."


"근데 지금 8시 반인데?"


"응. 그게 왜?"


"회식을 했는데 어떻게 8시 반에 집에 올 수가 있어?"


일찍 들어온 남편을 막다른 골목에서 외계인을 맞닥뜨린 듯 꼼짝 않고 되지도 않는 질문을 하고는 이내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 취조하듯 자꾸 질문만 해댔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남편은 술과 상극이다. 을 즐겨 마시지 않는 남편은 동료들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담배도 먹을 때 얌전히 밥만 먹고는 아침에 끌고 간 차를 그대로 몰고 귀가하는 사람이다. 술을 한 잔만 해도 온몸이 홍학 색으로 변하는 그는 술과 친할 수가 없으므로 어찌 보면 당연했지만 회사 다닐 적 나를 떠올려보면 회식 때 2차는 가뿐했고 3차는 노래방에 가는 것이 코스일 정도로 놀 땐 확실히 놀자 주의였으므로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게 당연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 남자는 나를 적응시켰다. 착실한 남편과 사는 착실한 아내로. 자신의 생활패턴에 주변 사람이 점차 스며들도록.


그러니 주간 근무만 하다가 갑자기 주야간 번갈아 하는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단박에 새로운 근무체제에 적응하기란 힘든 일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직접 일을 하는 당사자니 당연히 힘이 들 테지만 도대체 나는 왜 힘이 든 건지. 직접 일을 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는 쓰일 수 있나 보다. 아이들과 늘 함께 하려고 매번 거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이, 게다가 우리 식구 중 가장 덩치가 큰 사람이 세트 메뉴에 구성품 하나 빠지듯 쏙 빠져나가 있으니 그 헛헛함과 썰렁함은 말도 못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의연한 자태를 유지하는 신사임당 같은 어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나였지만 이상적인 생각과 달리 마음의 창이라 불리는 나의 두 눈은 따라주지 않았다. 남편이 집을 나서고 5시쯤 되니, 남편이 자리를 비운 지 30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내 눈은 뜨고 있지만 딱히 무얼 바라보는 게 아닌 흐리멍덩한 동태눈이 되었다. 신사임당이 되고 싶어 하는 내 의지를 비웃듯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멍하니 응시한 채, 일이 잡힐 리 없는 두 손도 놀게 내버려 두고, 별것 아닌 것에도 하하 호호 웃었던 내 입에선 짧은 한숨까지 나왔다.


즐거운 기분은 전염이 되는데 우울한 기분도 마찬가지다. 아니 경험상 즐거운 마음보다 더 빨리 전파되는 것 같다.


하늘이 무너져 내릴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의 저조한 기분을 아이들이 눈치채면 불편해할까 싶어 내가 먼저 내 상태를 아이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현재 상태가 우울모드인 걸 모르고 아이들이 평소대로 까불까불 오두방정을 떨어대면 내가 괜히 아이들에게 짜증을 낼지도 모르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었고, 내 기분을 말로 풀어내면 혹시나 우울에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어쨌든 엄마의 우울한 모습은 아이들에게 좋게 작용하지 않을 테니까.


"저녁에 퇴근해서 항상 같이 있던 아빠가 없으니까 엄마 기분이 이상해.

엄마 괜히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그렇다?

엄마 표정도 괜히 어두울 것 같은데 그런 줄 알고, 평소처럼 밝은 엄마가 아니어도 너희가 조금 이해해 주면 좋겠어..."


아이들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임을 감지했다. 놀랍게도 스스로 눈치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입에서 단 내가 나도록 잔소리를 반복해 줘야 몸을 움직이는 아이들이 웬일로 스스로 알아서 양치도 하고 씻기도 하고, 사이좋은 오누이가 되어 서로 예쁜 말로 대화도 하고, 자러 들어갈 때는 나란히 서서 "엄마,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밤인사도 잊지 않았다. 역시 죽으란 법은 없다. 한쪽이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 다른 한쪽이 넘쳐 그 자리를 메워주니 어찌어찌 살아가게 되는가 보다.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


그렇게 한 바퀴 시간이 흘러 또 야근의 날이 돌아온 날.  


게임에 열심이신 아드님. 닌텐도의 좌우 방향 버튼을 연신 누르기도 바쁠 텐데 그 와중에 힐끔 나를 쳐다 보고는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여전히 애쓰면서도 조그만 입을 열어 한마디 했다.

     

고요한 저녁 분위기에 녹아드는 촉촉한 한 마디.  


"엄마, 오늘은 괜찮아?"


내가 잘못 들었나? 나지막하지만 위로를 잔뜩 실은 힘이 가득한 목소리다. 멜로드라마에서 남주가 여주의 기분을 살피며 괜찮냐고 물어볼 때 자주 들리던 그 스위트한 목소리.


"응? 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이들에게 쉽게 간파당하는 엄마는 하수라 생각해 왔는데 내가 또 내 기분을 들켜버리고 말았나? 베테랑 엄마가 되고 싶기도 하고, 뭐가 괜찮냐는 건지, 그 뭐가 무엇인지 궁금해진 나는 모르는 척 아들에게 되물었다.


"아빠 야근하는 날이라 지금 집에 아빠 없는데 괜찮은가 하구."


"응? 어어~ 괜찮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나 봐. 이제 다 적응됐어~"


저녁이지만 평범한 저녁이 아닌, 아빠가 없어 빈자리가 큰 저녁임을 아들은 알아차렸던 거다. 지난번 엄마가 우울한 표정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나 보다.

어제 일도 가끔 내가 뭘 했더라 기억이 안 날 때가 많다. 어제가 뭔가. 바로 오늘 아침에 무슨 반찬으로 밥을 먹었는지 깜빡할 때가 있는데 무려 일주일 전의 일을 기억하고는 엄마를 걱정하며 물어보는 질문에 나는 굉장히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아들의 한 마디에 포근함도 느꼈고.



설 연휴가 지나고 일과가 시작된 첫날.

오늘따라 막둥이가 내 말을 잘 들어준다. 원래 아이들은 보통 두세 번은 이야기해야 몸을 움직이는 게 국룰인데, 혹시 꿈에 엄마 아빠가 안 좋게 나온 건가? 부모의 소중함을 이젠 느끼는 걸까, 무슨 일이지.


센터를 데려다주며 털털한 누나보다 엄마 말을 훨씬 잘 들어준 막둥이에게 칭찬을 한 마디 해 주려고 발동을 걸었다.


"오늘 왜 이렇게 엄마 말을 잘 들었어? 혹시 엄마 아빠가 안 좋게 나온 꿈 꿨어?"


"아니."


"그런데 엄마 말을 왜 그렇게 잘 들어주는 거야? (안 들으면 안 듣는다고 뭐라 하고, 잘 들으면 또 왜 잘 들어주느냐 묻는 희한한 엄마다.)"


"이 나이 됐으면 철들 때도 되지 않았을까?"


이제 겨우 4학년 짜리의 조막만 한 입에서 애어른 같은 말이 나와 어찌나 부조화스럽던지, 또 한편으로는 어찌나 대견스러우면서 웃음이 터지던지, 나는 그만 소리 내어 크게 웃고 말았다. 스물이 넘어도 아니 서른, 마흔이 넘어도 철 안 드는 어른들이 많단다, 하고 속엣말을 하고 싶었다.


막상 나만 하더라도 들쭉날쭉한 감정 기복을 아이들 앞에 감추지 못하고 드러내 창피한 적이 더러 있었는데 그런 엄마를 위해 한 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아이가 새삼 고마웠다.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 앞에서 모든 모습을 완벽에 가깝게 보여주고 싶겠지만 때로는 서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완벽한 모습 대신 어딘가 약해 보이고 부족해 보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 자신도 부모님께 도움을 줄 수 있구나 하고 한 뼘 성장할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때론 내 마음을 자식인 너희들이 몰라도 너무 몰라 준다고 소리만 빽빽 질러댄 적도 종종 있었는데 약 일주일 전 내 감정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위로하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감사하기도 하고.


칼퇴근하는 아빠가 야근하는 동안은 적어도 자신이 이 집에서 남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새해가 되고 부쩍 크는 아이들을 피부로 느끼는 날이다.

어쩐지 오늘은 햇살이 더 포근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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