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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Aug 04. 2024

노래를 들으면 슬로우가 걸리는 마법


저녁을 다 먹고 하루의 마무리인 설거지를 할 땐 반드시 노동요가 필요하다.

식기세척기가 있긴 하지만 6인용 식기세척기는 무늬만 6인용이고 그릇 몇 개 넣지도 않았는데 보통 60분의 시간이 소요되는지라 식세기용 세제를 넣지 않고 헹굼, 건조 버튼만 눌러 30분만 사용하는 편이다. 결국 애벌 설거지하는 시간이 소요되는데 한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자세라 반드시 노래를 틀고 시작한다. 싫어하는 일을 할 때 좋아하는 것으로 덮으면 싫은 마음이 조금 사라지지 않을까 하여.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들으면서 주방일을 하면 힘든 게 좀 덜하다. 따라 흥얼거리면 즐거운 것도 같다. 하지만 막둥이가 틀어놓은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일본말이 노래에 섞이니 노래에 꼭 불순물이 섞여 들어간 것 같아 개운치가 않다. 더구나 요새 대하소설 '아리랑'에서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일본인들의 만행을 읽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중이라 일본말을 듣고 있기가 더 거북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좀 안 볼 수 없느냐,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조선사람들에게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느냐 해도 아이들은 그에 대한 대답을 이미 마련해 둔 건지 "모든 일본인들이 다 나쁜 게 아니야. 그런 식의 편견을 가지면 안 돼."하고 역으로 나의 생각을 바꾸려 드니 쩝...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라서 내 의견을 더 강요하진 않는다.


그럼 어쩌나. 이어폰으로 듣는 수밖에. 요새는 무선 이어폰에서 다시 유선으로 유행이 바뀌는 중이라 하지만 설거지를 할 때는 무선이 최고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골라 재생을 누른다.

노래가 귓속에 울려 퍼지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귀호강을 하고 있노라면 나는 잠시 세상에서 분리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나 혼자만의 방에 들어가 있는데 노래가 소용돌이치며 나를 감싸는 느낌이랄까. 커다란 비눗방울 안에 홀로 있는데 방울을 경계로 나를 뺀 나머지 모든 세상이 펼쳐진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어릴 적 수영하는 법을 몰랐던 나는 노란 튜브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나에게 장난을 친다고 네 살 많은 사촌 오빠는 튜브를 위로 홀라당 들어 올리는 바람에 나는 그대로 바닷속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은 적이 있었다. 사람이 죽기 직전이 되면 삶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주르륵 스쳐 지나간다고 하던데 일곱 살 인생이 그야말로 영화인 듯 주마등처럼 내 눈앞에 빠르게 지나쳐가는 것을 경험했다. 후에 알게 되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급함을 인지한 뇌는 그동안 삶에서 지금 죽지 않을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여태 살아온 삶을 샅샅이 그리고 빠르게 찾는 중이라는 것을.


고작 7년을 살았기에 물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 저장해 둔 데이터가 있을 리 없는 꼬맹이는 '난 오늘 죽는구나...' 하며 그저 영화처럼 파노라마를 물끄러미 감상하는 수밖에 없었고, 코로 입으로 들어오는 물을 막을 길 없어 짠 바닷물을 많이도 마셨고 기절했었나 보다. 물을 토하며 깨어난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선.


그때 일로 어느 한 구석 물에 적셔지지 않은 곳이 없던 내 온몸은 물이 무척 두려워졌다. 덤으로 중이염도 얻었다. 한동안 고생을 했는데 한참 뒤늦게 어른이 되어서야 그것도 결혼을 하고 나서야 중이염 수술을 했다.


노래를 들을 때 세상에 나 혼자만 남은 것처럼 우레와 같은 소리로 노래를 듣고 싶지만 그럼 내 여린 고막은 못 견디고 찢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쉽지만 적절한 볼륨으로 노래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더 크고 웅장한 소리로 듣고 싶은 마음에 적절한 범주 안에서 최고 볼륨에 맞추는 편이다.


감미로운 노래가 흘러 내 귀를 적시면

그럼 그때부터 내 앞엔

마치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마침 내일 캐리비안베이를 가기로 한 아빠와 아들.

남편은 1년 동안 깊은 잠만 자던 수영복을 꺼내 혹시 옷에 문제는 없는지 한번 입어본다.


웬 걸? 찰싹 달라붙는 얇은 수영복 효과로 날씬해 보이는 착시효과를 얻었다.

칭찬할 일 별로 없고 칭찬받을 일은 더 없는 무미건조한 우리 나이가 아니던가. '기회는 이 때다.' 싶어 놓치지 않고 오래간만에 칭찬 한마디 날려주었다.

"수영복 입으니 날씬해 보이는데?"


날씬해 보인다는 한마디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거울 앞에 서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막춤을 추어댄다.

결혼 15년 차 아내 앞에서 막춤이라.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이젠 서로가 너무 편해져서인 걸까.

아님 자신의 그 어떤 행동들도 모두 이해해 줄거란 믿음 때문인 걸까.

점점 흥이 올라 극으로 치달으니 엉덩이춤을 추는 짱구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춤사위다.


거울을 보며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아빠를 흘끗 쳐다보는 막둥이가 저보다 훨씬 어린 동생 보듯 귀엽다는 표정까지 지어 보이며 입술까지 씰룩씰룩하며 "아주 신이 났구먼." 하는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내 귀엔 노래가 가득 담겨 있으니 말소리를 들을 순 없지만 입모양은 꼭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래에 심취해 나의 입은 어느새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르는 중이다.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신기술 덕에 설거지를 하고 있지만 물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가스레인지 위 거슬리기만 하던 환풍기 소리도 꼭 멈춘 것 같다. 외부소리를 차단한 채 부르는 내 목소리는 크기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으니 너무 커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내 흥에 취해 나지막이 따라 부르는 내 노랫소리는 매우 조심스러운 가성일 뿐이지만 적막한 공간에 또렷이 들릴 수밖에 없고, 어느새 딸아이는 내게 살며시 다가와 내 귀에 자신의 귀를 대고 나와 맞춰 노래 한 소절을 같이 부르고 사라지고.


설거지 대야만 바라보다 잠시 고개를 들어 집안을 둘러보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네 식구의 저녁시간을 제삼자가 보는 듯, 느릿하고도 아스라이 재생되는 파노라마를 감상하는 듯, 나는 네 식구 중 한 사람이 분명한데 또 다른 내가 밖에서 우리 네 식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묘한 기분에 괜히 희미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 따스한 행복 언젠가 그리울 날 오겠지.

아쉽지 않도록 맘껏,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해야겠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https://youtu.be/Wpk758JkN1E?si=lr1KAt1mTxiJZOW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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