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수분포표에서 계급과 도수, 계급값 등을 배우고 히스토그램이라는 그래프도 배운다. 개념 부분은 어찌어찌 배워 넘긴 것 같은데 문제를 풀다 보면 문제의 문장이 아주 가관이다.
"무엇 무엇을 나타낸 히스토그램인데 일부가 찢어져 보이지 않는다. 어쩌고 저쩌고 찢어진 부분은 전체의 얼마인가?"
따위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는 '이랬습니다', '저랬습니다' 그래가며 '얼마인가요?' 혹은 '구하세요'라고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를 구사해 주어 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게 만들었는데중학생이 되면 일단 문제의 말투부터 달라진다. 어린 티를 좀 벗었다며 대우해 주는 건지 '얼마인가', '몇인가', '구하시오' 따위의 어조가 갑자기 건방져지니 이미 기분은 썩 좋지 않은 상태인데 거기다 멀쩡한 그래프를 찢었다 하니 성질이 났나 보다.
딸아이가 반복되는 찢긴 그래프 문제를 풀다가 지겨운 듯 머릿속으로 양손을 집어넣어 곧 머리칼을 쥐어뜯을 것 같은 자세로 말했다.
"아니 왜 자꾸 히스토그램을 찢고 그래. 왜 지가 찢어놓고 나보고 알아내래~! 히스토그램 때문에 히스테리 생기겠네."
'음... 그건 말이지. 문제 내려고 일부러 찢은 거야. 어쨌든... 그래, 딸내미 네가 고생이 많다.'
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혼잣말과도 같은 푸념을 했을 뿐인데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될까 봐 나는 그냥 입을 닫았다.
시간이 흘러 문제 풀이를 모두 끝냈는지 딸은 수학 문제집을 덮었다. 드디어 끝났구나, 좀 쉬라고 해야겠다 하는데 말할 틈도 안 주고 바로 영어책을 편다.
'저런. 아직 해야 할 게 남았구나.'
안쓰러운 마음도 잠시 딸아이가 핸드폰을 열더니 화면을 이리 밀고 저리 밀고 손가락이 분주하다.
그럼 그렇지. 공부가 지겹지. 하기 싫겠지. 하고 이해는 되지만 속으로만 이해하고 내색은 않고 하고픈 말을 또 꾹 참았다.
엇, 근데 의미 없는 쇼츠 따위나 보려고 휴대폰을 만진 게 아니었다.
딸내미는 영어책에 있는 QR코드를 찍고 영어 듣기를 하려고 준비 중이었던 것이다. 테이프를 틀고 되감기를 수도 없이 딸깍딸깍 눌러댔던 나 어릴 적때와 많이 달라졌구나. 세상 참 좋아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