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를 달래는 용도로 "우리 다음에 놀이동산 가자~"하는 경우도 있다. 그 다음이라는 건 몇 년 몇 월 며칠이 될지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지만 우선 그렇게 상처 난 아이의 마음을 달래고 보는 게 부모의 역할 중 하나다.
그런데 어제
"엄마, 나 에버랜드 안 가면 안 돼?"
라고 딸아이가 내게 말했다.
"응? 너 혹시 에버랜드 가면 안 돼? 하려다가마음이 급해서 거기다 '안'을 더 붙인 건 아니니?"
아니지, 아니야.
글이면 몰라도 숨 쉬듯 말하는 자연스러운 말하기에서 잘못 말하기란 쉽지 않은데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람?
내 귀가 잘못되었나 싶어 딸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잘못 말한 게 아니란다.
"그럼 도대체 왜?
몇 달 전만 해도 친구랑 에버랜드 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실컷 놀다 와 놓고선? 이제 여러 번 가서 흥미가 없어진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학교 빠지는 게 걱정돼서...
수업 못 따라갈까 봐..."
세상에!
신나고 재미나고 즐거운 일 앞에서는 어른들도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똘똘 뭉쳐진 일에 대해선 외면하고픈 마음이 더 커지기 마련인데! 오죽하면 "내일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긴다"는 우스갯소리와도 같은 광고 카피까지 큰 인기를 끌었을까 말이다. 그런데 다른 아이도 아니고 내 뱃속에서 나온 내 딸이 저런 말을 하다니...
내 귀를 또 한 번 의심했다.
전국적으로
중 1은 학교에서 시험을 보지 않은 기간이 꽤 되었다.
한데 올해 딸아이가 입학을 하면서부터 중학교 1학년은 딱 한 번 그러니까 2학기 기말고사 한 번은 시험을 보는 것으로 체계가 바뀌었다는 학교 공지가 있었다.
딸아이는 부담감을 차고 넘치게 느끼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속으로 너무 잘 되었다 싶었다.
1년 내내 시험 부담 없이 놀다가 2학년으로 진학하고 나서 그제야 부랴부랴 공부에 마음을 다잡고 시험대비를 하려면 익숙지 않아 힘들 텐데 우려하던 차에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던 것이다. 한때 수학 강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 교과서를 살펴보니 중1 수학은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다루지만 중1 때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2, 3학년 때 교과 과정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도록짜여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시험이라도 친다면 하기 싫은 공부라도 울며 겨자 먹듯 꼭 해야 하겠지만 시험이 없으니 아무래도 팽팽 놀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자발적이든 타의에 의해서든 뭐가 됐든 시험은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이니 역시 필요한 제도라 여겼는데 1년 내내 시험이 통으로 없다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때보다 한층 성숙해졌고 중학교 1학년에 닥친 좀 더 엄격해진 시험을 본다는 긴장감을 피부로 느꼈던 걸까.
딸아이가 다니는 센터의 모든 아이들이 함께 가기로 예정되어 있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에버랜드도 마다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학교를 결석하면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워질까 봐 학교를 빼먹지 않고 싶다고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딸아이를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나이에 걸맞게 놀 땐 놀기도 해야 하는 시기에 공부 때문에 놀지 못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이십 대 삼십 대를 지나 지금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내 몸 하나 추스르기 힘들어 오늘 할 일을 오늘 다 하지 않는 나를 종종 보곤 한다. 내일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혹시라도 내일이란 놈이 심심해할까 봐 가차 없이 내일로 넘겨버리는 나였다. 오늘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만 겨우 해내며 의지가 점점 약해진 나에게 딸아이의 책임감 가득 담은 말이 큰 가르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