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쪽 눈썹 아래에는 깊은 흉터가 있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나를 낳고 집으로 데려온 날, 잠을 자고 있는 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언니가 손톱으로 얼굴을 긁었다고 한다. 그 바람에 나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언니의 시기와 질투는 이렇게 나의 얼굴에 지워지지 않는 자국으로 남아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는 동생이 생겼다. 언니가 가지고 놀던 장남감이 내 손에 들어올 즈음이었다. 어른들은 나에게 동생에게 양보하라고 했다. 순순히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동생에게 주는 나를 보고 어른들은 착하다고 했다. 나는 내가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어머니의 관심은 늘 언니를 향해 있었다. 언니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아침이면, 어머니는 언니를 학교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어느 날엔가 어머니는 정신 없이 언니를 챙기며 언니와 함께 학교로 갔다. 그 아침에 동생은 똥을 누겠다며 요강에 앉았다. 동생이 똥을 누고 난 후, 나는 동생의 똥을 닦아주었다. 학교까지 언니를 데려다 주고 온 어머니에게 동생이 "언니가 똥 닦아 주었어!"라고 말을 했지만, 어머니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은 추운 겨울이었다. 어머니는 열이 나는 동생을 안고 안절부절하며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눈이 내렸다. 그날 그 눈을 맞으며 고모할머니가 오셨다. 어머니의 어려운 시댁 어른이 오신 것이다. 어머니는 서둘러 고모할머니께 굴비를 구워 상을 내어 드렸다. 식사를 마친 할머니가 가실 때, 어머니는 동생을 방 아랫목에 누이고 고모할머니 배웅을 나가셨다. 어머니가 나갔을 때, 언니는 동생을 안으며 우유를 먹여야 한다고 했다. 언니는 차가운 우유를 스뎅그릇에 담아 동생의 입에 넣기 위해 동생의 목을 들었다. 힘에 부친 언니는 나에게 동생의 머리를 손으로 받치라고 했다. 나는 언니가 하라는 대로 언니를 거들었다. 언니가 그릇을 기울여 우유가 동생의 입 안에 들어간 순간, 동생은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자지러지게 울었다.
할머니 배웅을 하고 돌아온 어머니는 떨며 울고 있는 동생을 보자마자 놀라 동생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우리집은 그때부터 집안 분위기가 바뀌었다. 동생은 말을 더듬는 아이가 되었다. 늘 빵을 달라며, 보챘다. 밤에도 울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에잇!"하며 잠을 못자겠다고 화를 냈다.
'그날 동생에게 우유를 먹이지 않았다면, 동생은 과연 괜찮을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은 동생을 볼 때마다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어머니는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자 동생을 가르치게 했다. 그때는 일일공부라는 학습지가 있었다. 어머니는 날마다 배달되는 시험지를 받아서 동생이 문제를 풀게 했다. 어머니가 외출하기라도 하시면, 내가 동생이 문제 푸는 것을 봐 주어야 했다. 시험지에에는 별이 10개가 그려져 있었다.
'별 7개를 색칠하시오.'
문제는 10개의 별 중에 7개의 별을 색칠하는 것이었다. 나는 동생에게 7개의 별을 한줄로 긋게 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그려."
외출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시험지 검사를 했다. 7개의 별을 하나씩 색칠해야 하는데 한줄로 거칠게 그려진 선을 본 어머니는 동생에게 물었다.
"이거 누가 이랬어?"
동생은 "언니가."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저기 가서 총채 가지고 와!"
나는 그날 어머니에게 맞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가출을 시도했다. 가방에 내복을 챙겨서 집을 나오려 했을 때, 신발도 신기 전에 어머니에게 붙잡혔다. 그때, 어머니는 나의 가방에서 내복 바지를 꺼내며 화를 냈다.
"이거 가지고 나가려 했어? 그런 거니?"
그리고는 구두헤라를 가지고 와서 나의 종아리를 때렸다.
나의 가출 시도는 어머니에게 본인의 통제력을 확인하게 한 사건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옆집 아주머니가 왔을 때, 어머니는
"얘가 가출을 하려고 했지 뭐예요. 그래서 매를 들었어요. 애를 때리지 않고 곱게 키웠는데, 내 생전 처음으로 얘를 때렸다우. 아이 다리에 멍자국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라고 말하며 나를 때린 이유를 설명했다. 그때 나는 어머니 옆에 앉아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나를 때린 기억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동생은 발달장애를 겪었다. 말을 할 때면, 말을 어법에 맞춰서 말하지 못했다. 글자를 잘 적지 못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교 복도를 걸어 나오는 길이면, 늘 동생이 학교 복도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동생이 공부를 잘 하기 바랐다. 어느 날엔가 동생은 100점을 받은 시험지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 시험지를 본 어머니는 반색을 하며, 기뻐하셨다. 짝이 도와줘서 시험을 봤다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짝이 다 보여주었대요."
자랑스레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 친구를 어머니는 집으로 오라고도 했다.
나는 나의 성적표를 어머니께 쉽게 보여드릴 수가 없었다. 시험지에 적힌 30점의 점수를 숨길 수만 있다면 숨기고 싶었다. 선생님은 시험지를 부모님께 보여 드리고 도장을 찍어 오라고 하셨다. 나는 그때, 어머니 몰래, 도장을 찍었다. 그 사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콩닥거리며 정신없이 뛰었고 얼굴이 머리끝까지 빨개졌다. 언니는 성적표를 자랑스럽게 어머니에게 보여 드리며 어머니의 도장을 받았다. 그 옆에서 나는 불안해 하며 부끄러운 나의 성적표에 고개를 떨구었다. 붉은 얼굴을 마루에 피워져 있던 난로의 열기로 뜨겁게 데우며 내 마음을 숨겨야 했다.
어머니와 언니는 늘 나에게 화가 나 있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화를 내면, 언니는 쌜쭉한 얼굴로 나를 외면했다.
"버스를 탈 때, 왜 먼저 타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언니는 나의 친절이 불쾌하다고 했다.
"지나 탈 일이지 뭐한다고 남 참견을 한다냐?" "너 할 일이나 잘 해!"
집을 나오고 난 후, 어머니를 다시 안보려 했다. 그렇지만, 늘 나의 마음은 어머니의 정에 목이 말라있었다. 어머니를 만나지 않으려 할수록 어머니를 더욱 그리워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즐거웠던 적도 있었다. 어느 샌가 나는 어머니를 만나고 있었다. 어머니를 만나러 간 날이면, 어머니는
"내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 살아라."
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면, 마음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외따로 떨어진 듯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우리'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내 딸아!'
라는 말이 어머니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어머니를 뵈러 갔을 때,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계셨다. 더 해드릴 것이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누워계신 어머니 옆에 앉아서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좀더 오래 있었어야 했다. 어머니가 몸져 눕게 전에 나를 붙들고 가지 말라고 하셨을 때, 같이 있어드려야 했다. 나의 짧은 방문을 온 몸으로 거부하던 어머니의 의식은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께 말했다.
"엄마, 갈게."
어머니는 눈도 뜨지 않고 한 쪽 손을 힘겹게 몇 번인가 움직였다.
"음. 잘 가."
그리고 일주일 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내면화된 비난의 말들. 어머니가 나에게 남긴 기억들은 나의 수치심을 자극한다.
"니 모습이 지금 어떤 줄이나 아니? 나참, 동네 부끄러워서!"
왜 어머니가 그토록 나에게 화를 내셨는가에 대해 끊이없이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나의 마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전화기 저장 공간이 부족해서, 내장되어 있던 파일을 들을 지우다가 어머니와 통화가 녹음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전화했어? 아이고, 힘들어라. 너 잘 살아라. 이만 끊자. 힘들다."
"...."
"할 말 있어?"
"아니."
나의 대답은 단단하고 차가웠다. 그 말에는 나의 분노가 뭍어 있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 역시 어머니에게 화가 많이 나 있었다는 것을. 나의 마음에 난 깊은 구멍을 어머니의 어떤 말로도 채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