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by 봄날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예비 소집일에 중학교에 처음으로 갔다. 국민학교의 운동장보다 큰 운동장에 잿빛 교실이 있는 학교는 2월의 차갑고 습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교과서를 받는 날이 되어서야 교실에 처음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는 교실에 히터가 없었다. 그때에는 교실 가운데에 석탄 난로를 놓고 난방을 했는데, 그날 교실 난로는 잠겨 있었다. 교실 의자에 앉은 아이들은 추위에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름이 호명되면 앞에 나가서 선생님이 주시는 책을 받아 가져온 가방에 넣었다.

내 옆에 앉은 아이들은 정면을 응시하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나의 손을 옆에 앉은 아이의 손 위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춥다. 흐"

그러자 그 말이 전염이라도 된 듯이 옆자리 아이들이 춥다는 말을 이어서 했다. 그리고는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친구가 되었다.

학기 첫날 선생님은 70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키 순서대로 줄을 서라고 하셨다. 아이들이 줄을 서자 선생님은 아이들 틈에서 작은 아이를 데리고 나와 줄 앞에 세우셨다. 그렇게 해서 나는 34번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작은 키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키는 더 자라지 않았다. 3월 학교 정원에는 목련꽃이 피었다가 졌다. 비가 온 날 땅 바닥에 떨어진 목력 꽃잎은 그 예뻤던 모양은 간 데 없고 짓이겨져 있었다.


만우절날이 되었다. 반에서 목소리가 큰 아이들이 뭔가 일을 꾸몄다.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수업을 하려 한 순간,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쥐다!"

그러자 그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고, 그 바람에 놀란 다른 아이들도 따라 비명을 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뛰어다녔다. 선생님을 볼 겨를이 없었다. 잠시 후, 장난이었다는 것이 밝혀지자 선생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생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수업을 하셨다.

하루는 수학 선생님이 공책 검사를 하셨다. 노트 검사 후, 수학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부르시고는 노트 적는 법을 알려 주셨다. 그때 선생님의 가르침은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까지 계속 도움이 되었다.


여름 방학을 보내고 온 첫 날이었다. 아이들 틈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담임선생님은 웃음을 참지 못하셨다. 까무잡잡하게 햇빛에 그을려 온 아이들 속에서 나만 하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집 형편상 피서는 생각치도 못했다. 정말로 더운 날에는 은행에 가서 앉아 있었다. 은행 에어컨 바람을 쐬며 은행 푹신한 의자에 앉아 구비되어 있는 잡지를 읽으면 그 이상의 꿀맛이 따로 없었다.


나는 체육을 잘 하지 못했다. 체육도 못하고 공부도 그리 뛰어나게 하지 못하는 존재감이 별로 없는 조용한 아이였다. 그런데 체육 시간에 체육선생님이 나를 보시더니 체육부장을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중대한 임무를 주셨다.

"체육 시간에 체조 구령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매일 집에서 물병에 물을 얼려와서 나에게 주도록 해라."

어머니에게 말씀을 드리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나는 체육선생님께 얼린 물통을 매일 가져다 드릴 수가 있었다. 기말고사 때가 되자 체육부장인 나이기에 아이들 체육 시험 준비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책을 보고 문제를 만들어와서 자율학습 시간에 칠판에 적고 아이들에게 답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 그때 반에서 공부를 잘 한다고 알려진 아이들이 모여서 하는 말을 들었다.

"저기, 맞춤법이 틀렸어. 소재를 소제라고 적은 거 봐봐. 그것도 구분 못하는 애가 알려 주는 걸 믿고 공부해도 될까?"

그 말을 들은 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어쨌든 체육 시험을 봤다. 시험을 본 후, 몇몇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말했다.

"너가 적어준대로 공부하고 문제를 풀었는데 답이 틀렸어!"

나는 그때 아찔함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


사회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라고 하셨다. 아이들은 목청껏 국민교육헌장을 소리내어 읽고 외웠다. 그 즈음 학교 복도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수업 시간인데도 교실 밖에 있었다. 아이들의 채변 봉투를 정리해야 했다. 채변 봉투를 안낸 아이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그런데 채변 봉투를 놓고 확인할 때마다 안낸 아이들의 이름이 달랐다. 선생님께 가서 이야기 해야 하는데, 시간은 흐르고 교실에서는 수업을 하고 있고, 나는 아이들의 똥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러다 열이 오른 나는 씩씩거리며 교실로 가서 뒷문을 열어재끼며 소리쳤다.

"야. 채변 봉투 안낸 사람 누구야?"

순간 교실에서는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도 나에게 아무 말도 못하셨다.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채변 봉투를 세러 갔다. 2학년 때 일이다. 그런데 학년 말에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선행상을 주셨다. 아이들도 다들 내가 선행상을 받을 정도록 착하다는 말을 해 주었다. 순간 나는 정말 착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나의 상장을 내밀며

"나, 상받았어."

라고 말했다. 내가 학교에서 받아온 첫번째 상이었다. 그 상을 본 어머니는

"니가 선행상을 받았다고?"

라고 하시고는 나의 상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어느덧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이때에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려면 시험을 봐야 했다. 그 준비를 위해 학교에서는 수시로 모의고사를 보았고, 달마다 월말고사를 보았다. 시험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교실에서 도난 사건이 빈번히 발생했다. 아이들은 가방에 넣어 두었던 용돈을 잃어버렸다. 이를 보다 못한 담임 선생님은 종례 시간에 아이들에게 의심이 가는 사람 이름을 쪽지에 적어서 내도록 했다. 의심을 사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지만 쪽지에는 모르겠다고 적었다. 쪽지를 걷어서 한 장씩 펼져보던 선생님은 나의 쪽지를 보고는 나에게 물었다.

"너는 왜 모르겠다고 한 거니?"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그 무리의 아이들이 집으로 가는 나를 불렀다. 그 아이들은 나를 데리고 문구점 안에 있는 떡볶이 집으로 갔다. 어정쩡하게 자리에 앉은 내 앞으로 아이들은 떡볶이와 순대, 튀김을 한 상 가득 주문해 높고 나에게 이것저것 먹으라고 채근을 했다. 그 떡볶이를 아이들과 같이 먹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가게에서 파는 음식은 불량 식품이라던 어머니의 말을 따라 아이들의 지나친 친절을 거절하고 가게를 나왔던 것 같다.


월요일이면 학급회의가 있었다. 학급회의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계시기는 했지만, 그 시간은 학생들의 시간이었다. 안건을 정하면, 그 안건에 대해서 거수를 해서 발언권을 얻고 말을 했다. 그날의 안건은 '지각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지각하는 학생들이 많아지자 담임 선생님이 안건을 그렇게 정해 주셨다. 아이들의 의견은 시간을 잘 지키자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9시까지 오라는 건 정확한 기준이 아닙니다. 9시 00분까지 오라고 규칙을 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전에 지각을 한 학생은 지각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들은 아이들은 그 아이의 단호한 말에 그만 감동을 하고 말았다. 그 아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아이들 틈에서는 "맞다.". "맞아."라는 말이 들렸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변호사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영향이 있어서인지 아이들은 그 아이 앞에서는 말을 조심스럽게 했다. 하루는 선생님이 "여러분들 테레비를 많이 보지 마세요.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아이가 옆에 있는 아이에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주변 아이들이 "뭐? 뭔데?"라며 물었다. 그 중 한 아이가 말을 전해 주었다.

"교육방송 보려면 어머니에게 테리비를 더 봐야 한다고 했대."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못하셨다.


학교에서는 가끔 소지품 검사를 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을 교실 밖으로 내보내고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와 아이들의 가방을 열어보았다. 그때마다 걸리는 아이가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브룩쉴즈 주연의 파라다이스라는 영화의 비디오 테이프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했다. 학생들 잔돈 털이도 모자라 청소년이 보아서는 안되는 영화의 비디오 테이프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 아이는 그 이후로 아이들 사이에서 더 유명해졌다.

하루는 그 아이가 아버지가 변호사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너네 오빠 잘 생겪다며?"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순간 얼굴이 일그러지며 순간 그 말을 한 아이의 멱살을 붙잡아올렸다.

"너, 내가 우리 오빠한테 관심 가지지 말랬지!"

멱살을 잡힌 아이는 켁켁거리며 아무 말도 못했다. 멱살을 잡은 아이가 손을 놓자 그 아이는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아버지가 변호사라는 아이를 볼 때마다 오금이 저렸다.

날이 차가워지자 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귤을 좋아해서 귤을 까먹는 재미에 귤을 먹다 보면 어느 샌가 손이 노래졌다. 그 손을 씻으니 귤색 거품이 이는 것이 아니라 연녹색의 거품이 몽골몽골 올라왔다. 그 이야기를 학교 옆자리 친구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연두색 거품이 난다구?"

그 순간 아버지가 변호사라는 아이가 고개를 확 돌려서 말하는 친구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친구는 뭔가 겸연쩍게 나를 가르키며

"얘가 그랬어."

라고 말했다. 그 아이의 시선이 이번에는 나를 향했다. 순간 움찔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나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어.'

그 아이의 끄덕임은 이런 의미로 다가왔다. 순간 나는 기분이 으쓱해졌다.


시험 때문에 3학년 졸업 여행이 늦어져서 늦가을이 되서야 당일로 학교에서 졸업 여행을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난 사고의 주범이라고 여겨졌던 아이가 아이들의 여행 경비를 관리했다. 여행을 마치고 고속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 아이가 빨깧고 예쁜 수첩을 나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때 모른다고 해서 고마웠어."

나는 그 수첩을 첫페이지부터 끝까지 촘촘하게 적으며 다 썼다. 그리고도 아쉬워 버리지 못하고 몇 년 동아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