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입 시험을 보고 학교 배정을 기다렸다. 집에서 가까운 사립고등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이전에는 시험을 보아야 입학이 가능한 학교였는데 추첨제로 입시 방법이 달라지면서 입학할 수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 학교는 언니가 가고 싶어했던 학교였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치 내가 언니의 자리를 빼앗은 듯한 생각이들었다.
입학식을 하기 전에 배치고사를 먼저 보았다. 배치고사를 보고 나오자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떨고 있는 나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셨다.
입학식을 하고 배정 받은 반에 들어갔다. 중학교 때와 다른 분위기의 아이들.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교실에 모여 보니, 동질감을 느끼기 보다는 서로 많이 다른 아이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나의 입학을 위해, 티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마이를 사 주셨다.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어야 해서, 옷을 사줘야 하는 게 어머니에게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학교에는 합창단이 있었다. 그 합창단을 지휘하는 선생님이 우리반 음악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라는 말을 했다. 멋있어 보였다.그 말을 듣고 합창단에 호기심이 생긴 나는 합창단 단원 모집 광고를 보자마자 오디션을 보러 갔다.
오디션을 보러간 장소에는 2학년 언니들이 있었다. 나를 못마땅하게 보는 듯해서 주눅이 들었다. 오디션에서 노래를 부른 후, 몇가지 질문에 답을 했다. 그리고 나는 엘토파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합창단 연습은 매일 아침과 점심 시간에 있었다. 아침이면 발성 연습을 했다. 그리고 점심 시간에는 합창곡 연습을 했다. 심지어는 방과 후에도 연습을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공부를 하기 보다는 합창 연습을 줄창 했다. 그러자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공부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지 않고 공부를 했다. 학교로 가고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공부를 했다. 그 짧은 시간의 공부는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했다. 그리고 첫번째 중간고사를 보았다. 시험을 보고 나니 걱정이 되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70명 중 10등 정도는 했는데, 등수가 그 정도도 안될 것 같았다.
드디어 성적표를 받는 날이 되었다. 나는 평점이 4.0이 넘어 우량상을 받았다. 반에서 3등을 했다. 한자리수 등수는 처음이라 나의 손에 들어온 성적표를 보고도 내 등수가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합창단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쉬는 시간 없이 바쁘게 지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기말고사에서 성적이 4등으로 떨어졌다. 사회 시험 문제 3점짜리 한 개만 더 맞으면 평점이 4.0을 넘을 수 있었기에 아까운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학급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공부도 잘 하고, 집도 잘 사는 아이들이었다. 웬지 모를 열등감에 난 친구들 앞에서 말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내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게 생각되었다.
나를 책상 앞으로 이끌었던 것은 불안함과 열등감이었다. 그즈음 아버지는 친척할아버지 회사를 그만 두고 개인택시를 몰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개인택시 운전 기사라는 것을 친구들에게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학교에 적어내는 학생카드의 부모님 직업란에 운수업이라고 적으면서 제발 선생님이 어떤 운수업인지 더 물어보지 않길 바랐다. 지금 생각하면 개인택시 호시절의 시대이고 성실히 일하기만 하면 넉넉한 수입이 보장되던 직업이었는데 왜그런지 나는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음악선생님은 시험 문제로 클래식 음악을 듣고 곡을 맞추게 했다. 친구들은 선생님이 추천한 음악의 카세트 테입을 한 개씩 나눠사서 돌려서 듣자고 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 친구들과 사기로 한 카세트 테입을 샀다. 제비뽑기를 해서 내가 첫번째 순서가 되었다. 아이들이 모아서 산 테입을 제일 먼저 듣게 되었다. 집에 테입을 가지고 와서 들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서 테입을 찾아 보니 테입이 없었다. 불안이 엄습해 욌다. 내가 듣기로 한 것이 맞는데 그리고 테입을 모아서 집에 가지고 왔는데 테입이 사라졌다. 결국에는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나는 친구들에게 테입을 돌려 주지 못했다. 테입이 없어졌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친구들은 내가 테입을 다 가져갔음에도 내가 가져간 것이 아니라 그 모임에 있던 다른 아이가 가져가버린 것으로 오해를 했다. 그 아이는 다른 친구들과 싸우기까지 하고 결국에는 아이들과 사이가 멀어졌다.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해 겨울 즈음에서야 집에서 기름때가 잔뜩 묻어 낡은 그 테입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 테입을 차에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낮잠을 자는 아버지의 머리 맡에서 그 테입을 보는 순간 나는 나의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울음을 울거나 눈물을 흘려 나아질 수 있는 감정이나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무기력해졌다.
2학년이 되자 1학년 때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나에게는 버거운 아이들이었다. 2학년에 올라가니 어머니가 합창단을 하지 못하게 하셨다. 합창단 복을 어머니는 숨겨버렸다. 그리고 마침 나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합장단을 탈퇴했다. 그리고 나는 공부를 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나를 좋게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저런 아이가 공부를 한다고?"
이런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더욱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친구는 나에게 농아라고까지 했다.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나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려 했지만, 어머니는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성적은 오르지도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았다.
3학년이 되어, 첫번째 중간고사를 볼 때였다. 고3이 되고 보니, 대입 시험이 너무도 어렵게만 생각이 되었디.
우리집과 같은 연립주택에 사는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너가 그렇게 공부를 잘 한다며?"
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성적은 조금만 삐끗하면 저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대입 시험을 보기에 내 실력이 너무도 부족하게 생각이 되었다. 중간고사의 성적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나는 어머니에게 지금 실력으로는 학력고사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며, 재수를 하겠다고 했다. 이런 나에게 어머니는 절에서 받아온 부적을 배에 둘러주었다. 움직일 때마다 부시럭부시럭 부적의 종이 소리가 났다.
뭔가 포근하고 따뜻한 것을 손으로 잡고 싶었다. 그 생각이 너무도 간절했다. 그래서 울먹이며 어머니에게 작은 인형을 사달라고 했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딱딱한 목각인형을 손에 쥐어주었다.
기말고사를 보는 날, 우연히 내 손에 한 권의 소설책이 들어왔다. 시험 공부를 해야 했지만 그 소설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첵징을 펴들고 읽는 나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이번에는 그 소설책을 빼앗아 버렸다. 그때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될 대로 대라는 생각으로 시험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모든 시험을 거부했다. 시험 시간이면 문제를 풀지 않고 잠을 잤다. 그러다 지치면 몇 문제 풀어보다 답을 제출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생각했던 것보다 성적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성적은 이미 나의 관심을 떠났다. 나는 모든 선생님의 말씀에 나의 귀를 닫았다. 하지만 사실은 시험 시간에 문제를 푸는 것보다 문제를 풀지 않고 업드려 자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그리고 10월이 되자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가 물러나고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가을의 어느 날엔가 나는 기분이 괜찮아졌다.
'이런 마음이라면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생각에 책을 다시 손에 들었다. 학력고사를 약 한 달 정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안하던 공부를 다시 하려니 쉽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달 후, 학력고사를 보았다. 나의 등수는 여전히 이전 그대로였다. 단지 점수가 아쉬웠을 뿐이었다.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께 말씀하셨다.
"이 녀석이 그간 해 놓은 게 있어서, 그래도 성적이 나왔어요."
나에게는
"너 시험 포기한 줄 알았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겨울이 되되어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