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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복 Apr 28. 2021

위대한 순간

넘어지는 사람, oil on linen, 45.5x45.5cm, 2021

넘어지는 사람, oil on linen, 45.5x45.5cm, 2021


순간은 위대하다. 절대적 현존으로서 순간은 무한한 우주를 품고 찬란하다. 그 순간을 파고드는 기억이 있고 기억이 빚어내는 언어가 있어 이 또한 우주다. 그러고 보면 순간은 언어 또는 우주의 표면이다.


자연을 향해 붓을 놀린다. 하지만 자연을 붙들 수 없다. 헌데 붓 또한 자연이다. 붓끝에서 또 하나의 자연이 흐른다. 순간과 순간의 반짝임이 붓끝의 점선으로 이어진다.


붓은 점선의 자연을 쫓고 나는 붓의 자연을 쫓는다. 그때 나는 자유롭다. '가는 자는 가지 않는다'는 말처럼 중력의 한가운데로 사라진다. 자연의 표면으로 스며든다. 자연의 순간과 붓의 순간에 온전히 들어찬 나는 안이자 밖에 있다.


이따금 순간의 분화구에서 솟구치는 기억이 있다. 유동적인 형태이거나 추상적인의 형상이라 하더라도 기억은 또렷하기만 하다. 기억이 밤바다의 등대처럼 깜빡이며 결코 멈추지 않는다. 결국 또 하나의 세계를 짓는다.


그러기까지 제 아비를 닮지 않으려는 지난한 몸부림이 있다. 기존의 언어체계 바깥에서 서성이며 쉼 없이 중얼거린다. 혹은 웅얼거린다. 바깥을 배회하며 안을 엿듣는 꼴이다. 무엇도 될 수 있는 추상도 아니며 무엇으로 확정된 구상도 아닌 상태에서 추상과 구상의 광활한 중간지대를 어슬렁거리는 일이다.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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