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
우리 대학 캠퍼스를 걷다 보면 곳곳에 작은 쉼터가 눈에 들어온다. 벤치와 탁자가 놓여 있어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음료수를 나누는 공간들이다. 나 역시 산책하다가 잠시 앉아 쉬곤 한다.
특히 덩굴나무가 우거진 자리에는 은근히 발길이 잦다. 햇빛이 가려져 시원하고, 주변 풍광까지 곁들여 감상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개인적으로 꽤 애착이 가는 장소다. 다만 가끔은 새똥이 흩뿌려져 있거나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어 망설여질 때도 있다. 그래도 여름 장마철 한 번 비가 거세게 쏟아지고 나면, 마치 대청소라도 한 듯 말끔해진다. 자연의 청소 서비스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 아늑한 공간이 한순간에 불편해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담배 때문이다. 남편이 흡연자라서 나는 그 불편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함께 외출할 때는 절대 걸어 다니면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한다. 적어도 나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담배 연기도 싫지만, 인도 위에 아무렇지 않게 털어버리는 담뱃재는 더 싫다. ‘이 재와 미세한 연기가 결국 돌고 돌아 우리의 호흡기에 얼마나 들어올까?’ 하는 생각이 들면, 길에서만큼은 제발 금연해 주었으면 싶다.
학교 측도 사정을 알았는지 얼마 전 고육지책을 내놓았다. 바로 금연 구역과 흡연 구역을 나눈 것이다. 처음엔 ‘최첨단 공기청정기라도 들여놓나?’ 은근 기대했지만, 결과는 단순한 구역 나누기에 그쳤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흡연 구역을 피해 다니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일부 흡연자들은 표지판이 안 보이는 건지, 아니면 못 본 척하는 건지, 금연 구역 한가운데에서 연기를 내뿜는다. 나무 옆 잔디 위에 재를 털어내는 모습까지 보이면 속에서 열불이 난다. 사실 담배를 피울 권리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나라에서도 담뱃갑에 흉측한 경고 사진을 붙여놓으면서도 세금 때문에 판매는 허용하지 않는가. 내가 뭐라 하겠는가. 그저 정해진 규칙만 지켜달라는 것뿐이다. 흡연 구역에서 피우고, 재는 재떨이에만 털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드디어 일이 벌어졌다.
출근길에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 다가갔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나를 바라봤다.
“혹시 학생이세요?”
(참고로 나는 시력도 좋지 않고, 약간의 안면인식장애도 있다)
그가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
“아닌데요. 왜요?”
“여기 금연 구역이라 담배를 피우시면 안 되는데요.”
순간 그는 당황한 듯 담배를 재빨리 껐다.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사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가갔다. 혹시나 “그래서 뭐?”라며 대꾸라도 하면 논쟁을 각오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 쉽게 끝이 나버렸다. 돌아오면서 곰곰 생각해 보니, 아마도 첫마디인 “혹시 학생이세요?”가 주효했던 것 같다. 가까이 가서 그의 얼굴을 봤을 때, 순간 아차 싶기도 했다(옆에는 부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그의 기분을 미리 누그러뜨렸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어떤 할머니가 나를 “아가씨”라고 불러주면, 좀 민망하면서도 속으론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업어드리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사람이란 다 비슷하지 않을까.
결국 ‘그놈의 담배’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었지만, 의외로 훈훈하게 끝났다. 오늘의 교훈 하나를 얻었다. 지적을 하더라도, 먼저 상대의 기분을 누그러뜨려 놓는 것. 그게 생각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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