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객체적인 나를 주체적으로 비판해 봅니다.

by 나의

나는 용서한다.

바다에 푹 잠긴 내 손을 모래사장 위에 걸어 두른 채, 죽음과 술래잡기하듯 한껏 떨리며 나는 빛바랜 가로등 아래를 저벅저벅 걸어간다. 자신의 집의 가장자리만 닦은 채 남의 집을 정성껏 닦는 자의 일생은 어리석지 않은가. 거울 속에 비친 사람만이 나를 닦아줄 뿐이다.

세상의 수많은 씨앗들이 잎을 피우고 줄기들을 엮어 꽃잎이 가랑비처럼 내릴 때, 그 사람은 우산을 펼쳐 조용히 골목 사이로 걸어간다. 우산에 맺힌 꽃잎들이 점을 이루고 선을 긋는데, 다들 저 멀리 떨어져 있다. 화분에 꽃은 저마다 자신의 색이 담긴 꽃잎을 피우는데, 걷는 이는 박쥐처럼 동굴 속 창문에 비친 알록달록한 무지개에, 그 향기에 홀린 듯 자신의 흘러간 모래알갱이를 탓하며 경직될 뿐이다. 결승선에 도착한 이들의 빛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뛴 길을 탓하는 이의 모습은 게으른 토끼 같다. 그저 자신의 모래시계를 가운데 두었을 뿐인데 말이다.

비가 그치고 밤하늘엔 별이 켜져 쏟아질 때, 우산을 접고 빗물이 흥건하게 고여있는 아스팔트 길로 올라간다. 별들은 서로가 모여 별자리들을 만드는데 그는 저 멀리 떨어져 부는 바람 없이 걷고 있다. 자유를 노래하는 이가 어둠 속에서 빛을 섬기는 건 이치일지 몰라도 그 길은 고독하기 그지없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묻는다 할지라도, 그는 그저 침묵할 뿐이다. 누가 그를 피 묻은 서리밭 아래에 놓았다고 말할지라도 말이다. 모든 생명에게 부모가 있듯, 그도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의지가 옆에서 버텨주고 있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을 한 치의 타협 없이 순전히 그려나가는 것 말이다. 자신의 발로 인적 하나 없고 바람도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몰려진 이의 이상은 허무맹랑할 뿐이다.

5층짜리 회색 빌라에 도착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텁텁한 시멘트맛 공기를 들이키며 엘리베이터에서 4층을 기다린다. 숫자가 3에서 4로 바뀔 때, 약간의 기다림, 머릿속엔 두 개의 바위 사이 자갈만 들어갈 같은 틈에 바위가 들어갈 수 있을지로 가득 차버렸다. 다 잠든 새벽에, 드넓은 초원 위 빽빽이 찬 공상이 일으켜 세우는 대가로 몽상가가 되는 걸 택한 자는 어리석지 않은가. 이젠 누가 꿈이고 꿈은 누구인지 그 문이 허물어졌는데 이 또한 의미가 없을 뿐이다.

문을 열자 마주한건 변함없이 따스한 가족이었다. 그 일상 속 편안함에 취해 그는 침대에 떨어졌다. 세상의 온갖 불안과 혼란을 규칙이라는 자가 대신 풀어준다고 한다. 설령 그게 시간처럼 무거운 족쇄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 글은 반복적인 일상과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들에 대해 나 자신을 돌아보며 쓴 글이다.

시간은 항상 우리의 의지가 무색하게 흩어져 버리곤 한다. 그 경험은 나의 움직임이 어제, 그저께와 비슷할 때 더 와닿아진다. 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거듭하여 되돌아봤다.


혹시 내가 현상이 흘러가는 시간과 발생하는 공간의 수동적으로 대처하고 있지 않은가?


합리적으로 타당할 일에만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고민들은 내가 시간의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일구어 놓은 나무에 기대어 쉴 수도 있고, 그늘을 빌릴 수도 있지만, 그 나무의 결을 내 삶의 방향이라 오해한 채 그대로 따라가진 않으려 한다. 시간이 나를 끌고 가는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나만의 속도로 굳어있던 모래를 흩뜨리고 스스로의 뿌리를 심는 일을 시작하려 한다.
누가 대신 다듬어 준 길이 아니라,
내가 나의 걸음으로 시간을 다시 조각하는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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