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지 350~380일
2025-07-01 (+350days)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아이들 데리고 부부동반 모임을 했는데, 친구 남편 중 피부과 의사가 있었고, 이안이 손목을 유심히 보더니 치료하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 이소성 몽고반점이라는 의견을 주었다. 그동안 신경이 쓰이기도 했고, 친정 부모님은 오래 전부터 피부과 한 번 데려가보라고 하셨는데, 왜인지 병원 가는게 힘들어서 안 가고 있었다. 그런데 확실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나니, 병원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포에 위치한 유명한 피부과에 가게되었다. 남편이 출장간 바람에 부모님과 함께 분당에서 가느라 오래 걸렸지만 다행히 이안이가 잘 협조해주어서 잘 도착할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했더니 아이들이 정말 많았고, 다들 비슷한 레이저 치료를 받는 듯 했다. 이안이는 물론 씩씩하게 레이저 치료를 받았지만, 시술대에 눕혀지자마자 오열해서 마음이 좀 아팠다. 40초 남짓 레이저 치료가 진행되었고, 이안이를 꼬옥 안고 치료실에서 나왔다. 친정 부모님이 함께 가주셔서 큰 힘이 되었고, 이안이의 치료가 잘 끝나면 좋겠다. (참고로 나중에 이안이가 이 글을 본다면 원래 왼쪽 손목 바깥 쪽에 꽤 큰 이소성 몽고반점이 있었단다. 나중에 사진첩 보면 알거야. 너만의 특별한 점으로 남겨둘까도 고민했는데, 반점의 크기가 꽤 크고 푸르스름해서 보는 사람마다 멍든거냐고 물어보면 네가 불편할까봐 치료해주기로 했단다.)
2025-07-04 (+353days)
날이 무척이나 더웠지만 동생과 함께 이안이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했다. 어릴 때 살던 익숙한 동네를 이안이와 함께 산책하면 조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의 내가 걷던 그 길을 이안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며 걸어가는 것은 왜인지 뭉클하다. 그 시절의 내가 같이 걸어가고 있는 기분이랄까.
친정 집 앞 공원이 보수공사를 한 덕분에 바닥에서 시원한 분수가 나오고 있었다. 이안이도 분수 구경을 꽤나 좋아했다. 결혼 전부터 내가 좋아하던 동네 길냥이도 이안이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집에서는 친정 아빠가 이안이를 번쩍 번쩍 들어주며 놀아주셨다. 세월이여. 나의 수 많은 추억들 위에 이안이가 더해지는 이 순간이 참 특별하다.
2025-07-11 (+360days)
친정에 머무르는 동안 이안이도 점점 자라고 있음이 또 느껴진다. 이안이도 친정 집에 잘 적응해주었다. 안방이 본인 침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친정 집 구조를 완전하게 파악했다. 동생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강아지마냥 빠르게 기어가서 반겨준다. 아기상어 사운드북을 너무나 좋아해서 노래 버튼을 스스로 누른 뒤 온 몸을 흔들면서 춤을 춘다. 물론 밤에는 내가 재워줘야만 자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도와주시는 덕분에 훨씬 편하게 육아하고, CFA 시험 공부도 하고있다.
오늘은 동생이 이안이와 함께 놀아주기 위해 신나는 K-pop 뮤직비디오나 디즈니 ost를 틀고 춤추면서 놀아주었다. 진짜 미칠듯이 귀여운 우리 이안이는 소파를 잡고 일어서서 트월킹을 했다. 아니 이건 분명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뒷모습이다. 앉은 자세로 발을 잡고 다리를 까딱까딱 움직이는 것도 정말 귀여워 죽겠다.
2025-07-13 (+362days)
드디어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왔다. 남편은 이안이가 혹여나 자신을 까먹은건 아닐까 조금 걱정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남편이 친정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안이는 엄청난 속도로 기어가서 아빠 품에 꼬옥 안겨있었다. 평소와는 왠지 다른 느낌이었다. 철썩 안겨서 절대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아했고, 표정도 아련한 것이 아빠가 많이 보고싶었나보다. 남편이 이것저것 나와 가족을 위한 선물도 잔뜩 사왔다. 비싼 위스키, 초콜렛, 에코백, 해리포터 기념품 등. 물론 해리포터 기념품을 거금을 들여 사온 것은 솔직히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성의가 귀여워서 가끔씩 피식 웃음이 났다. 당분간은 친정에 더 머무르고, 저녁에 남편이 한 번씩 친정 집에 들리기로 했다.
2025-07-17 (+366days)
이안이의 진짜 생일 날. 엄마가 이안이를 위한 찰밥과 미역국을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을 위해 생일상까지 차려주셨다. 이안이 덕분에 온 가족이 맛있는 우리 엄마표 미역국과 잡채, 불고기 등을 먹었다. 남편은 케이크를 사왔고, 함께 초도 불었다.
너무 기쁘면서도 동시에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 1년이 지났지? 1년 전 오늘, 나는 진짜 무섭고 두려웠는데. 비가 쏟아지던 2024년 7월 17일. 아직 동이 트기 전 깜깜한 새벽 네다섯시쯤 캐리어를 끌고 남편과 택시를 탔었다. 조용하고 긴장된 분위기의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유도분만을 진행했다. 두려웠다. 앞으로 얼마나 큰 고통이 이어질까. 그런데 두려움도 잠시 두 시간이 지난 시점 쯔음 의료진이 모두 뛰어들어와서 아이 심박수가 떨어진다고, 산모는 호흡 크게하라고 외쳤다. 이게 두번이나 일어났다.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떨렸다. 결국 의사 선생님은 제왕절개를 해야한다고 하셨다. 수술이 무섭기도 했고, 자연분만을 원했던 나는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래도 진정하고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고, 11시 16분에 드디어 이안이를 만났다. 지금도 생생한 그때의 모습. 하반신 마취가 참 무서웠지만 이안이의 첫 순간을 볼 수 있었기에, 전신 마취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다. 길쭉하고 작디 작았던 너. 두 눈을 꼭 감고 응애하고 울던 너. 내 인생에 잊히지 않을 순간.
그렇게 1년이 흘렀고, 이제 꽤나 엄마가 되었네. 다들 이안이의 생일을 축하했지만, 1년 전 출산이라는 것을 해낸 나 자신을 조금은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도 든다. 고생했고, 잘했어.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아 잠시 울적했지만, 아무렴 어때! 이제 나의 출산일이 아니라, 이안이의 생일인걸! 그리고 지금까지 이안이를 잘 키워낸 것처럼 앞으로도 잘 키워낼거야. 분명히.
아마도 이안이의 두 돌 때에는 이런 감정보다는 이안이의 생일을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는 엄마가 되어있을 것 같다. 그때는 엄마가 맛있는 생일상 직접 차려줄게. 또 1년 뒤 너의 모습이 너무나 궁금하고 기대된다.
2025-07-23 (+372days)
원래는 지난 주말에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보일러가 고장나는 바람에 친정 집에 조금 더 머무르다가 오늘에서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거의 3주 이상 친정 집에 머무르면서 부모님 덕분에 나도 참 많이 쉬고, 시험 공부도 많이 하고, 이안이도 부쩍 많이 자랐다.
할머니 등에 착 매달려서 어부바 하는 것을 좋아하고, 할아버지가 떠먹여 주는 이유식은 넙죽 받아먹고, 못 올라가던 소파도 이제 너무 쉽게 척척 올라가고, 집 구조도 완전히 알아서 혼자 여기 저기 기웃거리고.
물론 아쉽고 힘든 시간도 많았다. 나는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초조한 마음으로 새벽까지 공부하고, 낮에도 이안이 잘 때 공부하고, 종종 부모님께 이안이를 맡겨두고 스터디카페에 가서 공부했다. 덕분에 공부는 많이 할 수 있었지만, 긴 시간 친정에 머무르면서 부모님, 동생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동시에 잠시 엄마와 서먹했던 몇 일간의 기간이 있었는데, 내가 먼저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한 것이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더 좋은 딸이 되어드려야지. 이번에도 일단 또 다짐해본다.
이번에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작년과 달리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꽤 쿨한 척 부모님과 인사했고, 덤덤한 마음으로 남편과 이안이와 함께 돌아왔다. 그래, 아쉬운 마음은 뒤로 하고 또 우리 셋이 예쁜 추억 계속 쌓아 나가자.
부모님은 또 자주 뵈어야지!
2025-07-24 (+373days)
친정집에서 돌아온 첫 날. 이안이와 낮에 둘이서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간식으로 계란말이를 만들어 주었는데, 잘 먹지는 않았지만, 하나씩 집어서 내 입에 쏘옥 넣어주는 모습이 정말로 예뻤다. 내 입에 넣어주는 게 본인도 재미있었는지 해맑게 웃는 모습에 참 행복했다.
2025-07-29 (+378days)
인생 첫 우유를 마셔본 날. 멸균우유를 줬는데 빨대컵으로 몇 입 먹더니 뭔가 이상한지 금방 내려놓았다. 친정 부모님께 말씀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아빠가 직접 검색하셔서 첫 우유 잘 먹이는 방법을 정리해서 보내주셨다. 다음부터는 그 방법대로 분유와 우유를 섞어주고, 우유의 비율을 점차 늘리는 식으로 해봐야겠다.
2025-07-30 (+379days)
최근들어 종종 걸으려고 노력하는 우리 이안이. 오늘은 집에서 걸음마 보조기를 씩씩하게 밀면서 꽤 많이 걸었다. 집이 아직은 좁아서 한 번에 많이 걷지는 못했지만, 거실의 끝에서 신발장까지 열심히 걸었다. 또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터벅 터벅 걷기도 했다. 왠지 어느날 갑자기 또 걷기 시작할 것 같다. 어느날 갑자기 기어다니기 시작했던 것 처럼. 엄마는 이 모든 것이 참 사랑스럽고 신기할 따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