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적 재능이 중심
천부적 재능과 인간의 한계
태어나는 순간, 인간은 이미 수많은 조건을 지닌 상태로 삶을 시작합니다.
성격, 능력, 성장 환경, 가족 구조까지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풍족한지, 내향적인지, 체격이 어떤지 같은 요소들이 한 사람의 삶을 조용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규정합니다.
이 조건들은 긍정적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주어진 조건 때문에 비교와 열등감 속에서 살아가고,
다른 누군가는 같은 조건 덕분에 관심과 존경을 받으며 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요소들이 삶의 중요한 축을 형성한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를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합니다.
선천적 조건은 삶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이를 단순한 비관으로 받아들이는 시선도 있을 것입니다.
“불리한 조건을 극복한 사람도 많다”며 반박할 수 있겠죠.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잘 태어나야 잘 산다’는 명제가 아니라,
인간의 선천적 조건이 삶의 방향성을 크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계란 알레르기를 가진 채 태어난 A가, 같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연구를 거듭해 알레르기 치료율 100%의 약을 개발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성취의 근원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는 계란 알레르기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인간이 선택하지 않은 조건이 결국 삶의 동력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럼에도 남겨진 ‘나만의 20%’
저는 이러한 시각에서 제 삶의 의미를 다시 정리했습니다.
삶의 대부분이 선천적 조건에 의해 규정된다 해도,
주변으로부터 관점을 확장하는 경험을 통해
나머지 공간—제가 감히 20%라고 부르는 영역—에서는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20%는 작아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방향 전체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그 가능성을 믿는 쪽에 서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러한 관점 전환을 건네는 ‘주변’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과 동물 같은 유정적 존재뿐 아니라,
무생물조차도 각자의 방식대로 존재의 흐름 속에서 평온함을 느끼며 이어지길 바랍니다.
그 작은 바람을 남기며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