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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월란 Apr 03. 2022

출국장의 내 모습을 백번 상상했더니

의미 없는 상상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법

스물세 살에 출발한 교환학생은 열세 살 때부터 족히 10년은 상상한 나의 모습이었다. 출국 전 날 밤의 나,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의 나, 가족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는 나, 이륙하는 순간의 ... 스스로를 잘 아는 나였기에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그 순간의 내가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 눈물이 많아도 너무 많은 나였기에 출국 그 모든 순간에 울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정 순간의 자신의 모습을 백 번 상상하면 막상 현실로 다가와도 커다란 감흥이 없다는 사실, 당신은 알고 있는가? 너무 많이 머릿속으로 그려보아서 그런지 오히려 익숙하기까지 했다.


전 날 밤, 평소와 다르게 30분 정도 뒤척였음에도 잠은 잘 잤으며, 공항에서 마지막 밥을 먹을 때도 그저 '맛있게' 먹었다. 게이트 오픈 1시간 전, 출국장으로 가기 전 부모님, 동생들과 포옹하는데 울지 않았다. 출국장 앞에서 정말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도 울지 않았다.


출국 소속을 거치고 면세점을 지나는데 위층의 유리 복도에서 손을 흔드는 가족의 모습이 조금 눈물이 흘렀을 뿐, 내가 백 번 상상했던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은 없었다.


물건을 나르는 실력이 유치원생만 한 나는 캐리어 두 개를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캐리어 하나, 보스턴 백 하나, 백팩 하나를 챙겼다. 캐리어 위에 보스턴 백을 올리고 백팩은 어깨에 맨다면 그다지 많은 짐도 아니었지만 에스컬레이터에 걸리고 가방을 쓰러뜨리고 발을 헛디디고, 땀을 뻘뻘 흘렸다. 그렇게 공항 호텔에 도착해서 더블 사이즈 침대에 혼자 눕자, 그제야 정말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비행기에서 기압 차로 귀 통증이 심했는데 3일은 내리 아팠다.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귀와 함께 아파진 머리를 감싸고 억지로 잠에 들 수밖에 없었다. 백 번 상상했던 출국하는 나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낯선 곳에 도착해서 첫날부터 가족을 그리워하며 잠에 들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예상치 못한 통증에 그리움은 하나도 느끼지 못하고 잠에 겨우 들었다.


'만약 내가 너무 심하게 운다면-', '공항 호텔을 찾아가지 못한다면' 등등 걱정에 가까운 생각이지만 상황마다 나의 대처를 미리 상상해두었다. 하지만 이렇게 상상과 현실이 다르면 굳이 앞으로 생생하기까지 한 시각화를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아니다. 내가 그토록 자주, 자세히 상상했었기에 낯선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었다. 작은 여러 파도를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면 새로운 유형의 파도를 만나도 대응할 능력이 생긴다.


마음속 깊이 원하는 목표가 생기면 나는 그 일을 하고 있는 나를 상상한다. 처음에는 하릴없는 망상에 불과하다고 여겼지만 그 목적에 가까워질수록 상상은 구체적이게 된다. 아는 만큼 현실성이 추가되는 것이다. 그러한 상상은 목표를 성취하도록 돕는 것에서 나아가 목표를 이룬 후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한 후에도 나의 상상과 다른 교환 생활에 당황스러운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스스로를 잘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의 적중률은 10% 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이 오답노트를 반영하면 낯선 곳에서도 상상 적중률을 높일 수 있겠지?


그렇게 체코 프라하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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