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맞은 크리스마스 이브
나만의 특별한 크리스마스이브가 있는가?
나에겐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이브 날이 그렇다.
엄마는 홀로 오빠와 나를 키우시며 한 번도 매를 든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매를 든 적이 있는데 그날이 바로 6학년 때 크리스마스이브 날이었다.
부산, 경남지역에선 성탄절 전후 시기에 김장을 많이들 한다.
6학년 성탄절 즈음 김장하려고 엄마는 우리밭에서 가꾼 배추를 다 뽑아 골방에 얼지않게 차곡곡차곡 쌓아두셨다. 유독 그 해 배추 값이 엄청 비싸서 금배추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엄마는 골방에 쌓아둔 배추더미를 가리키며
"여기 지저분한 배추들 다라이에 담아가지고 바깥 밭거름 더미 쪽에 버리뿌라. 철주오면 오빠랑 같이 해라." 말씀하시고 일하러 가셨다.
난 오빠를 기다리다가 오지 않자 나 혼자 지저분한 배추를 버리는 일을 했다. 참 성실히 했다. 큰 다라이에 몇 번이나 옮겨 담고 밖으로 나가 거름더미쪽에 버렸는지 모른다. 어릴 적부터 무거운 것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걸 여러 번 했는데도 내 키가 170이나 되는 게 신기하다.
할 일을 다 하고 나니 뿌듯했다. 그제서야 친구들과 놀았다. 그날따라 편대결 줄넘기도 우리팀이 이기고 오징어게임(오징어 육파리)에서도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서 하는 놀이하면서도 속으로 ‘오늘 운수가 왜 이리 좋지? 혼자서 집안일을 성실하게 해 낸 보람이 있구나’ 생각까지 할 지경이었다. 한 두시간 놀았을까? 오빠가 나를 찾아와서는
"와이구~우짜노~ 철옥이 니는 엄마한테 혼난데이~엄마 완전 화났데이~배추 다 버렸다면서! 김장도 못한다고 엄마 화 많이 났데이!"
무슨 일인가 싶어 집으로 갔더니
엄마가 나를 다잡고 “배추 어디 있노! 배추 어디!!!! 있!노~~~~오!!!!”냐며
추궁하셨다. 한국 느와르 명작 영화‘친구’에는 건달 고등학생 뺨을 힘껏 쥐어잡고 선생님이 이를 갈며 독기를 가득 품은 채 “아버지 뭐하시노! 아부지이 뭐어 하아~~시노오!!!”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볼 때 배추의 행방을 무섭게 몰아치며 물어보던 엄마의 그 모습이 선명하게 떠 올랐다. 일단 나는 배추의 행방을 엄마에게 알려줘야 했기에 “엄마가 배추 지저분한 것들 버리라고 해서 다 지저분해서 버린건데...”라고 초등6학년이 아니라 겁을 잔뜩 먹은 6살 아이처럼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내가 언제 다 버리라고 했노! 바닥에 떨어진 배추 떡잎 같은거! 지저분한 것들만 버리라고 했지!!! 어디 버릿노!"하고 언성을 높였다. 엄청 높이.
“걱정마라 우리 밭 좁은 길가에 버렸다. 가보면 있을 끼다.” 말하고 엄마랑 버린 곳에 갔더니 배추가 한 포기도 보이지 않는다. 근처 밭일을 끝내고 돌아가던 아줌마들이 금배추가 버려진걸 보고 얼씨구나하고 주워 간 것이다.
김장할 배추가 순식간에 없어졌으니 엄마는 얼마나 허망했을까. 어렵던 그 시절 겨울나기 반찬은 오로지 김치밖에 없었는데.
“둘 다 따라왓!!!!”하며 엄마는 비장하게 집안으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면서 늘 열려있던 대문을 덜커덕 잠그셨다. 튼튼한 몽둥이를 들고 오빠와 나를 안방으로 몰아넣었다. 해가 기우는 초저녁시간이라 아직 아궁이 불을 지피지 않아 방안은 냉장고처럼 차디찼다. 모든 게 얼어붙은 내 몸을 몽둥이가 괴롭히기 시작했다.
획획! 퍽퍽 퍼억!!!!
“엄~마아악!!!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아악!!흐흐흑...으윽!!! ”
어느 순간 나는 우억거리며 울고 있었다. 갑자기 방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었다. 아니 오빠가 방문을 열었다. 오빠는 냉장고 방과 무서운 몽둥이로부터 멀리 도망갔다. 담을 뛰어넘어 줄행랑을 쳤다. 난 그냥 방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많이 맞으면 마취주사 맞은 거처럼 몸이 얼얼하다. 정신없이 때린 엄마 그리고 정신없이 맞은 나.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아픈 푸념이 어느 문학작품에 나타난 것처럼 그날은 12살 나의 삶에 아리고 쓰리게 나타났다. 그날은 오로지 12살 매 맞은 아이의 깊은 고통과 나쁜 운수를 탓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골목 안 가로등을 쳐다봐도 불빛이 엉켜보였다. 하늘의 별빛도 엉키고 달빛도 엉키고..
모든 게 엉켜보인다. 그 저녁에 울리는 교회종소리...성탄 전야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
슬프고 슬픈 종소리는 여러 생각을 엉키게 하였다. 획획거리며 괴롭힌 몽둥이를 원망했고 차디찬 방에 화가 났고 때린 엄마는 내 울분의 목적어가 되었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울분의 목적어 엄마를 주어로 바꾸어 생각해 보게 된다.
엄마가 금배추 하나에 무너지신 걸까?
엄마는 나쁜 운수들이 배추잎처럼 겹겹이 쌓여있는 엄마의 삶이 얼마나 버거웠을까?
엄마는 삶의 고통이 한도 초과한 그날은 버티기 힘들었으리라.
내가 8살 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때 엄마 나이 33살이었다. 그때부터 남편없이 남매를 힘들게 키우면서 온갖 고생을 다 하시며 지내셨다. 자식들과 먹고 사는 일이 가장 큰 과제인 엄마에겐 겨울 양식을 한 순간에 잃었다는 건 살아갈 길을 잃었다는 것이었으리라. 세월의 흐름이 엄마를 목적어에서 주어로 바꾸게 하였다. 또 1인칭 주인공시점에서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몇 년 전 엄마는 인공관절 수술 후 집안에서도 보조보행기에 기대어 움직이시지만 음식을 장만하시고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시기도 한다.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딸로서는 엄마의 도움이 한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몸이 힘들어도 엄마는 김치를 담그실 때가 제일 생기가 넘치는 듯하다. 어디선가 내가 배추를 몇 포기 얻어오기라도 하면 반가워하시고 바로 김치를 담글 준비를 하신다. 김치통 뚜껑을 완벽하게 닫지도 못할 정도로 팔의 근력도 떨어졌지만 김치담그기가 유일한 특기이자 취미인 엄마의 김치맛은 떨어지는 법이 없다. 김치양념 묻은 손으로 주방 벽면이나 냉장고 문에 고춧가루를 덕지덕지 묻혀놓으시지만 인생의 수많고 얄궂은 고비들을 넘겨 매일매일 기적을 자신의 삶에 묻혀놓으시고 계신다.